아무도 없는 풀무질에 남아 글을 쓴다. 오늘은 첫 미학 읽기모임 날이었다. 미학도 궁금하고 첫 모임이니 만큼 옆에서 지원도 할 겸 늦게까지 남아있었다. 분위기는 부드러웠고 여러 분들의 이야기도 많이 나왔다. 굳이 지원이랄 것도 없이 충분히 즐거운 시간이었다. 다들 원하던 것들을, 아니면 기대하지 않았던 것들이라도 작게나마 챙겨가는 시간이었길 바란다.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한창 소란스럽던 매장에는 온기만 고요하게 남아있다. 아르바이트 할 때 텅빈 매장에서 놀던 습관이 남아있어서인지, 이런 시간을 은근히 즐긴다. 아침에 혼자 매장 문을 열 때와는 사뭇 다르다. 손님들이 풀어놓은 가느다란 숨결들이 차분히 가라앉는게 보일듯 말듯 하다. 덩달아 긴장한 근육들도 한 올 한 올 느슨해진다.
풀무질은 손님들의 온기를 불씨삼아 풀무질한다. 모든 손님들은 각자의 온기를 두고 가신다. 텅 빈 매장 곳곳에 남아있는 온기를 한 번씩 생각한다. 아까 서서 골똘히 읽으셨던 책표지, 편안하게 기대 앉으셨던 소파, 까치발까지 들며 책을 꺼내셨던 구석, 반대로 쭈그려 앉아 꼼꼼하게 살펴보셨던 책꽂이까지. 하나씩 훑다보면 그날의 풀무질이 되살아나며 배시시 미소가 번진다. 나는 풀무질을 사랑하는걸까, 손님이 남긴 마음을 사랑하는걸까. 딱히 분간은 안가지만 기분이 좋으니 그걸로 됐다.
하루종일 조명 설치에 매달려 있었다. 건물 입구 쪽 조명이 부서져서 새로 갈아끼우는 김에 아예 계단 조명을 싹 바꾸고 아래쪽 계단 천장에 하나 더 설치했다. 전보다 훨씬 환해져서 가파른 계단이 덜 위험해졌다. 설치가 끝나고 저절로 나가보게 되더라. 새로 한 마무리가 깔끔한지, 이전보다 더 나은게 맞는지 계속 확인하게 됐다. 뻔질나게 드나든다고 당장 뭘 알게 되거나 차이가 드러나지는 않지만 자꾸 신경쓰인다. 결국은 내 노력을 확인받고 보상받고 싶은거다. 뻔하고 얕은 속셈인 만큼 빨리 잊자. 내가 한눈 판 사이에도 손님은 이미 풀무질에 온기를 남기고 있다.
매장 운영 정말 별거 없다. 받은 만큼 드린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교환은 시작된다. 손님도 없이 우리끼리 공간을 데워봤자 백날천날 같은 온도다. 다른 사람이 한 번이라도 더 올수록 온도는 올라간다. 온기는 나누는 거랬다. 어디선가 받은 온기를 어디로 줄지는 우리에게 달렸다. 따뜻한 공기는 위로 떠오른다. 우리가 나눌 온기는 적어도 밑으로 갔으면 좋겠다. 세상에서 가장 추운 곳으로 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