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zzi Aug 25. 2023

23.08.25 오늘의 풀무질

공간을 사유화하지 않을 때, 공간은 장소가 된다.

풀무질은 들어오는 협업 제안을 웬만하면 거절하는 법이 없다. 누구든 어떤 일이든 일단 한다. 그게 어디로 어떻게 이어질지 모르지만, 풀무질은 영역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 무엇이든 해보는 게 중요한 시기다. 서로 다른 일은 고민해야 할 변수도 조금씩 달라서 생각을 확장한다. 알지 못했던 영역의 행사들은 세상의 넓음을 실감하게 하고 자극을 준다. 어떤 영역에서든 전문가를 만나면 그들의 분야에 대한 태도에 감명받는다. 열정을 넘어선 고민과 고민이 쌓여 만든 정확하고 정돈된 태도가 일을 되게 한다.


어느덧 어설픈 열정을 용납할 수 없게 된 마음은, 빤딱거리는 일 처리를 바라(보)는 마음은, 이상한 합리화를 요구한다. 업무에 있어서 자연스럽고 효율적인 일 처리를 지향하는 게 잘못된 건 아닐 텐데 하면서도 켕기는 마음을 기어코 누른다. 효율, 경쟁, 속도, 성장 따위의 단어를 떠올리며 그 사이에서 나를 슬쩍 빼낸다. 그렇게까지 몰두하자는 건 아니지만, 잘 진행되면 모두가 좋잖아. 내용 없이 뜨거운 열정이 이제는 싫다. 무엇이든 잘 해내야 다음으로 갈 수 있다. 심화한 자본주의와 경쟁 체제는 어설픈 열정에게 단 한 번의 기회를 준다. 재도전, 패자부활전 같은 말랑한 단어들은 현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 체제에 그리 잘못이 있던가. 결국 그 안을 구성하는 존재는 인간이다. 체제를 신뢰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여분의 기회는 사치품이다. 한정된 자원에서 최대치의 결과물을 뽑아내야만 한다. 보통 그걸 할 줄 아는 개인들이 자본주의 꼭대기에 앉아있거나, 꼭대기로 올라간다.


구조에 온전히 책임을 지울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개인에게도 책임을 돌리기 싫은 마음은 그 끝을 내게로 돌린다. 내가 잘 해내면, 나만 잘 해내면 된다. 지켜낼 것이 있는 사람은 때로 포기할 것들을 정해야 한다. 계획이 엉성한 것, 뜻만 거창한 것, 구성되지 못한 것, 어수선하게 널려있는 것, 뜬구름 잡는 것, 돈이 되지 않는 것. 포기할 목록은 자꾸 추가되는데 미처 놓지 못한 마음이 갈팡질팡하여  아직 죽지 않은 나의 손을 결국 놓지 못한다.


풀무질의 새로운 시작도 어설픈 열정이었다. 시작점부터 같이하지는 않았지만, 합류한 이후부터는 어설픈 열정을 정교한 열정으로 바꾸는 데 힘을 쏟았다. 그러나 풀무질은 여전히 어설프다. 풀무질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그날 책방지기 기분에 따라 바뀌고, 음악 플랫폼의 AI가 후의 흐름을 정한다. 책상의 위치도 움찔움찔 조금씩 다르고, 뭔가 보내야 할 짐이 쌓여있을 수도 있다. 구석과 모퉁이 하나하나를 관리하고 통제하고자 애쓰던 시간이 있었다. 말끔한 사랑방을 만들고 싶었다. 손님들에게 쾌적함만을 주고 싶었다. 그러나 정작 제대로 완수한 건 안 그래도 할 일이 많고, 고민할 게 많다는 핑계를 늘려나가는 일이었다.


어느 날, 한없이 들이붓던 노력을 불가능과 필요없음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관리와 통제는 역시 프로의 영역인데 나는 결국 '프로'가 되지 못한다. 스스로의 어설픔을 인정하고 나니 다음을 정해야 했다. 어설픔을 숨기는 데에 열중하고 프로처럼 보이려고 애썼다. 순간적으로 프로의 가면이 떨어지면, 기회를 놓쳤던 무수한 과거를 떠올렸다. 그때도 이래서 저래서 핑계도 많았다. 한번 놓친 순간은 절대로 되돌릴 수 없었다. 흘러간 기회들에 무거운 미련을 매달아봐도 결코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다 풀무질에 들어왔다. 이 기회만큼은 놓치지 않아야 한다. 어떻게든 살려서 내 인생의 무언가를 만들고 말리라.


풀무질은 내게 끝없는 기회를 주었다. 풀무질이라는 거대한 이름을 기꺼이 맡겨주었다. 버겁고 힘들어도 내가 완전히 놓지 않는 이상 절대 떨어지는 법이 없었다. 그 덕에 지금도 살아 글을 쓰고 있음을 인정한다. 풀무질을 위해 포기한다는 말조차 핑계 같다. 풀무질을 짊어지고 자본주의 꼭대기로 올라갈 생각부터 이미 어긋나있었다. 풀무질은 그러라고 기회를 '주지' 않는다. 얼마 없는 기회를 두고 싸우는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아직 밟히지 않은 풀들을 보듬어야 풀무질이다. 머릿속의 꽃밭을 현실로 일궈야 풀무질이다.


매일 풀무질에 출근하며, '내 공간'이 무엇인지 되짚는다. 풀무질은 손님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의 공간이자, 여기서 일하는 책방지기들의 공간이고, 또 지난 시간이 모여있는 공간이다. 공간을 사유화하지 않을 때, 공간은 장소가 된다. 통제하지 않을 때 가능성이 열린다.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들어올 수 있는 장소. 환대의 장소. 풀무질의 모든 구석과 모퉁이에는 풀무질에 머무르는 모든 이의 시간이 녹아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21.08.19 오늘의 풀무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