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ket. - 바구니를 잃지 않는 법
초등학교 3학년 때, 학교에서
<영어로 아침 열기>라는 영어 교재가 새로 생겼다.
정규 교과 과정 외에 영어 구문을 외워 테스트를 보면
2급, 1급, 특2·1급 같은 증명서를 나눠줬다.
엄마가 영문학과를 나오셔서 그런지,
그것만큼은 욕심이 있어 오빠를 열심히 외우게 시키셨는데,
나는 어릴 때 오빠랑만 놀다 보니 옆에서 따라 외우곤 했다.
신기하게도, 그때 외운 문장 중 몇 개는
그 이후로 전혀 써 본 적이 없는데도 또렷하게 기억난다.
그중 하나가
"Don't put all your egges in one basket"
이라는 속담이었다.
그땐 그저 말 그대로,
'한 바구니에 달걀을 모두 담으면, 떨어뜨렸을 때 전부 깨지니,
여러 바구니에 나눠 담아라'는 뜻으로만 이해했다.
위험 분산 같은 개념까지도 생각이 확장되지 않았고,
그저 <문장>을 보고 그려지는 그림만을 저장했던 것 같다.
최근 문득,
'N잡'이라는 말이 너무나 익숙해진 요즘 사회에서..
이 속담이 떠올랐다!
이건 2년 전에 그린 만화다.
우기랑 나눈 대화를 바탕으로 그린 거라
애착이 많아 다시 읽어봤다.
오잉. 오랜만에 보니 누가 나였는지 헷갈렸다.
생김새는 분명 까만 모자 쓴 캐릭터가 나인데,
요즘 느끼는 내 모습과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도 인스타그램과 블로그를 하고 있긴 했지만,
완전 시작 단계고 취미생활에 가까웠다.
중학생 때부터 미술을 하고, 미대를 거쳐,
첫 직장(디자인 회사)에서 계속 일하던 내가
그저 하나의 길을 열심히 파고 있는 사람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완전히 새로운 길을 가는 사람들이
대단해 보였고, 도전하는 모습이 부러웠다.
지금은 삶에서 '취미 생활'이라고 부르는 활동의 비중이 커졌다. 인스타그램.. 블로그.. 커뮤니티 활동.. 다양한 사람과 만남..
3년 전만 해도,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삶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목말라 있었는데..
그때의 도전 덕분에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삶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시야도 넓어진 것 같다.
예전에는 '깊이'를 오래 한 일로만 여겼다.
지금은 그것보다, 얼마나 진하게 경험했는지가 깊이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https://youtu.be/B3-FlLuKsgE?feature=shared
해보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해보지 않고 후회하는 게 훨씬 두렵다.
전혀 접점이 없을 것 같은 분야라도
마구 들춰보고, 시도해 본다는 료님의 말이 무척 공감됐다.
'그렇게 여러 가지 하면 불안하지 않아요?'라는
질문을 얼마 전에 받았다.
새로운 시작은 언제나 두렵다.
사실 늘상 하던 것과 비슷한 일을 해도 두려울 때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지 않고 후회하는 게 더 두렵고,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커서,
불안함을 안고서라도 계속 시도한다.
그걸 이겨내고 해냈을 때의 성취감이 너무 좋아서!
내가 추구하는 삶은.. 깊이도 중요하지만,
폭이 주는 인생의 풍성함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았다.
가끔 드는 불안함은
풍성함과 방황의 차이에서 오는 게 아닐까? 싶었다.
- 방향이 있는가?
- 축적되는가? (다른 경험과 합쳐져서 더 큰 역량이 되나?)
- 나의 선택인가? (하는 이유. why)
- 내 것이 되었는가? (회고와 정리)
돌아보면, 내가 단순히 '성취감' 때문에
여러 활동을 해온 건 아니었던 것 같다.
결국 '창작'이라는 큰 뿌리 아래 연결되어 있었기에,
방향을 잃는 '불안'보다는, 여러 가지를 뻗어 나가는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중요한 건,
무작정 많은 바구니를 드는 게 아니라,
한 뿌리에서 뻗어 나온 다양한 가지에 바구니를 거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여러 바구니를 들고도 안정감을 유지할 수 있는 거였다.
그렇다고 무조건 '창작'과 연결된 활동이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전혀 다른 일이라도, 연결하는 과정이 중요한 것 같다.
새로운 바구니를 그냥 땅바닥에 내려놓는 건
내 삶에 짐을 하나 더 얹는 것과 같다. 중요한 건..
그 바구니를 내 나무의 가지에 단단히 걸어두는 일이다.
하지만 무턱대고 걸면 가지가 부러진다.
그래서 먼저, 그 바구니 속에서 버릴 건 버리고, 취할 건 취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얻은 경험과 기술, 통찰.. 을 어떻게 내 인생에 녹여낼지 복기한다.
이 과정에서, 전혀 다른 활동도 내 뿌리와 연결되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 모든 걸 억지로 연결하려 애쓸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때로는 정말 전혀 연관 없어 보이는 일이라도,
그저 호기심 가는 대로 하다 보면..
하나의 맥락으로 이어지는 순간이 오는 것 같다.
이상..
회고는 조금 귀찮은..
사람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