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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물맨 Mar 12. 2024

금연


단지 앞에서 담배를 물었을 때, 울타리 바깥 10미터 앞 횡단보도에서 소란이 있었다.

큰 체격의 삼십 대 남자가 차에서 내려 상기된 얼굴로 칠십대로 보이는 자전거 탄 노인에게


"아저씨! 아저씨!'"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노인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여 힘없이 페달을 밟다 말다 전진인지 후진인지 모를 동작을 반복했다. 목격하진 못했지만 남자의 말에 따르면 신호가 바뀌기 직전 노인이 무리하게 횡단보도를 건너다 남자의 차 뒤에 부딪히고 어물쩍 넘어가려 한 모양이다.


 울타리 구멍 사이 시야로 볼 때나 근거리 사람들이 인지하지 못한 것을 볼 때나, 혹은 페달 밟는 힘으로 볼 때 큰 사고는 아닌 듯했다. 아무튼 노인은 그냥 지나가려 했고 남자는 U턴하여 막아섰다. 갓길에 차를 댄 남자는 욕을 하며 더 격렬히 고함쳤다. 어디 가느냐고. 말이 어눌한 노인은 옷차림, 자전거, 짐으로 유추하건대 형편이 여유로워 보이진 않았다.


물론 남자 말이 맞다면 스쳤든 가난하든 그런 건 전혀 고려대상도 아니고 어물쩍 넘어가려 했다면 욕 좀 들어도 할 말 없긴 하겠다만.. 다만. 덩치 큰 젊은 남자가 힘 빠진 노인에게 악을 쓰고 있으니 그 자체로 순수히 염려가 되었다. 여차하면 다른 양상의 사건이 될 것 같아서.


염려한 게 뿐은 아닌지 옆에서 흡연하던 사람들 몇몇도 쉬이 자리를 뜨지 못하고 걱정스레 상황을 지켜봤다. 구경이라기보다 정말 다른 상황이 발생하면 말리기라도 하려는 듯. 하지만 그들이나 나나 발생하지 않은 일에 개입하기도 애매한 상황이고 노인 잘못도 명백해 보이니 결국 꽁초 끝이 손가락에 붙을 때쯤 어정쩡하게 돌아섰다.


10분 뒤 다시 담배를 태우러 내려갔을 땐, 경찰이 와있고 열린 귀로 들리는 건 그사이 결국 남자가 참지 못해 노인을 밀쳐 크게 자빠졌다는 거다. 찝찝했다. 어물대지 않고 꽁초냄새가 손톱 밑에 스밀 때까지, 울타리를 뱅 둘러갈 정도의 용기만 냈다면 죄를 떠나 적어도 젊은 남자가 노쇠한 남자를 자빠뜨리는 것 정도는 말릴 수 있지 않았을까, 그건 누구에게도 좋은 게 아니니.


내가 망설이지 않았다면 주변 사람들도 힘을 얻지 않았을까. 그 남자는 과연 정당한 범위 내에서 화를 내고 있었던 걸까 노인의 귀가 혹시 기능이 쇠하진 않았었을까. 나는 정말 개입하고 싶었던 걸까 개입하려 망설였다는 믿음만 가져가려 했던 걸까.


좋은 어른까지 될 생각은 없지만 그저 그런 어른이 되긴 싫은데, 세상을 조금 더 알수록 머리보다 빠르게 움직이던 발은 굳어 리어카를 밀어줄 용기조차 없어지는 건 조금 아이러니다. 어려움을 외면하는 cctv나 반대로 기꺼이 도움을 아끼지 않는 시민 대상의 몰카를 볼 때면 나라면 어떨까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곤 하는데, 쉽지가 않다.

오지랖과 관심의 경계는.


이 이야기를 듣던 그리 친하지 않은 아무개는 내 고민들을 아예 없었던 양 꿀꺽 삼켜버리곤 화제를 쉽게도 돌린다.


"야 근데 10분마다 담배는 좀 심하지 않냐? 끊어라 좋지도 않은 거."



난 생각했다. 뜬금없이 웬 금연?

아무개는 말을 이었다.



"내가 금연하라는 건 관심일까 오지랖일까? 어려운 거야 그 경계는.

받아들이기에 따라 한 끗 차이라고.

타인의 일에 개입하는 거 쉬운 거 아니다.

그래도 그 정도 찝찝함을 가진 사람이 몇 있었다면, 그걸로 꽤 괜찮은 거야."



뒤통수가 얼얼하고 관자놀이가 띵했다. 쉽게도 화제를 돌린다고 생각했는데 능숙하게도 해답을 주는구나 얘는. 아니 어쩌면 가장 점잖은

방식의 팩트폭행일지도 모르겠다. 오지랖과 관심의 경계를 고민하던 나는 사실 얕은 영웅심의 '팔이 묶인 스파이더맨 콤플렉스' 에라도 걸린 건 아니었을지. 그래도 그만큼의 찝찝함도 괜찮다는 말은 꽤 위로가 된다. 잘 때마저 잡념을 놓지 못해 뇌가 시끄러운 나는, 이렇게나 길고 그럴듯한 회로로 비겁함을 숨기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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