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설악그란폰도 대회를 다녀와서
자전거 대회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동호인이지만 평소 훈련을 통해 대회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표적인 대회는 '그란폰도(GRANFONDO)'불리우는 100km 남짓의 거리를 달리는 대회가 일반적이다.
누적오르막(획득고도), 코스의 난이도, 거리에 따라 A부터 F까지 등급이 나뉜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극악한 'F'난이도를 자랑하는 [설악그란폰도]
105km를 달리는 메디오폰도와 208km에 누적고도가 3000m에 가까운 그란폰도가 있다.
인제 상남에서 출발하여
아름다운 미선계곡을 따라 달리다 살둔고개를 넘고
구룡령을 넘어 한참을 내려가다
새도 쉬어 간다는 조침령, 쓰리재, 필례, 한계령을 오르고 내려와
20km 남짓의 내려온 구룡령을 다시 올라
온길을 그대로 되짚어 돌아가야 하는 길
힘든 길이다.
12시간 내에 완주해야 한다. 2개 지점에서 느린 사람들은 차에 싣는다. 일명 회수차~
도저히 페달링을 안 돼 쓰러지는 사람, 가파른 언덕에서 출발하지 못해 다시 고꾸라지는 사람
페이스 조절을 잘 못해 마지막 오르막인 되짚어 올라가는 구룡령 길가에는 그늘마다 쉬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쥐가 나거나 근육경련으로 덜덜 떨리는 다리를 부여 잡거나 물을 마시거나 포기를 생각하거나 이유를 찾거나 사연도 다양하다.
묻는다.
왜 여기에 왔는지
나에게도 묻는다.
너는 왜 거기에서 비 오듯 쏟아지는 땀을 흘리며 오르고 오르는지
생각을 비우기 위해 간다.
오로지 페달링에 집중하고 내가 가야 할 길을 명확히 하며
내리막을 내달릴 때 좌우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주의해야 부딪히지 않는다.
나 혼자 요리조리 피해 갈 수 있다고 자만하는 순간 큰 사고는 반드시 일어나게 된다.
내 옆을 달리는, 자신의 길을 가는 또 다른 누군가의 판단과 결정으로 인한 행동의 변화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측할 수 없고 그의 행동을 타이를 수 없으며 그의 길을 정해 줄 수 없다.
반대편이 통제된 차선 하나는 그의 구역이자 나의 구역이기도 하다.
조화롭게 달려야 하며 온 신경이 안전에 집중되어야 한다.
몰입의 순간이 온다. 집중하므로 비워진다.
고통스럽기 위해 간다.
자전거는 무겁고 오르막은 버겁다. 땀은 눈을 찌르고 바람은 벽을 세워 자전거를 막거나 옆으로 몰아쳐 자전거를 흔든다. 잡은 손이 느슨하면 여지없이 자전거는 쓰러진다.
손은 저려 고통스럽고 허리는 몸의 무게를 견디다 못해 비명을 지르고
다리는 잠긴다. (물에 잠긴 다리처럼 작은 움직임도 버겁다. )
자전거용 옷은 염전처럼 소금을 드러내고 드러난 팔다리에는 바람에 마른 땀이 남긴 소금기가 가득하다.
몰골은 처참하고 입은 마르고 숨은 차다.
자전거 페달이 신발에 붙어있고(클릿슈즈) 신발에는 발이 끼워져 있고 관절을 통해 내 온몸은 연결되어 있다. 허리가 아프면 발이 틀어지고, 손목이 아프면 어깨가 뻐근하다.
그 고통 속에서 10시간을 달려 완주했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탓으로 혹은 남의 탓으로 사고가 났고 병원에 실려갔으며 큰 상처를 입었다.
완주의 기록과 성취감을 위해 주변을 살피지 않은 사람들
우리가 흔히 불운이라 부르는 어떤 힘에 의해 쓰러진 사람들
참가자 5700여 명
완주율 70%
포기자 = DNF(Did not finished) 다수
부상자 다수
생각을 비우기 위해 고통을 선택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페달이 몸을 뚫고 올라와 속울음을 끄집어내어 깊은 호흡으로 토해 내게 만드는 언덕을 오르는 업힐의 고통 속에서 난 변태처럼 흥분했고
바람이 얼굴로 스며들어 오장을 훑어내고 육부를 부풀어 오르게 하여 행복에 미소 짓게 하는 내려가는 길, 다운힐의 공포와 즐거움에 난 어린아이처럼 움츠렸고 신이 났다.
골인지점에서 무심했고
덤덤했다.
살아가는 나날들에 있어 비워지는 순간은 필요하다.
고통이든, 울음이든, 긴 웃음이든, 오랜 침묵이든
난 고통을 선택했고 이는 나와 어울렸다.
고통스러웠으므로 집중했고 타인의 흐름에서 비켜섰으므로 안전했고
편안했기에 오로지 집중할 수 있었다.
다투지 않아 무심했고 연연하지 않아 무덤덤했으며
내내 그리하였으므로 비워내고 들어낸 채 가벼워져 난 차분히 일상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