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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랑 Jul 23. 2023

방콕에서 처음 겪는 충격과 공포의 벽간소음 1

이사한 옆집이 에어비앤비였던 건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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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구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이사 완료까지, 단 일주일 만에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해치우다니. 그런데도 이렇게나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하다니! 이렇게 뿌듯하고 홀가분할 수가 없었다. 이사 후 첫 며칠 동안 짐을 하나둘씩 정리하면서 복잡했던 내 마음도 함께 정돈됐다. 이사를 준비하며 생긴 잡다한 건강 문제들도 점차 회복되고 있었다. 이 모든 일련의 사건들이 해결된 모양새가 가히 운명적이다 싶기까지 했다. 순풍에 돛 단 듯 인생의 새로운 챕터가 열리는 듯했다.


하지만 나의 이런 순진한 착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이 새로운 챕터에는 또 다른 빌런이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곧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이사한 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은 어느 날 밤. 자려고 침대에 누워서 폰을 들여다보고 있던 나의 귀에 어떤 낯선 남자의 하품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마치 누가 내 옆에 누워 하품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옆집에서 나는 소리였다. 나는 깜짝 놀랐지만 "뭐 이런 수준의 방음이 다 있냐, 깔깔" 하며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잠들었다.


그 바로 다음날부터 나는 그간 말로만 들어봤던 벽간소음의 고통을 아주 잠시나마 얕잡아본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재택근무로 하루종일 집 안에 붙어있으니 옆집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정말 손톱만큼도 궁금하지 않은) 알 수 있는 초능력이 생긴 느낌이었다. 나는 들려오는 소음을 통해 그들이 몇 시에 일어나, 언제 외출을 하고 귀가를 하며, 하루에 방 문을 몇 번 닫고, 언제 얼마나 오래 샤워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덕분에 옆집이 일반 가정집이 아니라 에어비앤비를 운영하는 호수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들려오는 언어가 독일어에서 중국어로, 따갈로그에서 한국어로, 2-3일마다 바뀌었기 때문이다. 며칠에 한 번씩 정오 즈음 태국인 여성 두 명이 왁자지껄 떠들며 청소기를 돌리는 소리가 내 방에 울려 퍼진다. 이전 투숙객들이 체크아웃을 했다는 신호다. 그럼 같은 날 오후엔 어김없이 새로운 언어를 하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린다.





멀쩡한 사람도 분노조절장애 환자로 만드는 벽간 소음


머무는 사람들의 국적만큼이나 들려오는 소음의 종류도 아주 다양했다. 하루 온종일 문을 쾅쾅대며 닫던 남녀 셋의 혼성 유럽인 투숙객, 여행 중 감기에 걸렸는지 5분마다 콜록대던 여성분 (약을 사다 줘야 하나 싶었다), 조용하다가 별안간 중국어로 고래고래 악을 지르며 말다툼을 하(는 것 같)던 커플, 카톡 알림음 소리와 유튜브 영상 소리로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밖에 없었던 일인 투숙객까지.


더구나 이 모든 소음이 텅 빈 벽을 타고 웅웅 내 고막을 울려대니 오히려 바로 옆에서 들리는 소음보다 더 거슬렸다. 정도로 따지자면 마치 누가 손톱으로 칠판을 끼이익 하고 긁는 소리마냥 내 신경을 긁어대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견디기 힘든 종류의 소음은 바로 문 닫는 소리였다. 무방비상태로 있다가 갑자기 쾅하고 문 닫히는 소리가 공명하듯 내 고막을 때리면 소스라치게 놀라 한동안 심장이 벌렁거렸다. 특히나 자는 도중에 소음 공격을 당해 깨는 날이면 다음날 피로에 대한 걱정은 둘째 치더라도, 억울한 마음이 들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나는 혼자서 문 소리도, 말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지내니 옆방 사람들은 이 건물에 방음 하자가 있는 줄도 모르고 그저 신나게 지내는 중이겠지?

신원을 알 수 없는 여행객들과 어떻게든 엮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지만, 어쩔 수 없이 노크 정도로는 내 고충을 알려야겠다 싶었다. 가장 먼저 고안한 방법은 매일 밤 열 시가 넘기를 기다렸다가 옆집에서 도저히 잦아들 것 같지 않은 소음이 계속해서 들려오면 벽에다 대고 노크를 하는 것이었다. (덕분에 이사 온 뒤로 소파 밑에 처박아뒀던 요가링을 요긴하게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심스러운 노크로 '다 들립니다'는 말을 대신하면, 곧 옆방 에어비앤비 투숙객들이 눈치를 채고 조용해졌다.

그때부터였나요? 요가링이 제 애착인형이 된 것이..


하지만 이 방법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었는데, 밤 열 시가 넘은 시간에 옆집이 조용하면 오히려 더 불안하다는 것이었다. 그때 마침. 딱. 알맞게. 옆방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야지만. 내가 노크로 신호를 주고 편히 잠들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신호를 제때 받지 못한 이들은 종종 내가 이미 잠들어버린 시간에 소란을 피웠고, 나는 꼼짝없이 소음공격에 당해 잠을 설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나는 또 자다 일어나서 비몽사몽 요가링을 집어 들고 벽에다 노크를 했다.


그리고 이때, 노크를 하기 직전, 먼저 심호흡부터 두어 번 한 뒤 손목에 힘을 적당히 빼고 노크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새벽 소음 공격에 잠이 깨는 순간에는 온몸에 털이 쭈뼛 서면서 당장 요가링으로 벽을 깨 부수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저 사람들은 그냥 방콕에 여행을 즐기러 왔을 뿐이다. 저들에겐 아무런 잘못이 없다. 지금 저들이 어떤 악의가 있거나 무례해서 시끄럽게 구는 게 아니다. 세상에 저 정도 소음도 못 내는 호텔 방이 있을 거라고는 저들도 상상하지 못했을 거다. 에어비앤비를 운영하는 저 집주인의 잘못이요, 시공을 이따위로 한 건설사의 잘못이다. 지금 나도 저들도 똑같은 피해자다.


위와 같이 되뇌며 의식적으로 마음을 가라앉혀야지만 느슨한 나의 손목 스냅 끝에서 "닥!!!!!! 쳐!!!!!!!!!"가 아닌 "제-발-조-용-히-해-주-세-요-여-기-사-람-있-어-요."와 같은 점잖은 노크가 완성되었다.


잠을 편히 잘 수 없는 날들이 이어지면서 나는 점점 예민해졌고, 이러다가는 화병이 도지겠다 싶었다. 가장 편해야 할 내 집이 어느새 가장 불편한 공간이 되어있었다. 집에 혼자 있어도 혼자가 아닌 것 같았다. 마치 내 공간을 항상 낯선 사람들과 공유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이제는 진짜 내가 정신줄 붙잡고 살기 위해서 더 확실한 해결책을 찾아야만 한다.


다음 편에서 계속..


@sorang.diaries 인스타그램에도 종종 방콕생활 소식을 업로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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