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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랑 Jul 17. 2023

방콕 월세집에서 쫓겨나다

1주일 만에 이사하기

방콕에 어느새 만 5년을 꽉 채우고 6년 차에 접어들었다. 콕은 세로 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도시다. 내 경험으로도 그렇고 주변인들의 경험을 봐도 월세와 관련된 큰 문제나 고충 없이 집주인들도 너그러운 편이다. 게다가 도심 곳곳에 여전히 신축 콘도들이 생겨나고 있어 수영장, 루프탑, 피트니스, 영화관까지 갖춰진 건물에 방을 구하기도 쉽다. 방콕만큼 월세살이 하기 편한 도시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얼마 전 당장 일주일 만에 집을 비워야 하는 형편에 놓이기 전까지는.




방콕에서 월세살이 하기


먼저 방콕에서 월세 계약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약간의 배경 설명이 필요하다.

요구되는 최단 월세 계약 기간은 대부분 1년이다. 그보다 짧은 기간을 허용하는 매물은 찾기 힘들고, 찾는다 해도 월세가 시세보다 훨씬 비싸다.

처음 입주 시 한 달치 월세와 보증금을 함께 내고 들어간다. 보증금은 월세 두 달치 가격이다. 예를 들어 내가 월 60만 원짜리 방을 계약한다면, 입주 시 첫 달 월세 60만 원과 보증금 120만 원을 합해 총 180만 원을 내고 들어간다.

만약 1년을 다 채우지 않은 시점에 세입자가 방을 뺀다면 보증금은 모두 집주인의 몫이 된다.

1년 계약이 정상적으로 만료되고 방을 빼면 세입자는 보증금을 되돌려 받을 수 있는데, 마지막 달에 아직 내지 않은 전기세, 물세 등을 제하고 돌려받는다. 하지만 간혹 악덕 집주인을 만나면 아주 작은 흠집 하나까지 트집 잡아 보증금을 갈취하려는 경우도 더러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집을 조심스럽게 썼다는 전제 하에)

첫 1년 계약이 끝나고 난 뒤 계약을 연장하고 싶다면 대개 세입자에 조금 더 유리한 조건으로 협상을 시도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받아들일지 말지는 어디까지나 집주인의 재량에 달려있다. 예를 들어 1년 단위로 통째로 연장하는 대신 좀 더 짧게 3개월 또는 6개월씩 연장을 하자든지, 1년 연장을 하되 한 달 전 이사하겠다고 통보를 할 시에는 보증금을 전부 돌려받는 조건으로 연장을 하자든지 협상해 볼 수 있다.




쫓겨나듯 이사하게 된 자초지종


나는 이 집에서 첫 1년을 보낸 시점에 앞으로는 3개월씩 계약을 연장하기로 집주인과 합의했다. 또 같은 집에 1년을 묶이는 대신 내가 원할 때 이사 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기 위해서였다. 그 3개월 이내에 이사를 가게 되면 보증금은 돌려받을 수 없는 조건이라 내 입장에서 최선은 아니었지만, 집주인이 이 외에 내 모든 제안을 거절했기 때문에 나름 이게 최대한의 절충안이었다.


그렇게 3개월씩 두 번 계약을 연장하고 이 집에서 총 1년 6개월을 거주했을 때였다. 계약 만료를  10일 앞두고 해외에 있는 집주인으로부터 방콕 현지 에이전트를 통해 이런 통보를 받았다. "앞으로는 3개월씩 연장할 수 없고, 무조건 1년씩 연장하겠다. 만약  이내네가 이사를 나가면 보증금은 돌려받을 수 없는 조건이다."


이 집을 좋아하긴 했지만 또다시 1년을 꼼짝없이 묶여있을 자신이 없던 나는 6개월은 안 되겠니?라고 운을 띄워봤다. 하지만 집주인의 태도는 완강했다. 오히려  카운터 제안에 열이 받았는지 거기에 추가로 월세를 올리겠다고까지 다. 1만 9천 밧(약 70만 원)에서 2만 2천 밧(약 80만 원)으로 거의 15%를 올리겠다는 보였다.


날벼락같은 소식을 들은 고요한 토요일 아침. 느긋하고 여유로운 주말을 보내려던 내 계획 순식간에 무너졌다. 머리를 최대한 빨리 굴려야 했다. 내게 남은 옵션은 두 가지였다.


하나. 앞으로 최대 3일 안에 이사 갈 집을 찾아서 로운 집주인과 계약을 마치고, 남은 3일 동안 짐을 다 싸는 동시에 온갖 잡다한 계약을 (이삿짐꾼, 청소, 인터넷, 생수, 등등) 마친 후에 7일째 되는 날인 다음 주 토요일 아침 새 집에서 눈을 떠야 하는 시나리오.


둘. 집주인의 깡패 같은 제안을 받아들 1년에 약 120만 원을 추가로 내면서 앞으로 1년은 꼼짝없이 이 집에 계속 살아야 하지만 그 대가로 지금 당장 이사와 관련된 모든 귀찮음, 고생, 불확실함 및 스트레스를 피할 수 있는 시나리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지난번 이사 때는 방콕에서 맘에 드는 집을 찾는데만 수개월, 그리고 이사 준비에만 총 3주의 시간을 썼던 터라 당장 일주일 내에 이사를 하는 시나리오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깡패 같은 집주인과 계약을 하는 순간 짜증 머리끝까지 나겠지만,  그 순간만 지나면 편하게 계속 살던 집에 살 수 있지 않나. 게다가 지금 사는 집은 복층인 데다 코너룸이라 이 가격에 이런 집은 구하기 쉽지 않을 텐데..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1년 6개월을 거주하고 이사 나온 집. 이 전에 살던 스튜디오에 비해 훨씬 넓은 공간이 만족스러웠다.
두 면에 높은 통창이 있어 밝고 탁 트인 느낌을 주는 것도 이 집에 정을 붙이고 산 이유 중 하나였다.
비록 똥물이지만, 물이 보이는 뷰도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이사를 하기로 결심하다


하지만 곧 생각을 바꿨다. 분명 여러 가지 장점이 있는 방이기는 하지만 1년을 또다시 묶일 만큼 이 동네에 애정이 붙질 않았다. 이 지역으로 이사 온 뒤로 시내에서 너무 멀어졌다는 느낌이 항상 들었기 때문이다. 또 아침에 고속도로 차소리에 깨는 것도, 집 앞의 길이 걷기에 너무 비좁고 위험하다는 것도 산책하기 좋아하는 내게 항상 불만이었다. 동네 분위기가 그다지 안전하다고 느껴지지도 않아서 해가 진 뒤에는 꼼짝없이 집 안에 갇히는 느낌도 들었다.


시끄러운 고속도로 소음을 들으며 잠에서 깨던 침대


분명 시내와 더 가까운 위치에 좋은 집을 찾을 수 있을 거야. 변화가 필요한 시기다. 주의를 환기하기에 환경을 바꾸는 것만큼 좋은 변화가 있던가? 또 마침 집을 빼야 하는 날이 일요일이니 따로 휴가를 쓰지도 않고 주말에 이사를 할 수 있었다. 어쩌면 이건 우주가 나에게 내리는 ' 인생을 살라'는 명령인지도 모른다.


'그래, 그럼 지금부터 딱 이틀만 새 집을 찾는데 시간을 쏟아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48시간 내에 맘에 드는 집을 찾지 못하면 그냥 이 집에 1년 더 눌러앉는 것이 이성적으로 나은 선택이라는 뜻이니, 배가 아프더라도 그때 가서 받아들이면 된다 싶었다. 하지만 아예 새 집을 찾을 시도조차 해보지 않고 눌러앉는 건 눈 뜨고 코를 베이는 것 같아 용납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빨리 감기를 해서.. 나는 기적적으로 하루하고 반나절만에 맘에 쏙 드는 집을 찾았다. 그리고 날벼락을 맞은 날로부터  7일째 되던 토요일 아침,  집에서 눈을 떴다.




인생: "그게 끝일 줄 알았지?ㅋ"


물론 급하게 이사를 준비한 일주일 동안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혼자서 이사 준비에만 쏟기에도 모자란 시간에 갑자기 몸이 심하게 아파 병가를 내고 병원까지 다녀와야 했다. 또 스트레스가 원인이었는지 며칠 동안 짐을 쌀 수도 없을 만큼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예정에 없던 포장이사 서비스를 부랴부랴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훨씬 더 만족스러운 위치에 새 둥지를 틀었다. 아침저녁으로 산책 겸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공원이 있다는 점, 집 근처가 항상 사람들로 붐벼 안전한 느낌이 든다는 점, 그리고 전철역과 불과 2분 거리에 있다는 점 등 뭐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없었다.


이사 온 뒤 첫 일주일은 새 집에 정착하느라 몸은 바빴지만 마음만은 아주 평온하게 보냈다. 하지만 이 평화로움도 며칠 가지 않았다. 이 건물에 옆집사람의 하품소리까지 생생히 들리는 방음 하자가 있다는 것, 그리고 바로 옆집이 에어비앤비(단기 렌트)를 운영하고 있어 2-3일마다 새로운 여행객들이 들어와 머무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

@sorang.diaries 인스타그램에도 종종 방콕생활 소식을 업로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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