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랑 Jul 10. 2023

방콕 길냥이들의 안식처

고양이 입양카페, 캣사노바 (Catsanova)


지난번 글 (방콕, 고양이 따라 산책하기)에서 길고양이들을 만날 수 있는 방콕의 산책 스폿들을 소개했다. 만약 길에서 마주치는 낯선 고양이들과의 짧은 만남으로는 고양이를 향한 갈망이 충분히 채워지지 않는다면, 다음은 고양이 카페로 향할 차례다.


혹시 고양이들이 착취당하는 환경은 아닐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Catsanova (캣사노바)는 길고양이 보호소 겸 입양카페로, 여기 거주하는 고양이들은 모두 직원들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으며 좋은 입양처를 기다리고 있다.


주인인 Karan (카란) 씨는 원래 길고양이들을 구조해 집에서 돌보는 애묘가였다. 그러다 더 이상 집에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고양이 수가 늘어나자 따로 공간을 마련하고자 2019년 캣사노바를 열었다.


Karan 씨가 입양카페를 시작하게 된 계기였던 고양이 친구의 사진이 카페 벽에 걸려있다.


현재 캣사노바에서는 총 3층, 네 개의 방으로 분리된 공간에서 약 스무 마리 남짓 되는 고양이들을 보호하고 있다. 최대 25마리까지 수용 가능한 공간인데, 입양이 성사되어 빈 공간이 생기면 또 구조된 고양이를 받아 보호하는 식이다.


입양을 보내는 절차는 햇수를 거듭하며 점점 까다로워졌다. 여러 입양 실패 케이스들을 겪으며 몇 가지 룰이 생긴 것이다. 함께 사는 부모님의 동의 없이 입양을 진행했다가 파양 한 경우, 고양이를 입양해 몇 년간 잘 키우다가 파양하고 모국으로 돌아가버린 대사관 직원도 있었. 때문에 현재는 동거인의 동의가 없거나, 경제적으로 자립하기 전인 학생, 태국에 임시로 거주 중인 사람 등, 특정 경우에 해당하면 입양 신청을 할 수 없다.


지금까지 캣사노바를 통해 입양간 냥이들과 그들의 평생 가족이 된 이들의 사진이 벽에 붙어있다.




캣사노바 방문기


여행 중이라면 살짝 번거로울 수 있지만, 방문 전에 페이스북 메신저를 통해 예약을 해야 한다. 손님맞이와 고양이 돌보기를 모두 담당하는 라옹씨가 매일 고양이들을 동물병원에 데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미리 방문 예약을 받아서 그 시간대를 피해 동물병원 방문 일정을 잡고 있다.

Catsanova의 페이스북 페이지: http://facebook.com/catsanovabkk


예약한 시간에 방문하면 가장 먼저 카페 메뉴와 함께 고양이들이 보호소에 오게 된 스토리가 소개되어 있는 책자를 함께 내어준다. 귀여운 냥이들의 안타까운 구조 스토리를 읽으면서 마실 음료와 음식을 주문하면, 곧 라옹씨가 상냥한 얼굴로 다가와 투어를 시작하자며 안내한다.

이미 무지개다리를 건넌 쿠로의 구조 당시 이야기. 쿠로의 아이들 중 두 마리는 아직 캣사노바에서 보호하고 있다.
아기 때 구조되었지만 이제는 다 큰 쿠로의 자식들


라옹씨를 따라가 알코올로 꼼꼼히 손을 소독하고, 신발을 벗고, 비닐 실내화를 착용하고, 장난감을 하나 골라 들으면 고양이들을 만날 준비 완료다. 네 개의 방을 하나씩 순회하며 관심을 보이고 다가오는 냥이들과 정성껏 놀아주면 된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냥이들은 귀찮게 하지 않고 쉬게 둔다.


라옹씨에게서 모든 냥이들의 이름, 나이, 성격, 어떻게 보호소에 오게 되었는지 등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이야기를 들을수록 이렇게 사랑스러운 고양이들이 하루빨리 평생 함께할 가족을 찾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커진다.




캣사노바의 귀여운 고양이들을 소개합니다.


이 멋진 가면을 쓴 냥이의 이름은 배트맨이다.
캣사노바 시티를 악당으로부터 지킬 생각에 고민이 많아 보인다.

왕 크고 왕 귀여운 배트맨은 백혈병을 앓고 있지만 에너지 그 누구보다 넘치는 고양이다. 사실 배트맨은 한 번 입양 갔다가 2주 만에 공격성이 강하다는 이유로 파양을 당한 경험이 있다. 나도 같이 놀다가 발길질도 몇 번 당하고 살짝 물리기도 했는데, 공격하려 한다기보다는 사람과 노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안타깝게도 배트맨은 다시 캣사노바로 돌아왔다.

배트맨의 오후 루틴은 1층 카페로 내려가 직원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간식에 정신이 팔려 발톱이 깎이는 줄도 모르는 배트맨


까만 고양이 쇼유는 사람을 정말 좋아하고 사랑이 많은 고양이다. 하지만 다른 고양이들을 심하게 경계해서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분리되어 보낸다. 사람이 오면 이렇게 발라당 드러눕고 애교 부리기 바쁘다. 좋은 집에 외동고양이로 입양 가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내가 외동이 될 상인가?"


라옹씨의 품에 안겨있는 애굣덩어리 블루웨이브. 덩치가 꽤 크지만 이제 갓 10개월 된 청소년 고양이다. 깔때기를 차고 있는 이유는 자기 항문을 너무 핥는 바람에 건강에 문제가 생겨서다. 지금은 라옹씨와 매일 병원에 다니며 치료를 받고 있다. 저렇게 커다란 깔때기를 차고서도 사람한테 애교를 부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지긋이 눈 맞춤을 하는 폼이 이정말 10개월 된 청소년 고양이의 플러팅 스킬인가 감탄스러웠다. 사람의 애정을 이렇게나 고파 하니, 하루빨리 좋은 가족과 인연이 맺어지기를.


블루웨이브, 10개월, 눈맞춤 천재


눈이 다친 채로 구조된 지 얼마 안 된 아가냥 두 마리도 만날 수 있었다. 반전은 이 둘이 캣사노바에서 만난 고양이들 중 가장 에너지가 넘쳤다는 것. 역시 젊음이 깡패인가. 아무튼, 누가 앞이 잘 보여야만 잘 논다고 했나요?

왼쪽부터: 한쪽 눈만 실명된 채로 구조된 따완, 그리고 안타깝게도 양쪽 눈이 다 실명되어 버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아가냥
고양이의 시력과 사냥 텐션의 상관관계는 0에 수렴하는 듯 하다.


얼마 전에 출산한 엄마냥이와 아가들도 있었는데, 방문객들 때문에 스트레스받지 않도록 유리문 너머에서 따로 옹기종기 모여 쉬고 있었다. 엄마냥과 아가냥 두 마리는 새로운 가족의 집 공사가 끝나는 9월에 입양 가기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엄마도 형제들도 다 곤히 자는데 혼자 깨어있는 미묘 아가냥이
나긋나긋 조용하고 친절한 성격의 고양이 꽝뚱




캣사노바 고양이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


스무 마리가 넘는 고양이들을 돌보다 보니 하루도 빠짐없이 동물병원에 가야 하는데, 특히 큰 수술이나 정밀 검진이 필요할 때에는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한다. 캣사노바에서 더 많은 길고양이들을 구조하고 입양까지 돌볼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이 몇 가지 있다.


먼저,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방문해서 외로운 냥이들과 놀아주는 것. 직원들이 모든 냥이들을 충분히 놀아주기에는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사랑과 관심이 고픈 냥이들이 많다. 여행 중 고양이와 놀고 싶은 욕구가 꿈틀거릴 가서 냥이들이 충분히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도록 열심히 장난감으로 놀아주고, 그들의 넘치는 애정을 마음껏 받아주면 된다.


다음으로는 카페에서 판매하는 굿즈들이 있다. 캣사노바 거주 냥이들의 이름과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와 에코백 등을 구매하는 것도 고양이들을 돌보는 데에 쓰이는 수익에 보탬이 된다. (나도 지금 이 티셔츠를 입고 글을 쓰고 있다.)

티셔츠에 새겨진 냥이들 중 입양간 세마리 (루돌프, 토푸, 제니)를 제외하고 모두 캣사노바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가격은 390밧 (약 14,400원).


마지막으로는 온라인 입양 (online adoption)이라는 후원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후원하고 싶은 고양이를 지정해 월마다 일정 후원금을 내면 캣사노바에서 매주 사진과 함께 고양이의 소식을 보내준다. 입양 확인서 (certificate of adoption)도 받을 수 있다.


만약 내가 후원하는 고양이가 좋은 가정에 입양이 되면 후원이 자동으로 종료되는데, 고양이가 입양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방문해 작별인사를 할 수 있도록 캣사노바에서 연락을 준다. 그리고 입양 후에도 입양가족이 캣사노바에 보내주는 사진들을 공유받을 수 있다.

온라인 입양 후원 프로그램에 등록하면 받을 수 있는 입양확인서




나는 스스로를 애묘가라고 칭하지만 고양이를 향한 나의 애정은 의심의 여지없이 이기적이다. 그저 고양이를 쓰다듬는 일이 나를 행복하게 하기 때문에 고양이를 좋아할 뿐이다. 반면 카란 씨의 애정은 궁극적으로 고양이들의 진정한 안녕을 위한다. 그의 노력 덕분에 소중한 생명들의 여생이 180도 바뀐다.


카란 씨는 앞으로도 오래도록 캣사노바 운영을 지속할 것이라고 했다. 방콕의 길고양이 문제는 당장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최대한 많은 고양이들이 평생 가족을 만나 고통 없는 삶을 누리게 해 주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면서.


카란 씨가 바꾸어 놓은 고양이들의 묘생에 깃든 햇살만큼, 캣사노바의 앞날에도 좋은 일들이 가득하기를.



구글맵 링크:


운영 시간

10AM - 8 PM (화요일 휴무)

페이스북 메신저를 통해서 날짜와 시간을 예약하고 가야 한다. 캣사노바 페이스북 페이지


입장료

캣사노바의 총 투어 시간은 한 시간 정도이고 입장료는 200밧 (약 7,400원)이다. 이 금액 내에서 음료 및 음식을 주문할 수 있다.


더 많은 소랑의 방콕 이야기는 아래 링크에서

인스타그램 @sorang.diaries

스레드 @sorang.diaries

매거진의 이전글 방콕, 고양이 따라 산책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