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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랑 Jul 05. 2023

방콕, 고양이 따라 산책하기

방콕 사는 냥덕후가 그린 고양이 지도

님도 보고 뽕도 따는, 고양이가 있는 산책길


고양이는 정말 요매한 존재다. 제 멋대로 귀엽게 굴며 사람을 한바탕 홀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매정하게 뒤돌아서기 일쑤다. 하지만 그 누구도 고양이들의 시건방진 태도에 대해 진지하게 불평하지 않는다. 왜? 다들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바닥까지 떨어졌던 에너지도 고양이와의 짧은 만남으로 급속충전이 가능하다는 기묘한 사실을 말이다. 그렇게 고양이의 노예가 되기를 자청하는 사람들의 수는 끝도 없이 늘어난다.


나 역시 고양이에 대책 없이 홀린 사람들 중 한 명이다. 하지만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들로 고양이와 함께 살 수는 없는 처지에 있다. 그래서 나는 종종 그 갈망을 길에서 만나는 고양들과의 교감으로 채운다. 방콕의 골목길을 산책하며 마주치는 낯선 고양이들에게서 나는 또 살아갈 에너지를 충전한다.


내가 직접 두 다리로 누비고 다닌 방콕의 고양이 출몰 지역을 표시한 지도를 가져왔다. 나처럼 산책하기를 좋아하고, 산책하다 고양이를 만나는 것은 더 좋아하는 (!) 동료 고양이 노예들의 다음 방콕 여행을 위해.







1. 씨나카린위롯 대학교 캠퍼스


방콕 시내 중심에 위치한 아담한 대학 캠퍼스다. 위치는 BTS 아속 역에서 가깝다. 지금도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한 귀여운 검은 고양이 가족을 대학교 학생들과 스태프가 잘 보살펴 주고 있었다. 곳곳에 벤치가 있어 앉아 쉬며 방콕의 대학 캠퍼스 라이프는 어떤지 살펴보는 재미도 있다.

아가씨, 이런 데서 주무시면 입 돌아가요.
다리.. 다리 돌아가요.


구글맵 링크:




2. 벤짜씨리 공원 (BTS 프롬퐁역 근처)


엠포리움 쇼핑몰과 메리어트 호텔 사이에 위치한 벤짜씨리 공원. 크기는 작지만 위치가 편리해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 게다가 룸피니 공원 못지않은 길냥이 만남의 광장이다. 며칠 연속 방문해 보면 산책로 코너마다 눈에 익은 냥이들이 각자 지정 구역을 지키고 있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아침저녁으로 공원을 찾는 이들은 모두 걷고 달리느라 바쁜데 그중 한 사람이라도 자기한테 관심을 보여줬다 하면 옆으로 바짝 달라붙어 냐냐 하며 부비적 거리는 고양이들이 꽤 여럿 있다. 하지만 대낮에는 해가 뜨거워 냥이들도 다 어딘가에 숨어있기 때문에, 보다 많은 고양이들과 만나기 위해서는 선선한 아침이나 저녁 시간 대에 가보는 것이 좋다.

그냥 잠을 자고 있을 뿐인데, 이렇게 귀여울 일인가 싶다.
털과 눈의 색 조화가 희푸르고 오묘하다.
메리어트와 붙어있는 공원의 서쪽 산책로. 최근에 검은 고양이 가족이 이 구역을 차지하고 있다.
가로등 불빛 아래서 간식을 몇 알 줬더니 맛있게 먹는다.
간식에는 관심이 없고 사람의 관심이 고팠던 젖소냥이


구글맵 링크:




3. 플로우하우스 주차장 (수쿰빗 쏘이 24-26 중간)


여기는 벤짜씨리 공원 고양이들과는 약간 다른 성향의 고양이들이 모여있다. 좀 더 조심스럽고 내성적이다. 그중 몇몇 고양이들은 천천히 마음을 열기도 하는데, 쉽게 마음을 주지 않는 고양이의 관심을 받으면 괜히 더 뿌듯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많이 경계하는 고양이에겐 "미안, 그냥 가던 길 갈게." 하고 지나치는 것이 모두에게 좋다. 고양이는 귀찮은 일을 덜고, 나는 하던 산책을 마저 평화롭게 할 수 있다. 게다가 내 관심이 고픈 다음 고양이는 방콕 곳곳에 있으니 아쉬워하지 않아도 된다. (Thank you, next!)


구글맵 링크:




4. 수쿰빗 쏘이 36, Napha Sap Alley Lane 1 (BTS 텅러역 근처)


수쿰빗 로드에서 쏘이 36 길로 들어가면 아침 산책 하기에 아주 좋은 한적하고 평화로운 샛길들이 여럿 나온다. 그리고 그 샛길들을 따라 분위기 좋은 카페, 맛집, 그리고 귀여운 고양이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그중에서도 '나파 ' 길은 아침에 동네 한 바퀴를 천천히 거닐며 마주치는 고양이들과 인사하기에 좋은 골목이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여긴 일반 주택가라 주민들에게 폐를 끼칠 수 있으니 큰 소리를 내거나 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는 것은 삼가야 한다는 것이다. 방콕도 길고양이 개체수 조절에 애를 먹는 모양이라 끝도 없이 늘어나는 길고양이들을 달가워하지 않으시는 동네 주민분들이 계시다.

멋들어진 골목길 입구 전경
숨은 고양이 찾기
입구에서 조용히 식빵을 굽고 있던 냥이
왕주먹 왕근육을 가진 냥이도 있었다.
아기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던 엄마냥. 애정이 고팠는지 나를 계속 쫓아와 주변을 맴돌았다.
처음엔 한 두 마리만 보이다가 곧 십 수 마리는 족히 돼 보이는 고양이 떼가 나타났다.


구글맵 링크:





5. 빡남 파씨 짜런 사원 (Wat Paknam Phasi Charoen)


2021년 완공된 69m 높이의 거대한 좌불상이 자리하고 있는, 1600년대에 처음 지어진 사원이다. 몇 년 전 한 택시 기사님께서 방콕에서 꼭 가봐야 하는 사원이라며 추천해 주신 곳이다. 현지인을 제외하고는 일본인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보였다.


방콕에서 가장 유명한 사원들 (왓포, 왓아룬, 왓프라깨우, 왓사켓 등) 말고 새로운 사원을 가보고 싶은 분들. 혹은 관광지에 출석체크 하듯 방문하는 사원 말고, 마치 한국에서 절에 가듯이 조용히 가서 기도도 드리고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평화로움을 느끼고 싶은 분들께 방문을 추천한다.

사원에서 마주친 고양이 모두 목에 저렇게 방울을 달고 사랑받는 고양이의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방문객들이 벗어둔 신발들 향기에 남다른 집착을 보이고 있었다.
분명 자고있길래 몰래 코너를 돌아서 사진을 찍었는데,
두 번째 사진엔 이렇게 눈을 뜬 채로 사진에 찍혔다... 소오름.. 깨워서 미안해.
지나가는 사람마다 걸음을 멈추고 이 고양이를 보면서 귀여워 죽겠다는듯 앓는 소리를 냈다. 하지만 이 슈퍼스타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쿨쿨 잠만 잘 자고 있었다.
한 번은 꼭 직접 봐야 하는 69미터 높이의 좌불상


구글맵 링크:

https://goo.gl/maps/BGTPkYF4X2w2PP9P7




6. 지도 그림에는 없지만, BTS 에까마이 역 근처에서 마주친 고양이


가끔은 이렇게 주요 고양이 출몰 지역이 아닌 곳에서 귀여운 고양이를 우연히 만나기도 한다. 몸집이 작은 어린 고양이였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혼자 잘도 뽈뽈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빌딩 옆 정원을 이리저리 누비고 다니며 풀 냄새를 원 없이 맡더니 얼마나 만족스러웠는지 별안간 바닥에서 뒹굴거렸다.

마치 안에 뭘 숨겨놓은 것처럼 풀숲 더미 냄새를 열심히 맡는다. 꼬리가 바짝 위로 올라간 걸 보니 기분이 엄청 좋은가보다.
그대로 쭉 걸어가더니 이번엔 콘크리트에서 혼자 뻗어 나온 나뭇가지 냄새를 열심히 맡는다.
킁킁.. 킁킁
그러더니 기분이 좋은지 바닥에 벌러덩 누워서 뒹굴뒹굴 거렸다. 그러다 또 풀냄새 맡고 뒹굴거리기를 반복. 좋은 삶이다.


가까이 가지는 못하고 멀찍이 떨어져 바라보기만 했는데, 그 독립적이고 행복해 보이던 자그마한 뒤태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나도 앞으로 저렇게 살아야겠다는 자극을 받았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바로 앞에 놓인 그 순간을 온전히 그리고 충실하게 즐기는 저 고양이처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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