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안 개구리

나의 이야기,랄까

by 델리만쥬

* 2022년 말 저장했던 글입니다.


때는 2019년, 고등학교 3학년 때 국어 학원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더랬다.

"여러분, 입시 한번에 끝내야지. 세상이 얼마나 빨리 바뀌고 있는데, 하루가 멀다하고 세상이 바뀌는데 언제까지 이 국영수 붙잡고 있을 거야."

그때는 그게 정말 맞는 말인가? 마음에 두지도 않았다.

당연하지. 건동홍숙보다는 서성한이 낫고, 서성한보다는 연고대이며, 연고대보다는 SNU인데? 1년 더 투자해 한 단계 높은 대학을 갈 수 있다면 당연히 투자해야지, 생각하던 수험생이었다, 나는.


그리고 2020년, 대학생이 된 나는 반수의 고민에 서 있었다. 그제서야 6평 때쯤 해주셨던 저 말씀이, 벼락마냥 내 머릿속을 휘젓고 다니기 시작했다. 왜 저런 말씀을 하신 건지, 내 신분이 수험생에서 20살, 신입생으로 바뀌었을 뿐인데 그제서야 파바박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 나라에서, 수능 한번 다시 해봐? 는 쉽사리 나올 수 있는 말은 아니다. 더군다나 재수라는 더 절박한 길을 가는 친구들이 있는 입장에서는 더더욱 쉽게 내뱉을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내 인생이고, 내 입장에서 조금 더 이기적으로 살 필요는 있다. 지금의 투자는 내 인생을 위한 것이지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게 아니므로.


정말 별의별 생각을 다 하면서, 거진 3달을 고민했다. 더 장고하면 악수만 둘 것 같았고, 이미 했던 도전에 재도전하는 대신 새로운 도전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도전은, 22학점, 학원알바, 그리고 공모전과 각종 대외활동. 그냥 갓생을 살아보기로, 고3 때 못다한 그 '갓생'을 약간의 자유와 함께 지키기로 한 것.


3학년 2학기를 마친 지금, 저때의 수가 악수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이후로, 4개 전공을 하면서, 모든 학기를 6,7전공으로만 꽉꽉 채워 들으며 정말 지식을 거의 머리에 쏟아붓다시피 하는 시간을 보냈다. 팀플에 자신이 없어 그저 조용히 할 것만 하던, 초등학교 반장선거 한번 안 나가봤던 아이는 학생회 대표에, 각종 동아리 운영진에 팀장, 발표를 밥 먹듯 맡는 화석이 됐다. C언어와 C++이 같은 언어 아니냐고 물어보던 컴맹은, 백엔드 개발직을 지나쳐 데이터사이언스 직종을 희망하는 4학년이 됐다.

그저 영어가 좋아서 외고에 가겠다던 중학생은 영문 강의를 겁 없이 듣는, 교환학생을 다녀온 그런 대학생이 됐다.

그 와중에도, 텍스트마이닝부터 시작해 어떻게 하면 더 잘 구현할지를 고민하고, 딥러닝과 NLP 등 또 새로운 데싸 분야를 공부하는 그런 학생이 됐다.


가끔 2020년도의 나를 생각하면 조금 웃기다. 똑같이 3년이 흘러갔는데, 고등학교의 3년과 대학교의 3년은 너무나도 달랐다.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고, 가치관이 달라졌고, 꿈이 달라졌고, 그렇게 내가 바뀌었다.


잘은 모르겠다. 프로스트가 본인의 시 The road not taken('가지 않은 길') 에서도 그랬다 -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중략)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그렇다. 모든 것이 달라졌다. 내가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했는지는 나중에 지나고 나야 알게 되겠지만 내 모든 것이 달라진 건 사실이다. 그리고 데싸 분야를 공부하는 사람들과 대화하며 느끼는 점도 마찬가지다:

" 아직 갈 길이 너무나도 멀다 "는 것.

그렇다. 나는, 모든 내 인생의 순간에서, "우물 안 개구리"였다 -



To be continued .

작가의 이전글줏대라는 게 필요한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