줏대 없는 것도, 줏대가 너무 강한 것도 어렵다
한 중학교 1,2학년 때쯤이었을까?
주변 어른들이 이따금씩 나에 대해 'XX이는 자기 세상이 참 뚜렷한 것 같다'는 말씀을 해주셨더랬다. 그런데 몇 년 후, 고등학생의 나는 '줏대 없이 너무 동의하기만 하는 거 아니냐'는 평가를 받았다. 내가 달라진 것도 아닌데 말이다.
갑자기 조금 있으면 10년이 다 되어 가는 이야기를 왜 꺼내냐 하면, '자기 주관', '자기 세상'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는 줏대가 필요한 사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단, 우리는 그 '줏대'가 다른 사람에게 줄 영향(보통은 부정적인)도 생각해봐야 할 거고.
가령, 나는 (또 적다 말았는데..) 현재 모 회사의 객원 연구원으로 일하는 석사과정 학생이다. 회사원이 아니라, 기본 소속은 대학원 과정이지만 연구의 일환으로 회사에 일주일에 2-3번 정도 출근하여 일을 한다. 사실 학부 4학년(도 아니고 5학년 1학기..가 맞겠다만) 때 멘토링의 일환으로 시작된 이 연구가, 어쩌다 보니 서비스 론칭을 함께하게 되면서 이것저것 팔로업한 지 1년 다 되어 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투입된 삽질과 시간과 노력은 정말 길고 길었을 것이다. 집에서 왔다갔다, 왕복하는 데 넉넉잡아 2시간 정도 소요됨을 계산한다면 순수 시간만으로 한 달은 그냥 채울 만큼, 석사 진학 후 시간 쪼개서 관리하느라 마음고생한 시간까지 계산한다면... 아니 그 마음고생한 만큼을 수치화한다면... 더 얘기하지 않겠다.
고등학교 때, 어느 날 학원에서 접했던 영어 지문도 그렇고, 경제학에선 '매몰 비용'이라는 말로 이야기하는 상술한 노력들을, 그 지문에선, 경제학에선 이렇게 이야기한다. '고려하지 않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잘못된 방향 같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그 일을 끊어야 한다고.
고민을 안 해본 것도 아니었다. 모두가 말렸다. 뭐 하러 그렇게 일하냐. 돈 때문도 아니고, 계약도 없다 하면 깔끔하게 너의 인생에서 지워도 되는 거 아니냐. (여담이지만 나는 기본 소속이 연구실인 만큼 회사에서 월급을 받지 않는다. 주신다 하면, 객원 연구차 출근하면 간단한 음료 정도? 여기에 식사를 사주시는 정도다.)
그러나 '나의 고집'이 꽤나 센 나인지라, 그 줏대가 없다가도 생기는 나인지라 유지 중이다. 내가 이제 와서 회사 일 못하겠다고 하면 회사가 받는 타격은 둘째치고 내가 투자한 것들에 대한 대가도 받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게 잘못된 방향이라면 나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것이겠지만 동시에 '헤엄쳐 본 만큼 내 땅'이라는 말도 있다.
더군다나 의료 도메인에 대해서 의생명통계학 이외의 전공지식이 전무한 나는 헤매더라도 이 회사에서 헤매야겠다는 줏대가 있다. 그러니까, 어떻게 인생을 가름할 선택을 하느냐에 대해 누군가는 '일단 해봐라. 헤매면 된다'고 얘기하는 거고 누군가는 '그게 잘못되었다면 되돌아가라'라고 얘기하는 거다.
그게 줏대가 있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