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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영 Dec 14. 2024

오늘, 내 감정의 온도

살아가다 보면 감정은 예측할 수 없는 온도로 나를 휘감는다. 차가운 분노가 심장을 꽉 쥐어 흔들기도 하고, 뜨거운 눈물이 속눈썹 끝에 맺히기도 한다. 오늘, 직장에서 마주한 부조리한 상황 앞에서 내 안의 화는 걷잡을 수 없이 치솟았다. 억울함이 온몸을 짓누르고, 아무리 입술을 깨물어도 심장은 제멋대로 뛰었다.


대부분의 일은 시간이 지나면 날 선 감정을 서서히 깎아내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만은 달랐다. 내 안에 단단히 묶여 있던 감정의 덩어리가 툭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억눌렀던 분노와 서러움은 더 이상 나를 설득하지 못했고, 속으로 물었다. 맞서야 할까, 아니면 순응해야 할까? 어차피 바뀌지 않을 거라면 그냥 고개를 숙이고 지나가야 할까?


이런 질문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힐 무렵, 문득 영화를 보고 싶어졌다. 고민 끝에 고른 작품은 퍼펙트 데이즈. 영화 속 주인공은 매일 같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을 하며 살아간다. 공중화장실을 청소하고, 도시의 구석구석을 도는 일상이 이어지지만, 그는 그 단조로움 속에서도 세상의 미세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행복을 찾아간다.


엄마와 함께 영화를 보다가 문득 물었다.

“엄마, 이런 삶도 행복할까?”

“행복은 마음속에 있는 거야.”


행복이 마음속에 있다니. 그 말을 곱씹으며 다시 물었다.

“그럼 엄마는 행복해?”

엄마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조용히 말했다.

“사실 나도 행복이 뭔지 잘 모르겠어.”


의외의 대답이었다. 오늘 직장에서 겪은 부조리함과 그로 인해 끓어오른 분노, 억울함을 떠올려본다. 이 감정들이 사라지면, 나는 곧바로 행복에 도달할 수 있을까? 아니면, 이런 부정적 감정을 깔끔히 통제할 수 있다면 그것이 행복으로 가는 길일까?


행복은 특정 감정의 부재나 단순한 마음의 안정과는 조금 다른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 느낀 뜨겁고 차가운 감정들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어디에 내 마음을 두어야 할지를 일깨워주었다. 기계적으로 분노를 억누르거나 억울함을 없앤다고 해서 행복에 가까워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이러한 감정을 나만의 언어로 이해하고, 그 안에 스며든 의미를 찾아내는 과정 자체가 행복에 다가서는 한 방식일지도 모른다.


분노는 싸울 힘을, 억울함은 정직함을, 슬픔은 내면을 들여다볼 용기를, 고독은 견디는 힘을 준다. 결국 이 다양한 온도들이 내가 세상을 이해하고, 나 자신을 지키며 앞으로 나아갈 출구가 되어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감정들을 글로 풀어내는 순간, 나는 깨닫는다. 이들은 단순히 내 마음을 어지럽히는 손님이 아니라, 나만의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재료라는 것을. 쓰는 행위는 감정의 파편들을 문장으로 엮어내는 과정이다. 비틀린 감정은 의미로 전환되고, 날 선 감정은 하나의 이야기로 다듬어진다. 그렇게 정돈된 감정들은 내가 가진 힘이 되고, 나를 정의하는 하나의 강점으로 거듭난다.


천천히 내 안의 온도를 들여다본다. 뜨겁고 차갑고, 때로는 미지근한 감정의 결들을 헤치며 나아가는 동안, 나는 조금씩 성장한다. 오늘 내 안의 온도는 불편했다. 하지만 그 불편함조차 온전히 나만의 것이다. 감정의 온도는 늘 변덕스럽게 출렁인다. 어떤 날은 화로 끓어오르고, 또 어떤 날은 무기력에 얼어붙는다. 오늘은 뜨겁고 차가운 기류들이 뒤섞여 하루를 빼곡히 채웠다. 어쩌면 이런 날들이야말로 삶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행복과 불행은 분명히 정의되지 않은 상태로 유영하고, 우리는 그 속에서 순간을 지나친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 내가 느낀 온도는 오롯이 나의 것. 그리고 그 온도를 글로 풀어낼 수 있음이야말로, 내가 가진 특별한 힘이다.


내일의 온도는 어떨까. 오늘과 같을지, 전혀 다를지 모른다. 그 변화 속에서 나는 나를 알아가고, 삶을 배워가며, 글을 통해 나만의 길을 찾는다.


오늘, 나의 온도는 그렇게 내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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