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기억하라
내가 아직 세상을 좋아하는 데에는
우리의 끝이 언제나 한 그루의 나무와 함께한다는 것에 있다
...
멀리 자라고 있을 나의 나무에게도 살가운 마음을 보낸다.
한결같이 연하고 수수한 나무에게 삼월도 따듯한 기운을 전해주었으면 한다
박준-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中 '삼월의 나무
이 시를 읽고 나의 끝이 직관적으로 와닿았다. 여기서 우리의 끝과 함께하는 나무는 바로 '관'이다. 우리의 연한 살은 언젠가 차가운 흙 속에 파묻힌다. 나의 살과 맞닿을 그 딱딱한 나무는 지금 어딘가에서 자라고 있다.
사람은 모두 늙고 병에 들기도 하며 결국에는 죽는다. 그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단순히 문장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깨달은, 그런 ‘실존주의적 자각’(죽음으로의 선구)을 한 사람은 드물다. 나는 이러한 거창한 ‘실존주의적 자각’을 했다고 자부하기보다, 그저 이런 부분에 조금 관심이 많다. 가장 좋아하는 말도 ‘memento mori’로,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말이다. (아이패드 뒷면에 각인까지 시켜놓아 패드가 휘어짐에도 불구하고 이 각인이 좋아서 애플케어서비스를 받지 않고 있을 정도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죽음에 관련된 사실을 마주쳤을 때 회피하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며 우리의 현실이다.
내가 이것들을 생각하는 관점은 우울이나 허무주의 따위가 아니다. 죽음을 기억할 때 단편적인 시각에 발목 잡혀 불안하거나 쓸데없는 강박을 가지느라 소탐대실(小貪大失)하기보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의 유한성을 깨닫고 좀 더 가치 있게 쓸 수 있다고 느꼈다. 우리의 끝을 충분히 깨달았을 때, 무엇에 매몰된 삶을 살기보다 현재를 살며 사회에 공헌하는,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결국 태어나자마자, 이 시간에 발 딛자마자 죽음을 향해 달려나가는 존재이다. 인간이 만든 기준에서 위대한 업적을 달성했든, 돈이 많든, 공부를 잘하든지 간에 모두 죽는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도 모두 여기,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에서의 시간은 유한하다. 이 다음 세상은 아무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칼 야스퍼스가 말한 '타자와의 연대'가 바로 내가 깨달은 것이었다. 이는 단순히 우리 주변 사람을 소중히 여기자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넓고 멀리 보아 인간이라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 존중하고, 경외심을 가지고 대하며, 나를 싫어하는 사람조차도 행복하기를 바라는,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모두 생로병사의 고통을 겪는 어린 중생들인데 우리끼리 치고받아 무엇하겠는가. 사랑만 하고 살아도 모자라다.
아니, 사실 시간에 모자람이란 없을 지도 모른다. 어떤 철학자는 '지금', '현재'는 무궁하고 영원하다고 했다.
사실 그렇다. 우리가 미래를 떠올리긴하나 어쨌든 지금 현재에 머물고 있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러니까 끝나기 전까지는 영원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원래 시간은 상대적인 것이라 현재를 더 잘게 쪼개어 쓸수록 끝없이 펼쳐지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죽음에 관한 철학함을 할 수 있는데 도움을 주는 작품들을 소개하려고 한다.
원래 철학과 윤리라는 것이 얕게 보면 뜬구름 잡거나, 혹은 당연한 얘기를 거창하게 말한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경험이 쌓이고 시야가 넓어지면, 그 단순하고 진부한 한 문장이 얼마나 많은 진리를 집약한 말인지 알 수 있다. 부디 인문계열에 대한 경시가 사라지고 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기를 소망한다.
추천도서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살고 싶다는 농담
시간이 멈춘 방
DEATH 죽음이란 무엇인가
추천 음악
앨범 DOUBLENOEL 중 長龍峻 (장용준)'
사실 장용준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켜 논란이 있지만, 그럼에도 추천곡만 놓고 보았을 때
이 글의 주제와 맞는 예술성을 띠기 때문에 추천한다.
오보에 - 양홍원
이 앨범은 나중에 따로 해석과 분석 및 비평을 한 글을 쓸 것이다. 정말 명반이고, 앨범에 수록된 전곡을 차례로 들으며 멜로디와 가사를 꼭꼭 씹어 감상하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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