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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정은 Sep 07. 2022

슬럼프3

 몇 년 전 어느 봄날, 나는 고르고 골라서 회색 스카프를 샀다. 나의 감정이 메말라가던 때였다.     

색은 감정의 표현이라고 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의 내 표정, 정서, 그림 작업 모두 그 스카프의 색처럼 온통 잿빛이었던 듯하다. 


특히 색을 사용하는 것은 작업할 때 누리는 큰 즐거움 중 하나이기 때문에 그림에서 색이 사라진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의도적으로 최소한의 색만 사용하는 단색화 같은 경우와 달리, 그때 나는 어떤 색을 칠해도 겉도는 듯 느껴져서 쓰고 싶지만 쓸 수 없었다.    

  

그런데 어떤 이야기든 끝까지 하고 나면 비로소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는지, 어느 순간 내 그림들은 옅은 색부터 조금씩 물들어갔다. 창백했다가 점점 발그레하게 혈색이 돌아오는 얼굴처럼 말이다,      

나는 다시 팔레트를 갖게 됐다. 


<비둘기 떼>   10F   혼합재료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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