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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정은 Sep 12. 2022

때로는 여행자

그림 이야기

가끔 취미 미술생들과 그룹전을 한다. 그럴 때 갤러리를 가득 채운 즐거움이 인상 깊게 다가온다. 예쁘게 차려입고, 멋진 오픈 상을 준비하고, 많은 손님들을 초대하고, 꽃을 받고, 사진을 찍고, 열심히 그림 설명을 하는 그들을 보면서 모처럼 나도 전시하는 흥을 느낀다.


전업 화가로 사는 것과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경험의 정도에 차이가 있다. 한 나라의 국민으로 사는 것과 여행자가 되어 그 나라를 방문하는 것이 다르듯이 말이다.

국민이 되면 자아가 국토만큼 확장 되어 그 안에서 일어나는 우여곡절을 자신의 일로 겪는다. 날씨가 맞지 않다고, 정치가 엉망이라고, 납득할 수 없는 문화가 많다고 쉽게 떠날 수 없다. 

하지만 여행자가 되면 가장 마음에 드는 곳에서 며칠 머물며 즐기면 된다. 


지지고 볶으며 사는 현지인에 비해 겉핥기식으로 구경하는 여행자의 경험이 가벼울 수 있지만, 대신 장점이 있다. 

여행은 오감을 활짝 열게 만든다. 매일 시큰둥하게 올려다보던 하늘도, 종종 먹던 메뉴도 여행지에서 경험하면 전혀 다른 감성으로 다가온다. 이처럼 여행을 하면 낯선 사람과 풍경을 구경하기도 하지만 사소한 자극에도 호들갑스럽게 반응하는 나를 만나기도 한다. 


화가는 어쩔 수없이 ‘예술가의 고뇌’라는 과정을 겪는데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일상 전체가 먹구름 속에 갇힌 듯하다. 

그림 그리는 게 너무 무겁게 느껴진다면 한동안 그림 세계의 여행자가 되길 권한다. 

감수성 풍부한 나를 만나기 위해 꼭 다른 곳으로 떠나야 할 필요는 없다. 가지고 있던 짐을 잠시 내려놓으면 된다. 신념, 자존심, 사명감, 치열함 등등.     


<품49>   6p   혼합재료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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