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 작은 고양이 케세프
Come ti vidi
m’innamorai,
E tu sorridi
perchè lo sai.
- Arrigo Boito
“내가 당신을 보고 사랑에 빠졌을 때, 당신을 그것을 알기에 웃어주었어요.” 이 말을 아주 오래전 밀라노에 출장 갔을 때 커피 바에서 먹던 초콜릿 종이 안에 쓰인 것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에는 이탈리아어에 대해 잘 알지 못해 그저 시처럼 리듬감 있는 말 같아 마음에 들어서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두었는데, 나중에 이탈리아 친구의 해석을 듣고 참 잔잔하게 예쁜 말이라고 생각했다. 생각해 보면 나에게 의미 있는 사람들과 순간들은 이렇게 잔잔하고 사소하게 다가와서는 나를 구성하는 중요한 일부분이 되었다.
미국 독립 기념일 주쯤에 고양이를 구조해서 입양 보내는 비영리단체로부터 고양이 한 마리를 입양하게 되었다. 첫 고양이 마틸다와 지내게 된 것이 5년쯤 되었고, 마틸다가 세 살 반쯤 되었을 때부터 같이 지낼 수 있는 친구 고양이를 한 마리 더 입양하는 게 어떨지 생각하고 있다가, 3년 동안의 고민 후 드디어 마음에 드는 고양이를 찾았다. 하지만 생명을 입양해서 적게는 10년 많게는 15년 정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과 아기 고양이를 키운다는 책임감 (마틸다는 입양 당시 중성화를 끝낸 청소년 고양이였다)에 또 일주일 정도를 더 고민하다가 입양처 웹사이트에 고양이 입양 희망서를 제출했다. 코로나의 여파로 입양단체 방문은 입양이 확정되었을 때에만 가능했기에 영상 통화로 인터뷰를 했다. 기본적인 질문들 예를 들어 고양이나 다른 반려 동물들을 키운 경험이 있는지, 집 창문에 방충망이 설치되어 있는지, 만약에 어떠한 부득이한 일로 반려 동물들을 키울 수 없을 때에 대한 대책 등에 대한 질문에 대답해야 했고, 인터뷰는 20분 정도만에 끝났다. 스몰 톡의 나라 미국 답게 본 질문에 대해 소요된 시간은 많아야 10분 남짓이었다. 그렇게 2주 뒤에 고양이 이동장과 고양이 이름, 집 주소, 주인 번호가 각인된 목줄을 가지고 오라는 대답을 듣고 설렘 반 긴장 반으로 2주를 보냈다.
2주 뒤, 입양단체로 가기 위해서 롱아일랜드행 기차를 탔다. 맨해튼에도 입양단체들이 많은데 그 많은 고양이들 중에서 왜 굳이 이렇게 멀리(기차로 1시간 거리) 있는 아이를 입양하게 되었는지는 아직 생각해도 잘 모르겠지만, 입양 웹사이트에서 처음 이 아이의 사진을 보았을 때 '얘다!' 싶은 마음이 들어 그때 이후로 계속 시간이 날 때마다 이 아이가 입양이 되었는지 웹사이트를 계속 왔다 갔다 하면서 고민을 했다. 아직 입양이 확실하게 결정된 것도 아니었는데 이름은 케세프 (히브리어로 '은' 또는 '돈')라고 지어야지 생각했다. (새하얗고 윤기가 있는 털을 보니 생각난 것인데, 나중에 말하겠지만 병원비로 돈도 참 많이 들어서 참 아이러니했다... 여담으로 마틸다는 다른 가족들에게서 두 번째의 파양을 당한 후, 나를 처음 만났을 때 눈빛이 영화 레옹의 마틸다의 눈빛과 닮아서 그렇게 이름 지었다.) 입양기관은 기차역에 내려서 택시로 15분 거리에 있었다. 봉사하시는 분들 중 한 분이 정말 감사하게도 기차역에서 자신의 차로 픽업해서 입양기관으로 데려다줄 테니 도착 전 미리 연락을 달라고 하셨다. (감사의 의미로 부담스럽지 않게 한국 식료품점에서 한국 과자들과 차 몇 개를 사서 포장해서 드렸더니 한국 음식은 처음이라며 기뻐하셨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 정말 많은 고양이들이 있어서 처음에는 살짝 놀랬다. 캣 타워에서 낮잠 자는 태비 고양이, 여기저기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회색 고양이 두 마리들, 의자 사이를 요리조리 뛰어다니는 고양이 무리들, 화가 난 건지 다친 건지 진정이 되지 않아 케이지에 들어가 있는 몇몇 고양이들을 보고 있자니, 너무나도 산만한 이 상황에 '고양이는 최대 두 마리까지만...' 이라며 다짐을 했다. 좀 내적으로 진정을 하고, 봉사자 분과 (또다시 스몰 톡을 하며) 시야에 보이는 책상과 의자 쪽으로 가서 서류 작성을 시작했다. 거의 다 끝나갈 무렵, 궁금증에 "케세프는 어디에 있나요?"라고 물었는데 봉사자분께서 호탕하게 웃으시며 "이미 네가 가져온 이동장 안에 들어있는 걸."이라고 하셨다. 깜짝 놀라서 이동장 안을 보니 구석에 조그맣게 하얀 털 뭉치같이 웅크리고 나를 빤히 쳐다보는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이곳에 온 지 최소 한 시간은 되었을 텐데, 그동안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케세프의 첫인상은 정말 인형처럼 작고 가냘팠다. 3개월 남짓한 나이라 면역력이 약해서 주변 고양이들에게 곰팡이 성 피부염을 옮았다는 것 외에는 딱히 몸에 큰 문제가 없어서 입양처에서는 입양을 바로 허락했고, 격리 한 달 동안 하루 두 번 감염 부위에 약을 발라주고, 면역력을 강화하는 보조제를 사료에 섞어 주면서 애지중지 키웠다. 그렇게 하루가 다르게 팔 부위에 비었던 털이 차오르고, 점점 건강하게 자라나는 케세프를 보면서, '이렇게 작고 연약한 너도 하루하루 열심히 성장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뿌듯했다. 그 후로도 혹시 모를까 동물 병원에서 정기적으로 피검사와 혹시 모를 다른 질병에 대해 검사를 했다. 케세프의 나이가 4개월쯤이라고 추정(의사 선생님께서 길고양이들은 대부분 태어난 날짜를 가늠하기 어렵기에 자라 난 이빨을 보면 나이를 추측할 수 있다고 하셨다.) 할 수 있었을 때에 바로 동물 병원으로 가서 중성화 수술을 했다. 마취에서 깨자마자 내 옆으로 와서 골골 송을 부르며 껌딱지처럼 꼭 옆에 붙어 있는 모습을 보니 안쓰럽고, 그 힘든 수술을 잘 해낸 것이 대견하고, 너무나도 사랑스러워서 어쩔 줄을 몰랐다. 집에 와서는 목에 넥 카라를 한 상태에서도 마틸다를 따라다니며 마틸다의 사료를 뺏어먹고 장난치는 것을 보고 안심했다.
케세프가 이곳에 와서 지낸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나는 이 아이가 참 좋다. 손이 참 많이 갔던 아이라 그런지 더 애정이 생긴 것 일수도 있겠다. 아침마다 내가 일어났을 때, 눈을 지그시 깜빡거리면서 고양이식 눈키스로 인사를 할 때면 그날 아침부터 기분이 좋아져서 하루 내내 행복하다. 자신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나에게 큰 행복으로 다가온 다는 것을 이 아이는 알까? 이제는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