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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elle Sep 08. 2022

지극히 사적인 뉴욕 이야기

03 - 빛과 침묵의 건축가 루이스 칸

태양 빛은 건축물을 비추기 전에는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지를 알지 못했다.
                                                                                                         - 루이스 칸

  

뉴욕에 있는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1학년 1학기 첫 스튜디오 수업 시간 몇몇 학생들은 들떠서 벌써부터 처음 만난 동기들과 자신이 아는 건축가들의 이름을 나열하며 자신이 선망하는 건축가들은 자하 하디드, 르 코르뷔지에, 알바르 알토, 등이라며 입학 전 유럽이나 북미 지역들을 여행하면서 봤던 건축물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그렇게 건축가들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부족했고, 유럽에는 가 본 적도 없어서 수업이 끝나자마자 학교 도서관에 가서 보이는 대로 건축 관련 책들을 읽었다. 그렇게 첫 학기 동안 학교 수업이나 기숙사에 있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을 도서관에서 보냈다. 학교 캠퍼스 자체가 그렇게 큰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기숙사 길 건너편 건물의 도서관을 거의 매일 드나들면서 눈에 보이는 대로 건축 거장들에 관련된 책, 잡지 등을 읽었다. 그렇게 나름대로 스파르타 식으로 (정말 한국 학생답게) 역사책의 위인 외우듯이 공부를 했었다. 그렇게 자주 도서관에 눈도장을 찍으니 도서관 사서 분과도 나름 친해져서 새로운 건축이나 디자인 잡지가 들어왔을 때에는 나에게 넌지시 귀띔도 해 주셨다.


그 많은 책들 중에서 건축가 루이스 칸의 방글라데시 국회 의사당 건물을 처음 사진으로 봤을 때의 충격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날 정도로 강렬했다. 내가 이제껏 봐왔던 어떤 건축 양식과도 다른 엄청난 스케일의 기하학 적인 구조들과 햇빛, 그림자들의 대비를 보고 있자니 하나의 거대하고 신성한 조각상을 보는 것 같았다. 원, 삼각형, 사각형 등의 기하학적인 모양의 빈 공간들과 구조들은 어릴 때 가지고 놀 던 장난감들 같아서 왠지 모를 익숙함을 느끼기도 했다. 마치 중력을 가지고 노는 것 같은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들을 보고 있자니 조금은 무섭기도 했다. 공포의 무서움이 아니라 익숙하지만 낯선 것에 대한 경이로움과 이 것이 어떻게 지어졌는지 도대체 감이 잡히지 않는 나의 조바심, 그리고 '사람이 이걸 만들었다고?'라는 많은 감정들의 복합체였다. 마치 정말로 아름다운 작품 앞에 서면, 이성적인 설명보다는 감정적으로 압도되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것처럼 한동안 계속 책장을 번갈아 가면서 봤다. (만약 내가 실제로 그 공간에 있었더라면 감동해서 울었을지도 모른다.) 도저히 책 속의 사진들 만으로는 실내 구조들, 스케일, 동선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며칠 동안 평면도와 건물 단면도들만 뚫어져라 쳐다봤던 기억이 난다. 마치 다른 나라의 언어들을 처음 배울 때처럼 계속 쳐다보면서, 읽고, 이해하려고 했다. 건축과 구조에 관해서 이성적으로만 접근하려고 했던 나에게 루이스 칸의 건축물은 중력과 주변 환경에 대한 인간의 대응 만이 아닌, 언어나 예술처럼 인간 본연의 표현 욕구의 일부분이기에 참으로 감정적이고 섬세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루이스 칸은 이 건물을 디자인할 때, 특히 건물 구조만으로도 에너지 효율적으로 외부에서 들어오는 빛을 잘 컨트롤할 뿐만 아니라, 그 빛의 방향성, 그림자와의 대비와 스케일로 웅장하고, 거의 종교적일 정도의 신성한 건물의 분위기를 냈다. (그의 다른 프로젝트 중 1972년 작인 킴벨 미술관도 그 예시 중 하나이다. 관심 있는 분들은 찾아보시길.)


출처: National Parliament House by Louis Kahn (Abdullatif Al Fozan Award)


이 건물은 방글라데시 화폐, 우표 그리고 투표용지에 그려져 있을 정도로 방글라데시 국민들에게 참으로 의미 있는 건물이다. 1962년 파키스탄 정부는 미국인 건축가 루이스 칸에게 파키스탄 정부 소속 건물들과 국회를 지어 줄 것을 의뢰했다. 그 당시 파키스탄은 동, 서로 나뉘어 있었는데, 두 쪽으로 갈라진 정부의 화합과 결속력을 위한 취지로 들어온 의뢰였다. 하지만 1971년, 동과 서 파키스탄은 방글라데시(동 파키스탄)의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묵티바히니 독립군과 인도 정부의 지원으로 두 개의 국가로 분리 독립되었다. 그 후 이 건물의 건축 취지는 방글라데시의 정치적인 수도인 다카를 중심으로 국가의 독립을 상징하는 건물로 수정되었다.  

 

출저: Archidaily


평면도에서 보이듯이 전체적으로 팔각형의 중앙 건물 (국회의사당) 중심으로 작은 건물들 (사무실, 회의장, 모스크, 도서관, 기자 회견장, 식당, 주거 공간들 ) 배치되어 있는  건물은 멀리서 보았을  마치 인공 호수에  있는 성처럼 보인다.  인공 호수는 단순히 심미적인 효과만이 아닌 홍수나 몬순 시즌을 대비하기 위해서 빗물을 효율적으로 컨트롤할  있는 장치이기도 하다. 건물의 건축 자재는 비교적 저렴한 자재인 콘크리트와  대리석 디테일로 만들어졌고, 주거 공간 부분은 벽돌로 지어졌다.  당시 방글라데시의 재정 상황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었고, 1962년부터 1974년까지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설계를 했기에 칸은 재정적으로  압박을 받았다. (여담이지만 칸의 건축가로서의 삶에 대해  책들을 읽으면 항상 그가 아주 훌륭한 건축가였지만 재정적으로 항상 힘들었다고 한다.  부분이 이해도 되는 것이  본인의 엄마가 다른  아이들을 부양해야 한다는 의무뿐만 아니라, 자신의 철학적 신념으로 이해타산을 구구절절 따지지 않고 프로젝트를 해내었으니 재정적인 어려움은 어찌 보면 그에게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안타깝게도  건물은 루이스 칸의 사망 연도인 1974년에 보류되었다가 1983년도에 동료 건축가들에 의해서 완공되었다.


모든 것들에게는 끝이 있고, 변하지 않는 것은 없겠지만, 이 건물을 보면 항상 처음으로 건축에 대해 진심으로 감탄했던 순간이 생각나서 초심을 되찾게 된다. 칸 본인이 1969년 한 대학에서 침묵과 빛에 대한 강연을 한 적 있다. 그는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는 표현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는 우리는 태초에 자연에게서 표현하기 위한 도구들을 받고, 우리의 영혼으로 그 도구들을 연주한다고 했다. 그 표현에 대한 갈망은 사람에게도, 동물에게도, 식물에게도 있다고 했다. 그저 우리가 식물과 동물과 다른 것들을 우리의 숫자나 문자로 이해하지 못할 뿐, 본질적으로 모두 같은 피상적인, 그리고 잴 수 없는 (unmeasurable) 존재의 이유가 있다고 한다. (이 부분에서 그의 유명한 질문 “벽돌아 너는 무엇이 되고 싶니?”가 생각났다.) 그의 소망은 후에 과학이 잴 수 없는 것들조차도 우리 인간이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가 말하고자 한 잴 수 없는 것은 공간의 분위기에도, 시간에도, 빛에도 그리고 그림자에도 있다. 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건축물과 디자인은 많은 건축가들과 디자이너들의 영감이 되고 있다. 어쩌면 잴 수 없는 이유로 그의 디자인은 영원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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