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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관일 Dec 01. 2022

회사는 유치원이 아니다

철없는 젊은 날은 죽어야 한다

회사는 유치원이 아니다

     

신세대와 대화해보면 이런 항변을 자주 듣는다. “기성세대는 우리를 가리켜 ‘요즘 신세대는 스펙은 좋은데 정신력은 약하다’라고 하는 데 그것은 기성세대의 편견일 뿐”이라고. 그것이 신세대에 대한 기성세대의 일반적인 평가임에 틀림없다. “그들이 디지털 친화적이어서 컴퓨터와 인터넷 등 IT분야에는 톡톡 튀지만 멘탈은 약하다”고 한다. 


왜 기성세대가 그렇게 평가할까? 그것이 과연 편견일까? 그렇게 평가하는 것은 신세대를 상대해본 경험을 통해 느끼고 마음에 새겨진 현실적·객관적 판단 때문일 것이다. 자녀를 키우면서, 또는 직장에서 함께 일하면서 절실히 느끼기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신세대는 자신의 멘탈이 결코 약하지 않다고 할 것이요, 그러기에 억울해할지 모른다. 그러나 기성세대의 눈에는 나약하게 보이는 게 사실이다. 기성세대 자신이 젊었을 때와 비교해보면 ‘게임’이 안 된다. 신세대의 나약함을 증명할 수 있냐고? 당연히 있다.      


지각이 잦은 신입사원에게 큰소리로 나무랐더니 부모로부터 “잘 부탁한다”는 전화를 받았다는 상사의 이야기로부터, 일처리를 잘못한 부하에게 질책을 한 다음날 부모가 직접 찾아와 자식의 역성을 들며 항의했다는 에피소드는 기성세대로서 상상할 수 없는 나약함이다. 


그뿐인가? 더 극명한 사례는 군대에서 나온다. 군대가 어떤 곳인가? 전쟁에 대비하는 곳이다. 전쟁에 버금가는 강한 훈련과 적을 제압할 수 있는 깡다구를 키워야하는 것은 기본중의 기본이다. 그런데 야간 훈련을 하기 위해 얼굴에 위장(僞裝)크림을 바르라했더니 “피부가 민감해서 바르지 않겠다”는 신병이 있을 정도다. 


심지어 신병교육을 담당했던 어느 장교는 부모로부터 “우리 아이가 운동화 끈을 잘 묶지 못하니 살펴 달라”는 요구를 받은 적도 있다니 이러고도 멘탈이 약하다는 데 동의하지 못하겠는가? 오죽했으면 군대의 간부들 사이에서 “군인이 아니라 유치원 교사가 된 것 같다”는 한숨 섞인 푸념이 나올까?  

   

● 철없는 젊은 날은 죽어야 한다


군대는 말할 것도 없고 회사 역시 유치원이 아니다. 회사의 간부는 유치원 교사가 아니다. 고객을 만족시키기 전에 내부고객, 즉 내부구성원부터 만족시켜야한다는 이론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만족시킬 걸 만족시켜야지, 유치원생처럼 어르고 달래며 회사를 끌어갈 수는 없다. 그렇게 어르고 달래봤자 결국 헛수고다. 그런 사람은 어차피 경쟁력이 없는 사람이요, 주면 줄수록 앙앙거린다. 조금만 기분 나빠도 퇴사해버릴 것이다. 


새로운 세대를 이해하고 그들이 신바람 나게 활약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드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잊지 마라. 회사는 유치원이 아니다. 멘탈이 강한 훌륭한 젊은이도 많은데 나약한 대상, 이유 없는 반항에 물든 사람 - ‘빤대’까지 보살피며 비위를 맞출 수는 없다(빤대 : 빤질거리고 삐딱하고 뻔뻔하고 잘 삐치고 반대만 하는 신세대. 꼰대의 대칭어). 


젊은 세대로서는 이런 주장이 매우 불편할 것이다. 그러나 회사의 입장에서 사원을 보자. 당신은 그렇지 않겠지만 주위에 유치원생 같은 동료가 없지 않음을 알 것이다. 젊은 신세대의 눈으로 봐도 ‘빤대’가 있음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당신이 간부라면 그런 사람까지 달래가며 리더로 일할 것인가? 당신이 회사를 끌어가는 경영자라면 어떻게 사람을 경영할 것인지 냉정히 돌아보자. 그러면 거꾸로 신세대로서는 어떻게 처신해야할지 답이 나온다. 그렇다면 회사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 이상으로 젊은 구성원 역시 바뀌어야 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아프리카의 지성이라 불린 아마두 함파테 바(Amadou Hampate Ba). “노인 한 사람이 죽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 없어지는 것과 같다”는 유명한 말로 노인의 가치를 높이 샀던 그는 자전적 성장소설 《들판의 아이》(이희정 옮김/북스코프. 2008)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때 나는 일곱 살이었다. 어느 날 저녁, 식사를 마치고 아버지가 나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 

“오늘 밤으로 마냥 철없는 꼬마였던 너는 죽었다. 지금까지 너는 어렸기 때문에 뭐든 네 멋대로 할 수 있었지. 하지만 오늘 밤부터는 너도 어엿한 어린이가 되어야 한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철없는 꼬마였던 너는 죽었다”라고 하던 아버지의 말씀이 계속 머릿속에 뱅뱅 맴돌았기 때문이다.>     


그래 맞다. 이제 철없는 젊은 날은 죽어야 한다. 신세대를 부추기는 몇몇 논자들의 주장에 부화뇌동하며 마치 기성세대는 쓸모없고 생각도 없는 존재로 깔보는 자세를 바꿔야한다. 명과 암을 잘 가리며 기성세대의 가치를 인정하고 경험을 제대로 배우는 ‘어엿한’ 어른이 돼야한다. 유치원생처럼 나약하게 보호받으려는 생각은 떨쳐버리고 멘탈이 강한 신세대가 돼야한다.

철없는 젊은 날을 어떻게 죽일 것인지 오늘 밤은 잠 못 이루며 고민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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