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인간관계(8)
오래전의 일이지만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하나.
출장을 다니다가 우연히 들른 대전역 광장의 구두 닦는 집 이야기다. 구두를 닦는 곳이 요즘은 말끔하고 깨끗해졌지만 그때만 해도 상당히 지저분하고 누추한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그곳은 전혀 달랐다. 문화적(?) 충격을 느낄 정도로 잘 정돈되고 깨끗했다. 그 안에서 30대 후반의 젊은이가 잔잔한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고 구두를 닦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영화 ‘소림사’로 유명한 중국출신의 배우 이연걸을 닮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잘 생기고 깔끔했다. 그는 성실했으며 매우 상냥하고 친절했다. 구두를 닦는 것도 정성을 다했다. 참 꼼꼼하게 잘 닦았다. 나는 그의 단골이 됐다. 그러던 어느 날. 대전에 갔다가 그곳에 들렀더니 “선생님, 이제 뵙기가 어렵게 됐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사정을 들어보니 이랬다.
그에게 구두를 닦기 위해 가끔 들르는 단골손님이 있었다. 말쑥하게 생긴 중년의 신사였다. 바람이 불며 몹시 춥던 겨울의 어느 날 그 신사가 구두를 닦고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정말 성실하게 일을 잘한다. 그런데 이렇게 추운 역 광장에서 일하는 것 보다 국군 사령부(가칭. 그러나 실제로 계룡시에 있는 군부대의 하나다)같은 곳에서 구두를 닦으면 일하는 환경도 낫고 수입도 안정적이어서 좋지 않은가?”
그가 대답했다. “그렇게 되면 정말 좋지요. 그러나 그런 곳에서 일하는 건 아무나 하는 게 아니거든요. 그 자리를 노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선이 닿아야 할 거고 빽도 있어야 되겠지요.”
“허허, 그런 건가?” 그 신사는 그렇게 다녀갔다. 그리고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사령부로부터 어떤 사람이 찾아왔다. 그리고 원한다면 그곳에서 구두를 닦는 일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사연인 즉슨, 그 중년의 신사는 가끔 서울을 오가는 중에 구두를 닦기 위해 그곳에 들렀던 장군이었던 것이다. 인연이란 이런 것이다(그는 요즘 어디서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궁금하다. 분명히 성공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