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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관일 Dec 03. 2022

"변화와 혁신, 나만 빼고 하세요"

혁신하고 싶다고? 딱 하나만 바꿔라(23)

23. “변화와 혁신, 나는 뻬고 하세요”     


P그룹의 자재 담당 부장인 Y씨는 그룹 회장에게 불려가 은밀한 지시를 받았다. 두어 달 후에 있을 정기인사에서 인력개발 담당부장으로 발령을 낼 것이니 사전에 그룹의 연수체계를 완전히 혁신하는 구상을 하고 있으라는 것이다. 그룹은 앞으로 인력개발 중 특히 연수분야를 핵심 역량으로 키울 것이며 대대적인 사원교육을 통하여 그룹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겠다는 게 회장의 구상이다. 그러니까 Y 부장으로서는 매우 중대한 임무를 부여받은 셈이요 회장으로부터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증거도 된다. 


P그룹의 산하에는 계열사 연수원이 6곳이나 있어서 평소에 교육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많은 곳이다. 그럼에도 세월이 지날수록 맥이 빠지는 듯한 감이 있었다. 연수원에 배치된 교수요원들은 소위 ‘요직’에서 배제되었다는 묘한 열등의식을 갖고 있었고, 또한 연수원이 본사와 떨어진 지방에 있어서 아무래도 업무나 근무태도의 긴장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것을 개혁하라는 게 회장의 지시인 것이다.


회장의 특별지시로 의욕이 충천한 Y부장은 입이 근질거리는 것을 참으며 얼마 후 자신이 그룹의 교육혁신을 담당하게 된다는 것을 극비로 삼았다, 그리고는 회장의 뜻을 받들어 무엇을 어떻게 개혁할 것인지 은밀히 조사하였다. 


조사의 방법이란 별게 아니다. 개인적 친분을 매개로 하여 계열사 연수원에 근무하고 있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때로는 술자리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슬며시 연수원의 문제점과 고쳐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아냈다. 


Y부장의 의도를 알 수 없는 교수요원들은 술을 마실수록 연수 현장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술술 풀어놨다. 그룹 교육의 문제점과 해결해야할 것 들을 상세히 말해주었다. “제가 생각해도 연수원을 이렇게 운용해서는 안 됩니다.” “교육이 100년 대계라는데 우리 회사의 교육을 보면 엉망입니다”라며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까발렸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Y부장은 그렇게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그룹의 연수개혁 프로그램을 멋지게 완성하였다. 얼마 후 그는 인력개발부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때가 온 것이다. 그는 이미 완성된 개혁 프로그램을 회장에게 보고하여 승인을 받았다. 드디어 대대적인 개혁이 시동을 걸었다.


Y부장이 가장 먼저 한 일은 계열사 연수원의 교수요원을 모두 불러 모아놓고 교육개혁을 위한 워크숍을 개최하는 거였다. 개혁을 선포하며 분위기를 잡는 게 중요하다고 믿었으니까. 그 자리에서 회장에게 보고했던 개혁 프로그램을 발표하였다. 


그 개혁 구상이라는 것은 결국 연수원의 교수요원들이 내놓은 의견을 취합한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러니까 아래로부터의 개혁 프로그램인 셈이다. 충분히 소통이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Y부장의 개혁구상은 큰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연수원의 교수요원들이 평소에 답답해하고 불평하며 소망하던 것들이 일거에 해결될 수 있는 거니까.     


결과는 어떠했을까? 연수원 교수요원들로부터 “어쩌면 그렇게 우리 속을 잘 아느냐?” “가려운 곳을 제대로 긁었다.” “현장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한 개혁 프로그램이다”라며 격한 환영을 받았을까? 현실은 거꾸로였다. 개혁 프로그램은 연수원 교수들의 심각한 저항에 부딪혔다.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자기들이 하자는 대로 했는데 말이다. 


왜 그랬을까? 개혁 프로그램의 상당 부분이 결국 연수원 종사자들이 실행해야 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연수원 종사자들의 변화와 인내와 희생을 요구하는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엄청 귀찮은 일들이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래서 개혁은 어렵다. 겉으로는 누구나 변화와 개혁을 외친다. 그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럼에도 그것이 자신에게 돌아갈 때는 저항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변화하고 개혁은 하되 자기는 가만히 놔두기를 바란다. 이것이 현실이다. 

변화와 개혁이 남들에게 국한될 때에만 환영한다. 자기는 예외로 남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게 바로 총론 찬성, 각론 반대라는 거다. 남의 개혁은 좋은 데 나의 개혁은 불편한 것이다. 바로 여기에 개혁의 포인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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