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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관일 Jan 10. 2024

알쓸잼이(1)

알아두면 쓸모있는 재미있는 이야기

열정의 화신 나이팅게일


플로렌스 나이팅게일(Florence Nightingale, 1820 ~ 1910). 그녀는 영국의 부유한 가정 출신으로 1820년 5월, 부모가 이탈리아를 여행하던 중 피렌체에서 출생하였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간호에 대한 관심이 매우 컸다. 그리하여 영국과 독일에서 간호사 교육을 받았고, 20대의 어린 나이에 유럽과 이집트 등지를 견학하고 귀국한 후 정규 간호교육을 받아 런던 숙녀병원의 간호부장이 되었다. 이때 그녀의 나이 33세. 


  1854년 크림전쟁(Crimean War)의 참상에 관한 보도에 자극되어 국민모금을 통해 기금을 모은 뒤, 38명의 간호사들과 함께 이스탄불의 스쿠타리(Scutari)에 있는 영국의 야전병원에서 근무하기를 자원하였다. 

  우리는 흔히 그녀를 ‘전장에서 병사들을 친절하고 헌신적으로 봉사한 간호사’ 정도로 기억한다. 그래서 ‘백의의 천사’인 줄 안다. 그러나 그녀가 르네상스형 인간, 통섭형 인재로 평가받는 것은 단순한 간호사가 아니라 열정을 갖고 종횡무진 다방면에서 큰 활약을 하였기 때문이다. ‘여장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새로이 부상한 수학적 통계학의 개척자로 인정받을 정도로 수학지식이 뛰어났는데, 그 지식을 활용하여 야전병원에서 깨끗한 위생이 사람들의 사망률을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을 통계적 방법으로 증명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야전병원에서 병사들이 죽는 것은 주로 부상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은 위생상태가 나빠짐으로써 장티푸스나 콜레라 같은 전염병 때문에 사망률이 치솟는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녀는 이런 증거들을 들이밀며 위생상태의 개선을 관계요로에 건의, 설득했고 그로 인해 실제로 42%에 이르던 사망률을 2%까지 떨어뜨렸다. 그녀는 자신의 신념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끈질기게 야전 병원의 개혁에 앞장섰으며 끝없이 편지를 보내 상사들을 설득한 ‘행동파’였다. 얼마나 집요했으면 그녀의 건의를 받은 고위 관리들은 그녀의 이름만 들어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였다고 한다. 


  그녀는 부상자들의 고통만큼이나 야전 병원을 관리하는 육군의 무능과 무관심에 절망하기도 했으나, 끈질기고 초인적인 불굴의 노력으로 군인들을 감동시켰고 그럼으로써 ‘크림의 천사’라는 칭송을 듣기까지 했다(그녀의 활동은 후에 앙리 뒤낭의 적십자 창설의 동기가 되었다).


  그는 빅토리아 여왕에게 병원 개혁안을 건의했다. 새로운 형태의 자료정리법과 여러 형태의 도표 등을 이용한 것이었다. 당시의 일반적인 보고서 형식을 타파한 형식이었다. 이런 방식으로는 최초라고 평가받고 있다.

  1856년 전장에서 귀국한 후에도 계속해서 의료체계의 개선과 병원개혁에 전력하였으며 크림전쟁 종군의 공로로 받은 상금과 국민으로부터 받은 기부금을 바탕으로 런던의 성(聖)토마스 병원 내에 나이팅게일 간호사양성소(Nightingale Home)를 창설하여 현대 간호교육의 기초를 닦았다.


  간호사의 역사는 나이팅게일의 출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이전의 간호사는 천대받는 직업이었고 사회적 지위가 낮은 여성이 갖는 직업이었다. 그러한 인식과 지위를 바꾼 사람이 바로 나이팅게일이다. 간호사의 사랑과 희생을 통해 무수한 생명을 구해내면서 그 헌신을 인정받아 간호사의 위상이 높아지게 했으며 의사들과 동등할 정도의 기술적 공헌을 하는 전문 직업으로 바꿔놓은 것이다.


  나이팅게일은 현대 간호교육의 기초를 닦고 오늘날의 간호사가 있게 한 장본인이지만, 그녀 자신은 전쟁터에서 얻는 병으로 평생 고생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굴의 의지로 일생동안 의료 개혁에 온힘을 쏟았고 그 밖에도 여러 곳의 병원과 간호시설의 창립ㆍ개선(改善)에 힘쓰고, 미국의 남북 전쟁과 보불 전쟁 때는 외국 정부의 고문으로도 활약했다. 


  그 뿐이 아니다. 왕성한 문필 활동으로 《병원에 관한 노트》 《간호노트》등 수많은 저작물을 남겼으며 서한이 1만 200통이 될 정도다. 그녀의 업적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그 업적을 인정받아 1907년 영국 왕 에드워드 7세는 공훈장(Order of Merit)을 그녀에게 수여했고, 만국 적십자사에서는 ‘나이팅게일상’을 제정하여 세계 각국의 우수한 간호사에게 수상하고 있다. ‘나이팅게일 선서’는 간호사의 좌우명이 되었다. 그녀는 장수했다. 1910년 90살로 세상을 떠나 영국의 넬슨 제독 등 전쟁영웅들이 묻혀있는 세인트 폴 대성당에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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