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평상시에는 새초롬해서 사람에게 애교를 부리거나 안기지 않지만, 잠잘 시간대만 되면 왜인지 애교덩어리로 변신한다. 보통 아내가 먼저 침실로 가고 나는 소파에 남아 TV를 보다가 들어가는데, 이 순간에는 소파에 올라와서 옆에 착 붙어있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 보면 소파에 누워서 그대로 잠들 경우가 있는데, 이때 나무가 내 옆에 몸을 붙이고 같이 쌕쌕하면서 잠들 때가 있다. 이런 경우, 다음날 아침의 큰 자랑거리가 되곤 한다.
알고 보면 참 작은 일인데, 워낙 새초롬한 녀석이다 보니 큰 자랑거리이자 기쁨을 주는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각자의 삶을 살다 보면 많은 타인들을 접하게 되는데, 상대방인 가족, 친구 또는 회사동료나 지인에 대해 그들과의 작은 일에 행복하거나 자랑거리를 삼는 일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스스로 상대방에 대한 기대 수준을 높여 놓고는 그 수준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 실망을 하거나, 속으로 또는 말로 애먼소리를 하기 십상이다. 기대라는 것은 내가 일방적으로 갖는 개인의 감정이지, 상대방 또는 대상이 되는 사회가 나와 합의한 그런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물론 나도 그 사람들 중 하나다.)
만일 내가 가진 기대감에 대해 상대가 도달하지 못했다고 판단될 경우, 감정이 상하거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면, '내려놓기'가 적절한 답이 될 수도 있겠다.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불교 사상의 기본인 "욕심은 고통의 원인이다."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옛 선현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물론 이 '내려놓기'가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서 실천하기가 쉽지는 않아서 문제지만, 내려놓는 만큼 삶의 질 내지 행복이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정한 기대에 못 미쳐서 불행하기보다는 말이다.
반면, 기술이나 조직의 발전 그리고 사회의 부조리의 개선에 대한 기대는 '내려놓기'보다는 올려서 기대감을 가져보는 것, 즉 기대 수준을 '올려보기'도 좋다고 생각한다. 이것들은 사람 대 사람의 관계가 아닌, 다수의 사람들과 그들의 삶에 영향을 주는 관계의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사에서 사회의 물질적/정신적 수준의 발전이라는 그래프를 본다면 때로는 하락했더라도 꾸준히 우상향해왔고, 그래야 내가 사는 세상, 다음 세대가 살아갈 세상이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해서다.
하지만, 요즘 우리네 세상을 보면,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기대는 한껏 높이고는 기대에 도달하지 않아 실망하고 힘들어하면서, 우리를 둘러싼 것들에 대한 사회적 환경과 부조리 개선에 대한 기대는 내려놓거나, 그것을 관대하게 받아들이는 경우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