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새올 Sep 16. 2023

나는 정원생활자!

        

‘깨톡! 깨톡!’     

 한여름 무더위 가운데 한줄기 소나기가 온 후였다. 

채팅방 알림 소리에 핸드폰을 열어 보니, 흙바닥에 한 남정네의 맨발 사진이 올라와 있다. 


 “이기 뭔 사진이고?” 


한 후배의 질문에 내가 나섰다. 

 “맨발 걷기???”   

  

 “맨발 걷기 해서 천년만년 살아볼라꼬.”


 사진 주인의 말에 또 내가 나섰다. 

 “나도 한번 해볼까?”      


 메시지를 보내고 누워있던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마당으로 나갔다. 슬리퍼를 벗고 잔디 위에 맨발을 조심스레 내디뎠다. 깔끄러우면서도 기분 좋은 간질임이 발바닥에서부터 쭈욱 온몸으로 전해 올라왔다.   


  

 “심심해서 당장 따라 해 봄.”


 짧은 메시지와 함께 잔디 위로 올라 있는 나의 맨발 사진을 전송했다. 물과 비료 없이 땡볕을 견뎌온 탓에 짧고 노르스름한 잎을 가진 채, 고생한 티가 역력한 잔디지만, 사진으로 보니 싱그럽다. 비를 맞아 싱그러운 목수국 한 방티기 사진도 함께 투척했다. 




바로 답이 올라온다.

“우와! 마당 있는 자의 특권! 좋네요.”     



마당 있는 자! 

기분 좋다.      

 그 이후로도 단체 채팅방에 있던 지인들은 수목원, 둘레길, 공원 산책로를 이용한 걷기 사진을 종종 올렸고 나도 아침마다 수돗가에 슬리퍼를 벗어 놓고 맨발로 정원 곳곳을 돌아다니며 꽃과 채소에 물을 주고 발바닥에 새겨지는 기분 좋은 자극을 즐겼다. 발을 씻고 집 안에 들어와서도 한참 동안이나 발에 남아 있던 그 기분 좋은 감촉을 즐겼다.    

  

 마당 있는 자의 특권! 그렇다. 뿌듯하다.

 수목원을 가지 않아도 공원을 가지 않아도 된다. 밤이든 새벽이든, 문만 열면 흙을 밟을 수 있다. 하늘과 바람과 따가운 햇살을 바로 맞닥뜨릴 수 있다. 나무와 꽃을 매만지고 잡초를 뽑은 뒤에 오는 노곤함과 개운함은 노동이 아니라 힐링 포인트다. 삽질과 호미질이 딱 내 취향이다.


 이 얼마나 간절하게 바랬던 것인가? 

 약 15년 전 직장 파견 근무 중 어쩔 수 없이 작고 낡은 단독주택에 살게 되었다. 그 이후, 긴 시간 주택 앓이 끝에 맞이한 일상이다. 주택 살이 8년 차, 주택 앓이의 시작이 된 첫 번째 단독주택살이로부터 약 15년. 7살 아이가 지금은 22살이 되었다.

  

 이젠 일상이 되어 좀 무뎌질 법도 한데, 정원에 서면 아직도 늘 설렌다. 무뎌지기는커녕, 나이가 들어가는 탓인지 점점 더 꽃과 나무가 좋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나는 정원이 제일 궁금하다. 아침정원을 짧게라도 즐기려면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아직도 아침잠이 많은 나는 그게 힘들다.

 아침잠을 쪼매 일찍 물리친 오늘은 맨발로 채소밭에 물을 주고 상추와 치커리 잎을 따고, 작고 못생긴 오이와 반질반질 예쁜 가지를 챙겨 들고 아침을 시작한다. 


아침에 딴 채소들
비를 맞아 싱그러운 정원의 꽃들. 가지치기로 잘라낸 꽃들을 화병에 꽂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