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이야기
선생님 오늘은 제발 좀 놀아요~
어제 수행평가 봐서 너무 힘들어요...
학교에서 중학교 2학년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수학 시간에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아이들이 외친다. 수학에 진지한 나는 항상 수업시간을 가득 채운다. 내가 조금이라도 더 소리 높여 시간을 꽉꽉 채워 가르치면 아이들이 한 문제라도 더 풀고 맞힐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단 1분도 허투루 보내지 못하는 마음이다. 내 마음과 진심은 그렇대도 한창 놀기 좋아하는 중학생들에겐 그 시간들이 고통스럽게 느껴졌을지도...
매번 수업하지 말고 놀자는 말을 할 때마다 나가야 할 진도가 있기에 적당히 무시하고 수업을 했지만 오늘따라 애처로운 아이들의 눈빛이 나의 마음을 흔들어버렸다. 나도 좀 지쳤고, 아이들은 더욱 지쳐 보이는 금요일 오전이었다. (불쌍하게 보이려고 엄청 노력한 걸지도 모르지만)
결국 나는 자유시간을 줘버렸다.
아이들은 드디어 얻어낼 걸 얻어냈다는 표정으로 친한 무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앉아 시간을 보내기 시작한다. 조용히 각자 자습을 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나는 돌아다니며 아이들이 무얼 하는지 살펴보았다. 자유시간을 주었지만 열심히 수학문제집을 풀며 공부하는 친구들, 자기들만의 비밀스러운 이야기, 또는 가벼운 수다를 도란도란 모여하는 친구들, 게임을 하며 약간 짓궂게 노는 친구들, 그림 그리기에 열중한 친구들, 다른 과목 수업준비를 하는 친구 등 그 모습이 다양했다.
수학 시간에는 시든 꽃처럼 생기와 표정이 없는 친구들도 자유시간을 주니 눈빛이 살아나며 즐겁게 보였다. 그렇다. 수학시간에는 자신의 존재가 그림자처럼 느껴지는 학생들도 다른 영역에서는 훨훨 날아다니는 학생들이 많다. 체육이나 미술, 음악과 같은 영역에서 말이다.
그림을 열심히 그리는 친구가 보여 다가가 살펴보았다. 사실 이 친구는 수업시간에도 집중하지 않고 그림을 그릴 때가 종종 있었다.
“와~ 그림 너무 잘 그린다~ 너무 부럽다!”
“대신 저는 수학은 하나도 몰라요.”
“선생님도 수학 말고 다른 건 잘 못해~^^; 무슨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 색칠한 그림도 한번 보여줘 봐!”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내 첫째 딸 생각도 나고 해서 관심을 가지며 이것저것 물어보고 이야기를 들었다. 평소에는 패드에 그림을 즐겨 그리지만 학교에서는 종이에 그림을 그리며, 사람만 그리는 건 아니고 동물이나 다른 것들도 즐겨 그린다는 등... 학생이 이야기를 해주었다.
돌아다니며 이 학생 저 학생과 간단히 대화를 나누니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아이들도 수업을 하지 않으니 시간이 정말 순식간에 지나가는 것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평소 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하며 몰랐던 부분도 알 수 있었다. 나도 이런 시간을 갖고 싶지 않은 건 아니지만 수학은 해야 할 내용과 진도가 정해져 있고, 중간에 내용을 빠뜨릴 수가 없는 과목이다. 시험이 끝나면 아이들과 좀 자유롭게, 즐거운 시간을 가질 계획들을 세워보아야겠다. 10년이 넘은 교사 생활이지만 몇 년 쉬고 복직을 하니 모든 게 다 새롭게 느껴지고 그 감정들도 예전과는 또 새삼 다르게 다가온다.
수업이 끝나갈 무렵, 그림을 잘 그리는 학생이 내 얼굴을 그렸다며 다가와 건네준다. 내가 관심을 가지고 대화를 나눈 것이 그 학생에게는 기분 좋은 일이었나 보다. 이렇게 바로 마음을 표현한다. 그림을 참 좋아하고 수학은 힘들어하는 학생인데 그동안 수학시간에 참 괴로웠을 것이다. 좋아하는 그림을 얼마나 그리고 싶었을까. 몰래 그림 그리다가 나에게 지적을 받을 때도 있었지만 오늘 같은 날, 마음껏 하고 싶은 것 하면서 나의 관심과 칭찬도 들으니 좋았나 보다.
수학시간에 빛을 내는 친구들도 있지만 그 밖의 영역에서도 반짝반짝 빛나는 우리 학생들의 다양한 모습을 많이 보고 싶다. 아이들 한 명 한 명 모두 자기만의 색깔로 빛이 난다. 내가 엄마가 되니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예전과는 다르다는 것이 느껴진다. 예전에는 그때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했지만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된 후에 보는 것을 못 보던 시절도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지금의 방식대로 반짝이는 아이들과 열심히, 재미있게 함께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