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어른이란
“바스락 바스락”
“사각 사각”
아이들 재우고 과자 먹는 소리이다. 아직도 봉지과자,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마트에서 사먹는다. 이런 나의 모습을 우리 부모님이 본다면 등짝을 한 대 맞을 것 같은 장면이지만 이제는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문득 생각해보니, 내가 어릴 때 우리 부모님이 군것질을 하는 모습을 보지 못한 것 같다. 물론 어른도 과자를 먹을 수 있겠지만, 내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어른은 이렇게 봉지과자를 뜯어먹는 모습이 좀 어울리지 않는다. 이렇게 군것질을 즐기는 나, 힘들 땐 빨래개기와 설거지를 다음날로 미루는 나, 육아할 때 아이들과 똑같이 소리 지르며 싸우는 나의 모습이 떠오르며 ‘음. 어른스럽지 않아.’라고 생각이 든다.
아직도 나는 마냥 내가 어린 애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마음의 그릇이 크고 생각이 깊은 사람이 되고 싶지만 그렇지 못한 나의 모습에 종종 실망을 느낀다. 이제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어릴 때 내가 느꼈던 마흔 즈음의 어른은 그 존재가 훨씬 더 커보였고 무게가 느껴졌다. 그렇다면 진정한 어른은 어떤 사람일까?
어릴 때에는 성인이 되면 저절로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어릴 때의 미숙한 생각과 정신이 나이만 들면 저절로 성숙하게 되는 거겠지.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신체가 성장하고 노화가 진행되듯이, 보이진 않지만 우리의 정신도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내가 직접 20대가 지나고 30대의 끝 무렵에 달해 돌이켜보니 나이만 먹었다고 모든 어른이 성숙한 것은 아니라는 걸, 정신은 가만히 세월만 기다린다고 진짜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가끔 '어른 흉내'를 낸다는 생각이 든다. 몸속은 ‘애’이지만 겉으로만 ‘어른’인척 하는. 어르신들은 '마음만은 청춘이야'라는 표현을 하신다. 예전엔 그 말의 의미가 다가오지 않았다. 이제는 약간 알 것 같다. 나도 마음은 어릴 때 그 마음 그대로이다. 나이가 들었다고 '아이'에서 새로운 정신의 '어른'으로 갑자기 확 변신하는 게 아니라는 걸 이젠 알게 되었다.
최근 <어른 연습>이라는 책을 읽었다. 아나운서 오유경이 내면의 어린아이를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 독자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은 가치에 대해 쓴 책이다. 좀 더 성숙한 어른이 되고 싶은 나에게 어떤 깨달음을 줄 수 있을지 기대되는 책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진짜 어른'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먼저, 자신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는 사람이다.
책임감 있는 어른은 존재만으로도 주위를 빛나게 해준다. 책임의 크기는 곧 그 사람의 크기다. 어른으로서 책임을 갖는다는 건 삶의 부담이 아니라 삶의 반경을 넓히는 일이다.『어른 연습』, p256
삶의 부담이 아니라고 하지만 사실 어깨는 좀 무거워지는 ‘책임’이라는 덕목. 그러나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어른으로서의 덕목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역할인 자식, 아내, 엄마, 교사, 나아가 시민으로서 충실하게 책임을 다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또, 진정한 어른은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절제를 통한 균형을 조화롭게 이룬다.
감정, 건강, 식단, 운동, 가정과 일, 여가, 소비, 인간관계 등 삶의 요소들에서 절제 없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게 된다면 결국엔 어디서부턴가는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다. 지금 당장은 못 느끼더라도 세월이 차곡차곡 쌓이다보면 겉으로 드러나게 되는 날이 오게 되겠지.
성숙하고 품위 있는 어른의 모습은 조급하지 않고 여유가 느껴진다.
매사에 감사함을 느끼며 주변 사람들을 챙기고 어우를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 그런 사람이라면 인생의 폭넓고 풍요로운 경험과 식견으로 현명함을 갖추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다양한 경험, 새로운 시도, 독서와 예술을 즐기며 자신만의 속도로 성장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렇게 적고 보니 죽기 전에 이런 사람은 못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인물이 아닐까. 그렇지만 처음부터 이렇게 ‘완성된 어른’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되고자 끊임없이 반성하고 노력하며 나아지려는 사람이 되는 그 ‘과정’을 겪는 자체가 어른이 되가는 것 아닐까.
결론은 나이에 걸맞은 성숙한 어른이 되려면 그저 그 나이가 되었다는 것뿐 아니라 그에 따른 노력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흔들리지 않는 자신의 중심을 잘 잡고, 주변과 세상을 바라볼 때 넓고 깊은 시야를 가지며, 타인을 존중하는 사려 깊은 마음을 갖기 위해 내면을 끊임없이 단련시켜야 한다.
이렇게 어른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다보니 내가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 방향이 잡힌다. 마지막으로 내가 지향하고 싶은 삶의 방향을 적어보며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늘 기분 좋은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요령은 타인을 돕거나 누군가의 힘이 되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초역 니체의 말』, p36
멋진 어른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