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셀린 Jun 08. 2023

우리는 왜 지루한 반복을 하며 살아갈까?

어쩌다 마주친 철학, 황진규

  월화수목금토일, 일요일 오후가 되면 찬물을 끼얹은 듯 마음에 여유가 사라집니다. 다시 월화수목금토일, 다시 또 월화수목금토일. 불안과 우울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시간이에요. 만약 당신의 아이가 이런 회의감에 대해 묻는다면 뭐라고 답하실 건가요? ‘왜 이렇게 반복하며 살아야 해요? 다람쥐가 챗바퀴를 도는 것처럼 지겨워요.‘ ’쓸데없는 소리 말고 공부나 해.‘ 핀잔을 주는 것도, ’학생은 공부만 하면 되잖아. 회사에 육아에 가사에 나는 더 지겨워.‘ 한숨을 쉬는 것도, ’어쩌겠니. 우리가 자본주의 경쟁사회에 태어난 것을.‘ 시대 탓을 하는 것도, 모두 석연치 않은 대답들입니다.


  반복과 기억은 동일한 운동이다. 단지 방향이 반대라고 하는 점이 다를 뿐이다. 기억되는 것은 이미 있었던 것이고, 따라서 그것은 뒤를 향하여 반복된다. 하지만 진정한 반복은 앞을 향하여 반복된다, 키르케고르. 황진규 작가는 [어쩌다 마주친 철학]에서 실존주의 철학자 키르케고르의 개념 2개를 빌어 지루한 일상의 이유를 설명합니다. 아침에 눈을 뜨며 지겨움에 치를 떠는 당신은 반복이 아니라 기억을 되풀이하고 있는 거 아닌가요? 당신의 길을 한 걸음씩 걸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제 자리만 뱅뱅 돌고 있기에 지겨운 것 아닌가요? 키르케고르에 의하면 반복은 앞을 향한 진행적 되풀이 혹은 차이의 반복입니다. 반면 기억은 뒤를 향한 퇴행적 되풀이 또는 차이 없는 반복이구요. 철학자의 천재성은 이상한 나라의 토끼굴처럼 복잡하고 모순되는 삶의 단면들을 간결한 문장으로 포섭해 냅니다.


  세계는 반복이라고 하는 사실을 통해 존립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현실이고, 인간 세상의 엄숙성인 것이다, 키르케고르. 삶의 진실인 거대한 반복 안에 살면서, 저는 유독 회사에 대해 형벌을 살 듯 지루함과 거부감을 느낍니다. 10년 이상 해온 업무가 더이상 어려울 것도 새로울 것도 없지만 늘 긴장과 우울을 경험하고 있어요. 에너지가 향하는 방향성이 어디인지 진지한 도전과 모색 없이 직업을 택해 그 대가를 치루는 저처럼 혹시 제 아이도 이런 회의감을 하소연한다면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반복과 기억의 차이는 결국 방향성의 여부에 있지 않을까요? 같은 대상도 방향성 여부에 따라 차이 없는 반복으로 지겨울 수도 있고, 차이의 반복으로 즐거울 수도 있어요. 이 방향성은 스스로만 정할 수 있다는 점이 어려운 점이지만요.

작가의 이전글 방사능 오염수 방류는 무엇이 문제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