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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린 Jun 10. 2023

향유 아닌 노동에 적절한 시간은 얼마인가?

강신주의 다상담 2, 강신주

  이 질문은 불편한 감정들로부터 시작되었어요. 회사를 진심으로 대하지 않고 적당히 요령을 피워도 괜찮은 걸까? 주인의식을 가질 수 없는 노예의 죄책감이죠. 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니 죄책감의 실체는 두려움이었습니다. 회사에 진심이 아닌 진심이 드러나 불이익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요. 조직이나 주변 사람으로부터 혹평을 받은 직원은 승진이나 전보에 있어 그 대가를 치루더라고요. 많은 인력을 효율적으로 부려야 하는 조직에게 당근과 채찍은 그 무엇보다 효과 좋은 도구니까요.


  강신주 작가는 [강신주의 다상담 2]에서 이런 종류의 번뇌를 ‘노예적 절박함’이라고 표현합니다. 여러분들 고민의 대부분은 노예의 투정이에요. 대개 노예인데 일은 안 하고 밥만 먹고 싶다는 내용이에요. 밥만 먹을 수 있으면 된다는 노예적 절박함이라고 해야 할까요? (중략) 타인이 원하는 일을 하는 걸 노예라고 부른다고요. 일하는 걸 싫어하는 게 노예의 근성이에요. 내 일이 아니니까요. 주인이 감시를 소홀히 하면 쉬고 싶단 말이에요, 강신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시대를 ‘보편적 매춘의 시대’ 라고 이야기했다고 해요. 자본에 팔릴 수 있는, 다시 말해 자본이 원하는, 자본에게 팔리기 위한 공부와 일을 한다는 거예요. 과거의 노예와 달리 ‘자발적‘ 으로요. 여러분들은 일을 부정합니다. 일을 자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거예요. 팔리지 않는 일은 가치 없대요. 그렇게 팔리는 일 가지고 취업했으면 잘 살면 되잖아요? 그런데 왜 싫은지 아세요?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니니까요, 강신주 


  자신이 노예라는 걸 알고 노예의 생활에서 잠깐 비비적거리면서 자유를 꿈꿀 수 있는 희망이 있는 노예와 회사에서 일할 때가 제일 좋다는 노예는 완전히 달라요. 후자는 구원의 희망마저 없어요, 강신주. 저는 요즘 이 지점에서 정리가 안 되는 겁니다. 조직에 대해 근면, 자주, 협동하고 있는 옆 자리 동료가 더 낫지 않나 싶어서요. 워라밸은 깨져도 회사 안에서의 시간은 이런 태도가 더 수월하거든요. 주 40시간 이상의 꽤 긴 시간을 흘려보내는 데 있어서요. 2년 정도 육아휴직을 들어가기 전, 저도 주인의식 충만한 직원이었답니다. 자발적으로 복종했고 그 보상으로 돌아오는 타인의 인정과 가족스러운 소속감을 즐겼어요. 그런데 복직 후에 회사는 회사가 되었습니다. 진짜 가족이 생겼거든요. 빨간 약을 받아 마신 매트릭스 네오처럼 제 번뇌의 여정도 시작되었습니다. 이질감과 불편함은 마치 쉽게 해소되지 않는 숙취 같아요. 그렇다고 빨간 약을 마시기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구요.


  다음 공식을 머릿속에 넣어 놓으세요. 삶의 행복은 노동하는 시간보다 향유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커진다, 강신주. 두려움과 거부감 사이에서 뱅뱅뱅 챗바퀴를 돌던 제 번뇌는 이 책 덕분에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주 40시간의 업무 시간을 적절하게 할당하는 방법으로 생각이 좀 옮겨 갔거든요. 스스로 즐거워하는 일을 했을 때 그게 돈벌이가 되면 진짜 제대로 자리를 잡은 거라고 작가는 말합니다. 그 이상적인 방향으로 뚜벅뚜벅 걸어가야죠. 고민해 찾은 아이템에 시간과 정성을 더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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