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abyunion Apr 15. 2023

인건비로 왜 이렇게 많이 써요?

일은 사람이 하니까요

2020년 5월, 정의기억연대 사태가 터졌다. 이용수 선생의 기자회견 이후 언론에서 정의기억연대와 윤미향 의원을 들쑤셔 댔다. 정파적 접근, 시민사회 및 ‘위안부’ 운동에 대한 무지를 바탕으로 기자들의 다양한 실수와 오류, 왜곡, 가짜뉴스 등이 뒤범벅되면서 이용수 선생의 의도와는 다른 결과를 낳았다. 개인적으로 ‘한국언론오보사태’라 부른다. 이 한국언론오보사태 때문에 국내 일본군‘위안부’ 운동의 의의는 물론 시민사회 전반에 대한 시민의 신뢰가 일부분, 아니, 꽤 많이 퇴색되었다.


언론의 왜곡된 문제제기 중 그런 게 있었다. ‘왜 기부금을 걷어서 ‘위안부’ 할머니들한테는 2300만 원 썼어?’, ‘기부금으로 49억 받아놓고 피해자들에게 현금으로 지원해준 건 왜 9억밖에 안 돼?’ 그리고… ‘왜 모은 기부금을 이렇게나 많이 인건비에 썼어?’ 같은 내용들.     




왜 모은 기부금을 이렇게나 인건비에 많이 썼어?

일견 이런 지적이 맞는 것 같지만 정의기억연대가 ‘후원단체‘는 아니다.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해 돈을 걷고, 그분들에게 돈을 나눠주면, ‘할 일 땡!’ 하는 단체가 아니란 의미다. 단체 정관에 기재된 ‘투두리스트’만 봐도 수두룩하다. (다 할 수 있으세요?) 일본정부에 진상규명·공식사죄·법적배상 등 요구하기,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진상조사와 연구, 기록보존 사업, 인권교육사업, 일본군성노예제 생존자 복지사업과 쉼터운영,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운영, 평화비 건립과 추모·기림 사업 등등등….     


그리고 중요한 건, 이 모든 건 ‘사람’이 한다는 사실이다. 진상규명을 밝히는 ‘사업’, 연구하는 ‘사업’, 인권교육 ‘사업’, 쉼터 운영 ‘사업’, 박물관 운영 ‘사업’, 평화의소녀상 건립 ‘사업’… ‘사업’이라는 말로 포장돼 있지만 그 포장지 안엔 ‘사람’이 있다. 시민단체들의 일반적인 목표 ‘사회 변화’든, 삼성이라는 한 기업의 목표 ‘반도체 5년 내 매출 더블’이든, 이름은 거창하지만 쪼개어보면 ‘어떤 사람(또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다. 정의기억연대가 모은 기부금은 당연히 일정 부분 인건비에 쓰일 수밖에 없다. 왜 기부금을 인건비에 많이 썼냐는 건, 너희는 왜 이렇게 일을 많이 하냐는 질문과 같은 거다. 뭐, 그래봤자 정의기억연대의 연 ‘전체’ 인건비는 1~2억 수준인데, 이걸 보고 불쌍히 여기는 언론사는 없다.     


도대체 이런 터무니없는 트집을 잡는 언론에는 뭐라고 반박해야 할까 싶어 하늘이 노래졌다. ‘OO일보 기자들 너네는 월급 안 받고 일할 수 있냐?’에서부터 ‘그래봤자 너네 월급 반 토막 수준이야’, ‘시민단체 활동가는 언제까지 가난하게 살아야 하냐?’, ‘시민단체에 대한 이해는 있니?’, ‘인건비라고 적혀있으면 그게 다 돈 새어 나가는 구멍 같지?’, ‘시민단체 활동가가 자원봉사자인 줄 아니?’, ‘너 어디 한 번이라도 기부해 봤어?’, ‘진짜 한 번이라도 기부금이나 내고 회계자료 공개하라고 해’ 등등 유치하고도 조잡스러운 대꾸들이 머리를 스친다.     


아, 서럽다… 시민단체활동가들 월급 가지고 뭐라고 하지 좀 마! 안 그래도 통장 보면 눈물 나니까!


정의기억연대를 길게 소환한 이유가 있다. 우리 단체 총회에서, 우리 단체 어르신 한 분과 우리 단체에 후원하는 후원회원 한 분도 위 언론들과 똑같은,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어르신 한 분은 A씨 후원회원 한 분은 B씨라고 하겠다.     

 

A씨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단체 사정과 관계없이 임금협상을 하면 임금을 올려줘야 하나요? 2020년 최저임금 기준으로 103% 소급적용을 했어요.” 협상 테이블이 열리기만 하면 임금을 인상해야 하냐, 우리 단체 사정이 어려운데, 이런 상황에서 활동가들 인건비를 굳이 올려야 하는 이유가 있었냐, 이런 의미로 파악된다. 한편 B씨는 이렇게 말했다. “최저임금 수준 이상으로 다 주면 시민활동 자체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회비 상당액이 인건비로 나가는 구조 아래에서 활동은 어려워질 거고요.”     


나는 이 발언들이, 시민단체든 기업이든 어쨌든 일은 ‘사람’이 한다는 사실을 망각한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사업이고 사회변화고 사회개혁이고 시민운동이고 우리 단체의 존립이고 뭐고 다 떠나서, 그 모든 포장지들을 벗겨보면 그 안엔 사람이 있고, 사람이 있어야 가능한 것들이다. 기부금 상당액이 인건비로 나간다는 말은, 그만큼 직원을 많이 채용해서 시민운동을 열심히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회원들한테 기부금을 걷어서 건물 사는데 쓰고 있다면, 그건 ‘우리 단체 건물주 되기 운동’을 하고 있는 거라고 해석해야 하는 것 아닐까?


건물주라고 다 부자는 아니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쨌든 난 가진 건물도 없다(눈물)


아, 오해를 하나 풀어야 할 게 있는데. 2020년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임금을 받은 것은 2020년이 아니라 2022년이다. ‘최저임금 수준 이상으로 다 주면 시민활동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발언 또한 ‘최저임금 103% 소급적용’이라는 말에 가려져 있지만 고작 최저임금보다 5만 원 많은 수준인 거다. 억대 연봉받는 게 아니다.


‘우리 단체 건물주 되기 운동’을 벌이고 있어 모순적이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우리 단체 사정이 어려운데 너희 임금까지 올려줘야 하냐’고 A씨처럼 말한다면, ‘그래… (건물주가 되느라) 사정이 어렵다는데… 내가 5만 원 정도 덜 받고 말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좀 행복하게 일하고 싶다. 수많은 사업 뒤에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아주는 대표, 이사, 사측대리인, 후원회원들과 일하고 싶다. ‘왜 기부금을 걷어서 시민운동하는데 안 쓰고 활동가들 임금 주는 데 써?’, ‘왜 모은 기부금을 이렇게나 많이 인건비에 썼어?’, ‘단체 사정과 관계없이 임금을 꼭 올려줘야 하나요?’, ‘최저임금 이상 주면 시민활동 자체가 어려워요’, ‘회비 상당액이 인건비로 나가면 안 돼요’….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내 직장을 구성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리고 그들이 마이크를 독점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나는 너무나 불행하다. 심지어, 정의기억연대는 언론을 통해 간접적으로 이런 말을 들었다면, 나와 내 동료들은 ‘총회’라는 모두가 다같이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직접 이런 말을 들어야 했다. 너희의 노동력에 매길 가치는 없어, 이런 류의 말을 들으면서까지 우리는 이 직장에 헌신해야 하나?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로 이 직장을 선택한 나는, 그 목표 아래 희생되어야만 하는 동료들을 많이 보았다. 우리 단체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시민사회단체라는 이 필드 전반의 일이다. 활동가들의 처우와 노동환경을 분석한 페이퍼나 기사도 많은데, 하나같이 ‘열악한 처우와 과중한 노동환경’을 문제로 꼽는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가 수면에 오른 건 20년 정도는 된 것 같다. 그런데 그 열악한 처우와 과중한 노동환경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기부금을 걷어서 인건비로 쓰면 안 된다는, 활동가들 임금 주는 데 쓰면 안 된다는, 임금을 많이 주어서도 안 되고 늘 최저임금 수준에만 맞춰서 줘야 한다는, 이렇게 사람과 노동을 투명인간 취급하는, 신자유주의 시대를 그대로 내면화한 시민들과, 거기에 포함된 우리 단체 어르신들과, 우리 단체 후원회원들로부터, 시민사회 활동가들의 열악한 처우와 과중한 노동환경이 비롯되고 반복된다고 나는 확신한다.


P.S. A씨는 또 이렇게도 말했다. “활동가는 회사 직원이라고 하는데, 회사 직원으로 생각하는 게 맞는 건가요? 활동가로서의 운동성이나 이런 건 어떻게 되는 건지….” 영리 행위를 목적으로 하는 ‘회사’에 이 단체를 비유한 게 심기를 거스른 걸까? 그렇다면 앞으로는 ‘직장 직원’이라고 하겠다. ‘일정한 직장에 근무하는 사람을 통틀어 이르는 말’인 ‘직원’이라는 말은 충분히 쓸 수 있는 것 같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A씨가 말한 활동가로서의 운동성이란 뭘까. 사회문제에 대한 깊은 관심, 문제를 바꿔보겠다는 가열찬 의지, 그 의지를 열정만으로 실행할 수 있는 기동력,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단체에 대한 헌신? 맞는 말이다. 그런데 난 이렇게도 생각한다. 우리 단체에서 맡은 일이 있었는데, 하다가 다른 직장 있다고 다 손 놓고 가는 것은 활동가로서의 자세도 아니고, 책임감 있는 어른으로서의 자세도 아니라고. 우리 단체를 대표하는 자리에 있다가 임기도 다 마치지 않고 다른 일자리 찾아가는 것은 활동가로서의 운동성과 얼마나 관련 있을까?

작가의 이전글 째깍째깍 시한폭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