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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byunion Sep 05. 2022

가치의 님비 현상




공공에는 이롭지만 자신이 속한 지역에는 이롭지 아니한 일을 거부하는 것. 님비(NIMBY) 현상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인류에게 꽤나 일반적인 이 현상은, 화장장이나 쓰레기 매립지, 발전소 등 고도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결정에서 주민 반발을 비도덕적인 행동으로 치부하기 쉬운 함정이 있기 때문에 최근에는 잘 보이지 않는 단어다. 그러나 주민들의 사회적 편견과 결합되는 경우, 님비 현상은 사회적 부담을 모두 상대적 약자들이 떠넘기는 최악의 결과를 낳기도 한다.


잊을 만하면 벌어지는 장애인 특수학교 설립 반대 움직임이 대표적이다. 주민들은 발달 장애인이 실질적인 피해를 입힌다거나, 집값이 하락한다는 이유를 대곤 한다. 두 주장 모두 실증적인 근거가 전혀 없기 때문에 전형적인 혐오에 해당한다. 그 결과 장애인 편의시설은 점점 거주지 외곽으로 밀려나게 된다. 2022년 통계에 따르면 특수학교 재학 중인 장애인의 43%가 왕복 1시간 이상, 6.4%가 왕복 2시간 이상 거리로 통학하고 있다고 한다.


영화 <학교 가는 길> 포스터


이 주민들의 혐오는 어디서 나온 걸까? 그 지역이 장애인 혐오자들의 집단 거주지였다거나 갑자기 장애인을 혐오하게 된 걸까? 그렇지 않을 거라 본다. 전 국민에게 ‘장애인 학습권을 위해 특수학교를 설립하자’고 물어보면 누가 반대하겠는가? 마찬가지로 장애인들을 이웃에서 몰아내기 위해 몇 천 명 단위로 서명까지 받아내는 이 사람들에게 장애 인권 인식에 관해 설문조사를 해보면 다른 평균적인 사람들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결과가 나올 것이다.


핵심은 가치 추구의 결과와 나의 이익이 가지는 거리에 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도덕적이고 선하게 보이고 싶어 한다. 따라서 그럴싸한 명분에는 아무 심리적 장애물 없이 쉽게 동의하곤 한다. 그러나 그 가치가 비로소 실현 단계에 접어들어 자신의 집 문을 두들기면, 그제야 지난하고 복잡한 가치 실현 과정에 대해 ‘합리적인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기 마련이다. 물론 그 ‘합리적인 고민’은 높은 확률로 혐오의 자기정당화에 그친다. 혜화역 시위를 기점으로 여성주의가 대중화된 이후 성평등 담론에 대한 반대가 강해진 현상, 장애인을 소재로 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최고 시청률을 구가하지만 동시에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게만이라도 해달라는 장애인들의 지하철 시위는 비난받는 현상도 비슷한 원리다.


불행하게도, 사회 개혁을 위해 공공선을 추구한다는 운동단체들이 이러한 함정에 더 많이 걸려들곤 한다. 대중적으로 폭넓게 동의하는 가치는 생각보다 그 종류가 많지 않고, 사람들은 보통 일상생활에서까지 그런 심오한 질문을 하면서 살지는 않는다. 단지 특별한 계기를 통해 그러한 모순이 분출될 뿐이다. 하지만 운동단체와 그 소속원들은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특별한 가치를 추구하는 일을 하며 산다. 딜레마에 부닥칠 확률 자체가 높다.


전업활동가로 활동하는 나는 최근 좋은 활동가의 조건을 묻는 질문에 ‘미래에 한 발을 걸치고 있는 사람’이라 대답했다. 지나치게 미래로 나아간 사람은 도사가 된다.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지만, 실천으로 이끌 동기를 주지 못한다. ‘저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니까’ 라며 대중의 일상으로부터 떨어져 격리당하거나, ‘그건 너무 비현실적이고 실제로는 이런 뜻일 거야’라며 곡해되기 마련이다.



동일가치노동을 어떻게 판단할 거냐는 말에 이 정의를 읽어줬다


반대로 지나치게 현재에 머무르는 사람은 위선자가 된다. 그는 평소에는 진보를 말하지만, 자신이 실천할 때가 오면 안 될 이유부터 찾는다. 추구하는 것이 무엇이든 자신이 안하는데 남에게 좋다고 권해보았자 반발만 살 뿐이다. 그러나 미래에 한 발을 걸친 사람은 현실의 유불리한 조건들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가능한 방법을 찾아 대중을 설득하기 때문에 성공한다. 많은 활동가와 단체들이 이 줄타기에 실패해 위선자의 길을 간다. 차별금지법 동조농성까지 해놓고는 내부 규정에 ‘동일가치 동일노동’을 명시하자는 활동가들의 요구에 ‘차별이 뭐냐’며 역정을 내는 단체가 셋 중 어디에 속할지는 명백해 보인다.


베토벤 5번 교향곡의 유명한 첫 마디를 두고 베토벤의 비서 쉰들러는 ‘운명은 이렇게 문을 두드린다’는 말을 남겼다. 인상적인 여덟 음은 눈앞으로 다가온 운명에 대한 긴박한 경고와 두려움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운명에는 맞설 수가 있다. 5번 교향곡에서도 1악장의 비장함은 4악장에서 이내 운명에 맞선 극복과 환희의 모티브로 바뀐다. 사회운동가들이 더 이상 자신의 방문을 두드리는 진보적 가치 실천의 소리를 운명의 1악장이 아닌 4악장으로 듣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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