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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byunion Sep 13. 2022

환멸나는 일 투성이지만.. 제법 ‘괜찮은 고난’입니다

아무래도 틀린 것 같다. 사주팔자 앱으로 본 ‘정통사주’ 말이다. 거기선 분명 내 인생 가장 고난의 시기는 10대랬는데, 아니다. 30대인 듯하다.


사주 운세 애플리케이션에서 '정통사주'를 보면 가장 불운한 시기는 늘 10대로 나왔다. 100% 믿지는 않아도 내심 기분이 좋았다. 왜냐고? 내 10대는 한참 전에 지나갔으니까!

10대 시절이 고달팠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클리셰 같은 말이 되어버린 <안나 카레니나> 첫 구절처럼, 누군가가 자신이 얼마나 불행했고 힘들었는지 말할 때면 고개만 주억거리는 게 아니라 대충 ‘나도 그러했다’고 말할 수 있는 수준으로 말이다. 그래서 신년에 친구들과 사주카페를 찾아갈 때나, 앱으로 사주를 보곤 할 때 퍽 안심이 됐다. 공통적으로 ‘가장 나쁜 대운은 10대의 시기’라며 이제 좋은 일만 가득할 거라는데 누가 기분이 좋지 않을까. 사주를 100% 믿지는 않아도 내심 그런 말들을 위안 삼곤 했다. 좋은 일이 많이 찾아올 거라고.




노조를 만들 때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그저 ‘또 하나의 좋은 일’이라고 여기고 즐겁게 시작했다. 조직에서 문제라고 느끼는 여러 사건을 차치하고서, 이 조직에 노조가 없다는 것 자체를 의아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악마화하고 기업 편에선 언론 보도를 문제라고 지적하고, 조명받지 못한 노동자와 연대하는 활동을 하는 조직이 막상 내부 노동 문제에 대해서는 ‘처음이라’ 혹은 ‘좋게 좋게’라는 말로 넘어가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우리는 다른 노동자들에게 연대한다고 손을 내미는데, 막상 우리가 내부 문제를 말하지 않으니 손 내밀어줄 이들도 없었다. 그래서 전부터 가장 내부 노동 문제에 비판의식을 갖고 문제를 제기해왔던 선배가 “노조 만들래요?”라고 속삭였을 때, 너무 좋다며 ‘하트’로 답했다.


고난의 시작이었다. 아니, 노조가 출범했다고 조직에 알리기 전까진 괜찮았다. 밤낮 가리지 않고 노동법 스터디를 할 땐 조직이 바뀌는 초석을 만든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우린 진보적인 시민단체니까’라며 이런 저런 진일보한 조항을 만들어볼 땐 희망에 차 있었다. 우린 이렇게-노조의 단체교섭안처럼- 좋은 조직을 만들 거야, 라는 그런 희망. 기대가 큰 만큼 실망과 분노가 컸다. 감히 적기에도 민망한 일들이, 노조가 만들어지고 외려 노조에게 보란 듯 벌어지기도 했다. 이전에 관습적으로, 얼마든 할 수 있던 것도 불가능해지거나 없던 절차가 생겼다. 노조 혹은 활동가 개인이 문제를 제기하면 선택적 답변을 하거나 그마저도 ‘모르겠다’ 혹은 ‘답하기 싫다’는 우스꽝스러운 답변을 하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 그럴 때마다 주고받는 공문에 ‘노조와 단체의 상생을 바란다’는 말이 무색해져 쓴웃음이 지어진다.


2017년 11월 한국개발연구원(KDI)가 발표한 '근로시간 단축이 노동생산성에 미치는 영향'. KDI는 주 40시간 근무제 시행 이후 노동생산성이 1.5% 증가했다고 밝혔다.

단체교섭 중 벌어진 일들은 아직은 감정이 북받쳐 쉬이 쓰기 어렵다. 그나마 웃으며 ‘그런 일이 있었지’라고 말할 만한 것 하나만 공유해본다. 서로가 팽팽하게 밀고 당겼던 노동시간 관련 교섭안을 노조 교섭위원이 재차 논문 연구 결과와 사례를 들어 요구하자 갑자기 사측 교섭위원 중 A가 얼굴이 시뻘게져 소리를 빽 질렀다. 몇 번을 같은 말을 반복해 다시 논의를 원점으로 돌리냐는 게 A가 소리를 지른 이유였다. 이유가 무엇이었든 상생과 변화를 위한 교섭 자리에서 A의 태도는 옳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런 내 생각을 다른 사측 교섭위원 B와 나눌 자리가 있었는데, B는 이렇게 대리 해명했다. ‘그게 진짜 화를 낸 거겠어? 다 작전이고 전략이지.’ B에게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당신이 말하는 그 작전과 전략이라는 행동들에 난 교섭 전날부터 잠을 설치고 교섭이 끝나고 나선 속을 게워낸다고. 그리고 이런 일을 겪는 노조원이 나 하나만은 아니라고.




다만, 이 고난과 역경 속에 내가 믿는 구석이 하나 있다. 내 사주가 가장 힘든 시기라던 10대 시절이 남겨준 배움이라고 할까. 고난과 역경은 결국 시간에 따라 흘러가고, 이후엔 그걸 딛고 일어서는 것만이 남는다는 거다. 10대 시절 아버지의 사업 실패가 지금은 무엇보다 끈끈한 가족 관계를 만들어주고, 왕따 경험이 평생을 함께할 친구 6명을 만들어준 것처럼 말이다.


무엇보다 노조는 10대 시절 내가 사고처럼 갑작스레 마주한 고난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만들어낸 고난이지 않은가. 아마 노조를 만들지 않았더라면 고통만이 상흔처럼 남았을 거다. 동료가 부당한 대우를 당했을 때 당사자가 아니라 말하기 주저했을 거고, 내가 부당한 노동 문제를 당했을 땐 더럽고 치사하다 속으로 욕하고선 감내했을 거다. 무엇보다 나아지지 않는 노동 환경에서 자신을 불태우다 소진돼버리고 떠나는 동료를 지켜봐야만 했을 거다. 이렇게 보면, 제법 괜찮은 고난이다. 2021년 12월부터 끌어온 단체교섭은 드디어 마무리 단계에 돌입했고, 욕심껏 모두 얻어내진 못했어도 더 나은 노동환경을 위한 교섭안이 포함됐다. 활동가가 대표단에 목소리 낼 창구가 만들어졌고, 조직의 선택적 답변에는 ‘제대로 답변을 하라’고 압박할 기회가 생겼다.  

 이렇게 쓰고 보니 사주팔자 앱으로 본 ‘정통사주’가 틀리진 않은 것 같다. 나와 내 동료 활동가들을 위해 이 정도면 제법 괜찮은, 버틸만한 고난이다. 교섭이 끝나면 함께 고생해온 동료들에게 내가 사주앱에서 위로를 얻은 것처럼 말해주어야겠다. 고난의 시기가 지나갔다고, 이제 좋은 일이 많지 않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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