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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직의 문턱에서 #02

이 회사가 싫은 이유

by 정좋아

“갑자기 우울 점수가 살짝 높아졌네요? 최근에 무슨 일이 있으셨나요?”


내가 다니는 병원에서는 선생님이 이주마다 설문지를 작성해 진료할 때에 우울 점수 등을 확인해 주신다. 작년 11월 초 최고점을 찍은 뒤로, 놀라우리만치 빠른 속도로 점수가 좋아졌다. 실제로 내가 그렇게 느꼈고, 그게 점수도 드러난 것 같다.


32->25->16->12->8->14


계속 좋아지다가 최근에 다시 점수가 반등했다. 별 다른 일도 없었는데, 의사 선생님의 질문에 나도 모르겠다고 답했가.


그러다 문득 원인을 알 것 같았다. 바로 회사였다.


11월 이후에는 마음 회복에 집중을 하며, 커리어에 대한 아쉬움에는 초점을 잠시 거두었다. 마음에 힘이 좀 더 생기면 그때부터 뭐라도 해보자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맡겨진 일에 대해 기본만 하자는 마음으로 일을 했다. 욕심도 아쉬움도 없었고, 내 기준에서는 이 정도로 일해서 이 정도 급여를 받는 게 만족스럽기까지했다.


그런데 12월 중순쯤, 불만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새로운 프로젝트에 투입이 되었고, 처음 보는 사람들과 같이 일을 하게 되었다.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뭔가 열심히, 잘해봐야지 하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그런데, 얼마 못가 큰 실망들이 찾아왔다.


PM. PM을 맡고 계신 분은 직급으로는 우리 회사 내에서 꽤 높은 직급이나, 나이에 비히면 의문이 들 정도의 직급에 있는 분이었다.


PM을 맡고 계시는 분(A라 하겠다) 여러면에서 놀라웠다.

- 혼자서 아침에 2-30분 늦게 출근하기

- 근무 시간에 코 골며 낮잠자기

- 근무 시간에 이어폰 꽂고 게임하거나 유튜브 보기

- 일 안하다가 야근 식대로 저녁 배불리 먹고 30분 앉아서 놀다 퇴근하기


일에 대한 관심이 적다보니 이해도 떨어져서, 중요한 의사결정이 있으면 자꾸 미뤄 팀원들이 일을 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이해 없이 업무를 마구 던지다보니 필요 없는 일을 팀원들에게 하게 하는 경우도 많다.


그 외에도, 더 어두운 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프로젝트 중에 필요에 따라 외부에 금액을 지불하고 도움을 얻기도 하는데, 이 A가 중간에서 외부로부터 그 금액의 일부를 받고 회사와 연결을 시켜준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닐 수도 있지만, 그럴 법도 한 것이, 우리 회사가 금액을 지불했고, 사실상 갑임에도 불구하고, 금액을 지불한 것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기는 커녕, 비협조적인 외부 인력에 대해 별다른 요구나, 요청, 조치도 행하지 못하고 있는 게 영 이해가 안된다. 그리고 또 술을 마시고 어린 부하 직원을 때려 멍들게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이야기는 자신이 그 피해자임을 주장하는 당사자로부터 들은 것이다.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내 눈으로 보는 것만 믿는다해도 나는 이 A라는 사람이 정말 싫다.


일을 열심히 잘해가도 인정도 못 받고, 반대로 비난/비하는 쉽다 문구 글자 크기나 위치 같은, 견해 차이로 볼 수 있는 사소한 포인트에서는 쉽게 화 내며 팀원들을 깎아내린다. 그런 부정적인 피드백은 본인에게 직접하기 보다는, 그 사람 빼고 다른 사람들만 다 있을 때 뒷담화처럼 이야기한다. 도움듀 안되고, 기분만 상하는

피드백이다.


일을 안할거면 방해나 말지, 하루 종일 발을 굴러 바닥이 울리게 하기도 한다.


식사 메뉴도, 자기가 제안한 메뉴에 동의할 때까지, 뭐가 먹고 싶냐고 계속 묻는다. 원하는 대답이 아니면 못 들은 척하거나, 결정을 미루고, 조금 뒤 다시 묻는다.


일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직원들이 먼저 퇴근하게 쉽사리 보내 주지도 않는다. 먼저 퇴근하겠다는 말은 해도, 먼저 퇴근하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냥 보고 있으면, 짜증이 난다.


생각이 더 나아가면, 내가 이런 사람이랑 왜 일을 같이 해야 하는지, 이 사람 아래에서 일을 어떻게 배우고, 어떻게 인정 받아 앞으로 나아갈지 까마득해진다.


이정도 직급에 이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는 게 더욱 암담하다.


어쩌다 이런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흘러 들어오게 되었는지를 생각하면 그게 내 잘못 같아 우울해진다. 일

하던 중간에도, 퇴근하는 길에도 그런 생각들을 한다.


내가 가고자 했던, 같은 업계의 회사는 전혀 이렇지 않았다. 비록 인턴이었지만 몇달간 지켜 본 그 회사 사람들은 다들 지독히 열심히 일했고, 대신 일하지 않는 순간에는 잘 쉬었다. 그때 내가 어려서였는지는 몰라도, 최소한 무임승차하는 사람은 없었다.


미친 듯이 일하고, 서로 더 잘하려고 경쟁하고, 인정 받으려 날뛰는 분위기가 더 좋은 건 아니지만, 지금 이런 상황에서는 너무나 무력감이 든다.


이런 환경에서, 이런 사람들을 계속 보다 보니 정말 내가 이 곳에서 이 사람들의 부하 직원으로서 함께 일하고, 배우고, 평가 받게 된 게 굴욕스럽고, 불만스럽다.


이직에 대한 열망이 점점 커지고. 미뤄왔던 시간을 조금 더 앞당겨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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