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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미 Nov 22. 2022

입이 짧은 언니와 뭐든지 잘 먹는 동생

치앙마이 맛집: 꼬프악꼬담

어쩔 수 없이, 자매든 형제든 간에 한 배에서 나온 자식들은 비교의 대상이 된다. 서로 비슷한 환경과 유전자를 물려받았음에도 서로가 갖지 못한 것들 때문에 말이다. 그런 것들의 향한 비교는 사소한 것에서부터 때로는 거대한 것에 이르기도 하는데, 어릴 적 서영이와 내가 가장 비교되던 것은 음식이었다. 식습관 말이다. 할머니들 손에서 자라오던 나는, 친할머니에게도, 외할머니에게도, 고모할머니에게도 지겹게 들어오던 소리가 있었다.


“야채 좀 먹어라, 이렇게 삐쩍 말라갖곤 우짤래, 니 동생은 저렇게 잘 먹는데”


그랬다. 나는 유독 편식이 심했다. 가리는 음식은 많고 음식 먹는 양은 적고, 더군다나 살도 안 찌는 체질이니, 할머니들의 레이더망에 유독 잘 걸렸다. 나는 밥상 앞에만 앉으면 할머니들의 잔소리 대상이 되어버렸다. 반면에 서영이는 잘 먹고 음식을 가리는 법이 없었다. 할머니가 먹으라고 권유하는 반찬을 잘도 받아먹었다. 고개를 세차게 휘젓던 나와는 다르게 말이다. 그렇게 고개를 세차게 휘젓던 아이는 성인이 된 지금도 변함이 없다. 여전히 야채를 먹지 않고 새로운 음식 먹기를 꺼려한다. 소주를 좋아하지만, 소주 안주에 제격이라는 회는 먹지 않는다. 한 번 맛보면 중독이 된다는 마라탕을 이제까지 입에 대지 않았다. 그러나 서영이는 아빠와 오징어회를 즐겨먹고, 마라탕 중독자가 되어버렸다. 사실 나라고 음식에 도전을 전혀 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음식에 도전을 하고 싶어도, 야채나 날것을 입에 넣으면 헛구역질을 해대니, 먹지 못하는 음식이 많은 것일 뿐. 편식이 심한 이유라고 해두자.


그러나 나의 편식이 스스로 싫었던 적은 할머니들의 잔소리를 들을 때, 그 잠깐뿐이었다. 편식이 심하지만 고기반찬만 있으면 오케이었고, 패스트푸드와 고깃집이 널린 한국에서 입에 맞는 음식을 찾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음식에 도전을 하지 않아도 세상에는 내가 먹을 수 있는 맛있는 음식이 많다’ 이것이 나의 진리였다. 그리고 그 진리가 백 프로 맞지 않음을, 내 입맛이 아쉬워진 건 다름 아닌 한국을 떠나온 여행에서였다. (여행은 이런저런 이유에서 여러 가지 깨달음을 준다. 놀이를 가장한 선생님임에 틀림없다.)


다른 나라에 가면 그 나라 고유의 음식을, 그 나라의 감성으로 먹어보는 것. 여행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행복인데, 나는 그것을 온전히 누리기 힘들었다. 거리를 걷다가 길거리 음식을 먹어보는 것. 블로그나 sns를 찾아보고 가는 맛집이 아니라 현지인들만 가는 맛집을 가는 것. 나에게는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 나라에 가면 그거 꼭 먹어봐야 한다던데.라는 말에서 나는 ‘그거’를 먹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행 다녀온 나라를 맛으로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나에게 하나의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어느 나라든, 패스트푸드점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의 구원자가 되어준 햄버거, 피자. 치킨. 아마 이런 음식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계속 여행을 하지 못했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치앙마이는 편식쟁이에게 적합한 여행지였다. 섬을 가거나 해안가 지역으로 여행을 갔을 때는 해산물 파는 곳만 잔뜩이어서,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기 어려웠지만, 치앙마이는 아니었다. 서양인 관광객이 많은 탓일까. 태국 고유의 음식들을 파는 곳도 많지만, 파스타나 햄버거를 파는 곳이 많았고, 한국인도 많이 오는 덕에 한식집도 꽤 있어서 여행을 하는데 큰 불편함은 없었다. 더군다나, 서영이는 나보다 음식을 잘 먹으니, 2주라는 꽤 긴 여행에 음식 부분에서는 문제가 없었다. 내가 편식이 심하고 새로운 음식에는 도전을 잘 못하지만, 어딜 가나 고기가 들어간 음식은 있을 테니 말이다.


치앙마이에서 우리는 고기를 찾으러 다니는 두 마리의 하이에나였다. 닭고기를 구워파는 맛집을 가고, 윤기가 줄줄 흐르는 비비큐 폭립을 먹고, 패티가 두툼한 햄버거 집에 갔다. 그러다, 그래도 다른 나라에 온 티는 내야 하지 않겠냐며 쌀국수를 먹곤 했다. 그마저도 고기가 가득 들어간 쌀국수였지만.


한날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이에나로 치앙마이를 머물다 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 엄연히 우리는 사람이 아닌가. 이제는 여행하는 인간이 되어보자.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음식을 찾아보기로 말이다. 그래서 눈과 입을 사로잡는 맛이 있다던, 여행자들에게 유명한 ‘꼬프악꼬담’을 가기로 했다. 꼬프악꼬담은 4색의 커스터드 크림과 토스트 세트가 유명한 곳이다. 블로그를 찾아보니, 분홍색, 주황색, 하늘색, 연두색으로 된 4가지 색의 커스터드 크림이 아니나 다를까, 나를 사로잡았다. 여긴 가야 해! 치앙마이를 기억할 수 있는 맛집 한두 군데는 남겨둬야 하지 않겠어?라는 마음으로 서영이와 함께 가기로 결정했다. 블로그를 찾아본 순간부터, 커스터드 크림이 너무 예뻐서 기대가 잔뜩 되던 곳이었다. 게다가 국수 맛집이라던데, 면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환상의 장소였다.


저장해둔 구글 지도를 보며 걸어서 찾아간 꼬프악꼬담. 햇빛이 살갗을 무섭게 공격하기 좋은 한낮의 시간대였지만 토스트 세트와 국수에 대한 기대는 그런 햇빛의 공격마저 무색하게 만들었다. 뜨거운 햇빛을 견디며 우리는 꼬프악꼬담에 도착했고, 차례를 기다리다 드디어 우리가 메뉴를 주문할 시간이 되었다.


“서영아 우리 토스트 세트 하나 시키고 끈적국수 두 개 시키자. 원래 면은 잘 들어가는 거 알제. 하나하나씩 시키면 적을 것 같다”

“음.. 나는 국수는 안 먹을래. 내 스타일 아니다.”

“진짜? 돼지가 어쩐 일인데”

“언니. 나 사실은 쌀국수 안 좋아한다.”


놀라운 일 아닌가. 그렇게 잘 먹는 애가 쌀국수를 안 좋아한다니. 안 좋아하는 음식이 있다니. 나보다 잘 먹는 모습만 본 탓에, 서영이를 돼지라고 부르곤 했었다. 잘 먹는다고 칭찬받는 서영이가 질투가 나서, 나는 그런 서영이를 놀릴 방법을 찾아야 했고 그 방법이 ‘돼지’라는 별명을 붙여준 것이었다. 서영이가 뚱뚱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나보다는 통통하니 그것이 서영이를 놀리기에 제격이라고 생각했다. 아무튼 잘 먹고 음식을 가리지 않는 서영이가 음식을 거부할 때도 있다니.


편식쟁이의 대표로서, 누군가 음식을 먹으라고 거듭 요구하거나, 안 먹는다고 핀잔을 주는 상황을 싫어했다. 눈치를 보고 억지로 먹는 것도 싫었기에 서영이의 마음을 잘 알았다. 그래서 더는 말을 하지 않고 토스트 세트 하나에 끈적 국수를 주문했다.


기다림 끝에 나온 토스트 세트. 과연 예쁘다. SNS와 블로그에서 보던 모습 그대로였다. 사실 토스트의 맛은 특별할 것 없었지만 부드럽고 달콤한 크림이 좋았고 토스트와도 환상의 궁합이었다. 살짝 느끼할 즈음에 나온 끈적국수. 아 여기는 국수 맛집이구나. 화려하고 예쁜 토스트에 가려져 있던 끈적국수의 맛은 예술이었다. 느끼해지는 속을 매콤한 국물이 달래주었다. 과하게 맵지고 않고 얼큰하지만 맑은 그 국물의 맛이, 숟가락질을 멈추지 못하게 만들었다.

입이 짧은 언니가 정신없게 먹는다. 고기 말고 언니가 저렇게 음식을 먹는 것을 본 적 없던 서영이가, 살며시 묻는다.


“맛있나?”

“완전. 국물 제대로임. 와 이런 곳을 왜 이제 왔을까”

“한 입만 먹어봐도 되나?”

“왜 쌀국수 니 스타일 아니라메”

“아니. 언니가 그렇게 맛있게 먹으니깐 궁금하다. 한입만”


궁금해하는 서영이의 모습에, 자연스레 숟가락을 넘겼고 서영이가 한입 먹더니 놀란 눈으로 입을 가리고 나를 쳐다본다.


“와 언니... 이거 진짜 맛있다. 왤케 맛있어”


서영이의 감탄 어린 말을 듣고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다 낄낄거렸다. 그럼 그렇지. 역시 넌 우리 집 돼지다. 솔직히 입이 짧은 내가 어느 정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이면, 서영이의 입맛에 맞지 않을 리 없다.


“역시 돼지는 돼지다. 하나 더 시켜줄까?”

“어. 나도 인정 안 하고 싶은데 돼지 맞는 것 같다. 여기 와서 살 더 찔 것 같다.”

“쌀국수를 안 좋아하는 게 아니고 맛없는 쌀국수를 안 좋아하는 듯”

“어 그게 맞다”


우리는 또 키득거리며 웃었다. 뒤이어 나온 끈적국수를 서영이가 열심히 먹는다.

나는 서영이가 뭐든지 잘 먹어서 좋다. 어릴 때는 그런 모습에 칭찬을 받는 모습이 질투가 났고, 그런 서영이를 돼지라고도 놀렸고 지금도 놀리지만. 어쨌든 서영이가 잘 먹어서 좋다. 입이 짧은 언니랑 다녀서 음식이 아쉬울 법도 한데, 뭐든지 잘 먹어줘서 좋다. 내가 갖지 못한 모습을 가진 서영이가 좋다.


형제자매란 비슷한 환경과 유전자를 물려받았음에도 서로 갖지 못한 어떤 점들 때문에 비교의 대상이 되기 쉽지만, 나는 이제 다르게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갖지 못한 걸 서영이가 가져서 좋고, 서영이가 가지지 못한 걸 내가 가져서 좋다고. 서로에게 더 좋은 영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일단은 음식부터 시작해 보자. 입이 짧은 나 때문에 함께 음식을 먹을 때에는 음식의 폭이 좁아지겠지만, 입이 짧기 때문에 서영이는 맛있는 음식만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맛없는 쌀국수 말고 맛있는 쌀국수로, 이를테면 꼬프악꼬담의 끈적국수처럼. 나 또한 뭐든지 잘 먹어주는 동생 덕분에, 눈치 보면서 못 먹는 음식을 먹지 않아도 될 것이다. 나 때문에 다양한 거 못 먹는다고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서로 없는 부분을 나누기 시작하다 보면 금세 채워지지 않을까. 줄 수 있고 받을 수 있는 동생이란 존재가, 아니 그런 존재가 서영이라서 좋다.


입이 짧은 언니와 뭐든지 잘 먹는 동생은 어쩌면 환상의 궁합이지 않을까. 4색의 커스터드 크림 토스트와 끈적 국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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