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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그늘 Nov 13. 2022

EP 4. < 도화선 위에 외발로 서있는 불꽃같아서 >

22.11.13 SUN





제주에서의 꿈만 같던 사흘을 뒤로하고 김포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 피곤에 반쯤 절여져 있던 나는 착륙 음성이 기내에 울려 퍼지자 잠에서 깼다. 창 밖으로 멍하니 향하던 시선이 갑자기 흔들렸다. 가장 외곽 시야부터 음영이 지더니 이윽고 블러 처리된 영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식은땀이 흐르다 이내 호흡이 가빠졌다. 몸이 저려왔고, 빈 속이 아우성치기 시작했다. 앞 좌석에 이마를 기대고 거친 호흡을 했다. 살기 위한 본능이었다. 들이내쉬지 않으면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곧 죽을 것만 같았다.



갑작스러운 공황이 찾아왔다.



창백한 호흡을 입에 머금고 기내를 급히 빠져나와 근처 정수기 옆에 앉았다. 인위적이던 호흡은 점차 부드러워졌고 저리던 몸도 회복됐지만 속은 여전히 메슥거렸다. 의식적으로 사납게 뜨던 눈을 거두고 긴장을 풀고 차분한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마등이 스칠 새도 없이 일어난 그 모든 것들이 믿기지 않았다. 세상엔 머리로는 알아도 몸과 마음으로 느끼지 못하면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더러 있다던데, 그 말 뜻에 새끼발가락 정도는 들이민 기분이었다.



문득, 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먼 과거가 아니라도 좋으니,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좋으니 나의 시간선을 머릿속에 애써서라도 펼쳐보는 과정이 필요했다. 가장 먼저, 타버려 재가 될 것만 같았던 순간을 경험하고 나서야 내 삶을 돌이켜 보는 행태를 보아하니 역시 나는 모나고 연약한 사람이라는 존재임을 다시금 깨달았다.



타오른다는 것은 무언가를 태워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래, 나는 나를 태워낸다. 나를 태워내 삶을 피워낸다. 그리고 피워낸 삶과의 끝없는 마찰이 빚어낸 열기를 양분 삼아 나는 다시금 피어난다. 태워내고 피워내기를 반복한다는 것은 살아간다는 것이다. 타오른다는 것은 살아간다는 것이고, 타오르는 존재라는 것은 살아가는 존재 것이다.

이 모습 마치,

도화선 위에 외발로 서있는 불꽃같아서

선명한 태양 아래서도 타오르고,

허적한 새벽 위에서도 타오른다.

마주한 어둠 속에서도 타오르고,

펼쳐질 서광 앞에서도 타오르겠지만

산들바람에도 위태롭다.



심히 유해했던 나의 이십 대 초반을 기억한다. 나조차 나 자신을 믿지 못하면서 주변을 둘러보지 않고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밖에 볼 줄 모르던, 그때의 타오름을 선명히 기억한다. 그 시기를 경험하고 지나며 깨달았던 것이 있다. 가난한 마음이 연소되면 반드시 유해물질을 발산한다는 것과 감정을 촉매로 하는 타오름은 그 맹렬함으로 하여금 누군가를 쉽사리 그을린다는 것이다.



나의 가난한 마음과 맹렬함이 누군가의 마음을 그을렸을지도 모른다. 민들레 홀씨가 옅은 불꽃에도 쉽사리 재가 되듯, 여리고 섬세한 존재들은 목탄같이 새까만, 나라는 불꽃에 그을려 아직도 지우기 힘든 흉터를 안고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형태를 띠며 타오르건, 어떤 방향으로 작열하건 누구도 막을 수 없다. 개인에게 주어진 삶을 하나의 존재로서 두 발 딛고 살아간다는 것은 그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특권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모든 것에 책임이 뒤따른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할 수만 있다면 돌아가 과거의 나에게 나에게 이야기하고 싶다.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도 다시금 이야기해주고 싶다.

반드시 타오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고,

반듯이 타오르는 불꽃의 가치를 소중히 여겼으면 한다고.



언젠간 타올라 아득히 사라질 불꽃이지만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가 있다. 스치는 바람에 아우성치고 주저 않을 만큼 모나고 여린 존재이지만, 휘청이는 매 순간을 겪어 내며 꺼지지 않고 타오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은 각박하리만치 거칠게 나를 태워왔다. 이제는 어지러이 헤매는 불꽃보다는 반듯하고 따듯한 불꽃으로 타오르길 바란다. 가난한 마음을 촉매로 타오르는 것을 그만두고 그 누구의 마음에도 그을림의 자국을 새기지 않는 불꽃으로 온화하게 타오르길 바란다.



타오른다는 것은 무언가를 태워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래, 나는 나를 태워낸다. 나를 태워내 삶을 피워낸다.

그리고 피워낸 삶과의 끝없는 마찰이 빚어낸 열기를 양분 삼아 나는 다시금 피어난다. 태워내고 피워내기를 반복한다는 것은 살아간다는 것이다. 타오른다는 것은 살아간다는 것이고, 타오르는 존재라는 것은 살아가는 존재 것이다.




Instagram : @mingkook

Youtube : 김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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