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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tterist Oct 12. 2024

과학 이야기의 시작,
기절초풍 왕순대.

#레터리스트의 과학 이야기 1.

우린 어디서 왔을까?
또 어디로 가게 되는 걸까?


출판사에 다니던 시절, 연이 닿은 노교수님 한 분이 계셨습니다.


오랜 시간, 거의 당신의 평생을 바쳐가며 학생들에게 과학 강의를 해오신 분이셨죠.

특히 이분은 과학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는 데 능하셨습니다.


운 좋게도 그런 훌륭하신 분과 연이 닿아 저 역시 그분으로부터 과학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배울 수 있었지요.


그때까지의 저는 천상 문돌이에 대학 전공도 사회학이었고, 입시 때문에 꼭 해야만 했던 고교 시절의 과학 공부 외에는 단 한 번도 자발적으로 과학 이야기를 찾아 듣거나 공부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속칭 과알못이었던 셈이죠.(물론 지금도 과알못 축에 들 겁니다)


하지만, 공부 잘하는 과학 전공 학생들, 비슷한 연구를 하는 교수님들과 주로 대화를 나눠오셨기 때문일까요?

교수님께서는 오히려 그런 저와의 과학 이야기 대화를 참 즐거워하셨습니다.


자기처럼 평생 과학 공부해 온 사람들, 말보다 숫자로 소통하는 게 더 편한 사람들은 과학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과학에 대해 어떤 걸 궁금해하는지, 어떤 식으로 과학을 이해하는지. 이런 쪽의 생각을 해보는 게 오히려 참 어렵다 하시면서 말이죠.


그렇게 교수님의 흥미를 자극한 덕(혹은 죄)에 저는 노교수님이 시도 때도 없이 카톡으로 던져 주시는 과학 문제(때론 수학 문제)를 풀어야 했습니다.

불쑥불쑥 올라오는 교수님의 카톡 알림을 보며 '아...또...' 싶을 때도 있었지만, 

그리고 그 문제를 풀어내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래도 참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물론, 카톡으로만 이야기를 나눴던 건 아니었습니다.


종종 교수님과 둘이 소주를 기울이기도 했지요. 운동(특히 테니스) 관련된 이야기, 건강 이야기, 이런저런 세상 사는 이야기 등등을 안주 삼아서 말입니다.(물론 당연히 과학 이야기는 늘 기본안주처럼 있었습니다)


순댓국을 꽤 좋아하는 분이셨던지라 장소는 주로 순대국밥집이었습니다.


왕순대를 안주 삼아 소주를 즐기는(심지어 빨간 뚜껑) 교수님의 머리는 백발이 성성했지만 과학 이야기, 그중에서도 특히 우주에 관한 이야기를 펼쳐놓으시는 그분의 눈동자는 마치 어린아이의 눈동자 같았습니다. 

호기심으로 가득 찬, 너무 재밌어 죽겠다는 듯한, 그래서 얼른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듯한 그런 눈동자 말입니다.


평생을 이과인, 그것도 보통 이과인이 아닌 학문의 영역에서 탑을 찍는 이과인으로 살아오신 분의 이야기였던 탓에 모태 문과인인 저로서는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그런 외계어와 무지막지한 숫자들이 중간중간 튀어나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저 역시 참 재미있게 그분의 이야기를 듣고 궁금한 걸 묻고, 또 때론 제 생각을 늘어놓았지요. 


그렇게 같이 밤늦도록 순대와 소주를 즐기곤 했습니다. 만취할 때까지 말이죠.


꽤 오래된 일이고, 순대국밥집에서 소주를 기울일 때면 거의 매번 만취했기에 교수님과 나눴던 이야기가 다 기억나진 않습니다만 그래도 한 가지 이야기만큼은 아주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교수님이 늘 거의 입버릇처럼 달고 사시던 이야기, 그분의 최대 관심사.


"XX씨, 진짜 참..궁금하지 않아요? 

우린 대체 어디서 왔을까요? 또 어디로 가게 되는 걸까요? 햐..이거 진짜 참 대단하단 말이죠.."

(제 할아버지 뻘이셨음에도 늘 제게 존대를 하셨습니다. 생각해 보니 이것도 참 대단하시죠..)


사실 제가 봤을 때 교수님은 저 두 질문의 답을 이미 꽤나 많이, 그리고 자세히 알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저 질문을 달고 사셨고 늘 저 질문에 대한 이야기들이 참으로 대단하고 또 대단하다며 감탄하셨죠.


그때는 잘 몰랐지만, 이제는 저 역시도 어느 정도는 압니다.

저 질문이 왜 평생을 과학 공부에 몸 바쳐 온 노교수가 늘 입에 달고 살 정도로 중요한 질문인지를, 

그리고 저 이야기가 왜 그 노교수가 매번 새롭게 감탄할 정도로 대단하고 경이로운 이야기인지를 말이죠.


몇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과학 이야기를 찾아보고 공부하다 보니 저 역시도 얼추 알게 되고 느끼게 되더군요.


그런데..그렇게 꽤 열심히 했는데 제가 이해한 과학 이야기, 그리고 제가 느낀 그 경이로움을 이젠 교수님과 함께 나눌 수 없다는 것이 참으로 아쉽습니다. 


네, 교수님은 몇 해 전,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교수님과 함께 순댓국집에서 술잔을 기울였을 때, 언제까지 그 교수님이랑 술 먹냐고 카톡으로 입을 삐죽거리던 여자친구가 지금은 제 와이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와이프와 어제는 아주 오랜만에 교수님이 가장 좋아하셨던 그 순댓국집에 다녀왔습니다.


장소가 장소인지라 간만에 교수님 이야기도 하고 과학 이야기, 우주 이야기도 와이프에게 늘어놓았습니다.

저보다 더더더 모태 문과인인 와이프는 이쪽 얘기는 원래 머리 아프고 재미없고 좀 별론데 그래도 오빠가 해주는 이야기는 재밌다며 잘 들어주곤 합니다. 


진짜인지, 그냥 남편 기 살려주려고 맞춰주는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진짜일 거라 믿고 한번, 용기 내어 여러분에게도 떠들어볼까 합니다.


과학 이야기를 천천히 쉽게 풀어내 보자.


내가 교수님한테 듣고 배우고 또 공부해서 이해한 이 재밌고 신기하고 경이로운 이야기,

그래서 어쩌면 기절초풍할 만한 이야기, 


우린 어디서 왔고 또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남한테도 한번 떠들어 보자.


꽤 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일이긴 한데, 시간과 용기가 부족하다는 핑계로 미적거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왠지, 여기서 더 미적거리면 안 될 것만 같습니다.

순대 한 접시와 빨간 뚜껑 소주 한 병에 용기를 얻었으니 한번 나름대로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와이프는 이미 질리도록 들은 이야기고, 살아계셨다면 아마 가장 잘 들어주셨을 교수님은 이제 계시지 않으니 여러분이 한번 잘 들어봐 주시면 참 감사하겠습니다.


천상 문과인인 Letterist가 풀어주는 과학, 그리고 우주 이야기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레터리스트의 과학 이야기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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