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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tterist Oct 12. 2024

맛있던 장어구이집.

레터리스트의 시시콜콜 이야기

경기도 파주에는 제가 정말 좋아'했던' 장어구이집이 있'었'습니다.


그 집에 처음 갔던 게 얼추 계산해 봐도 20년 전이니 나름 역사가 깊은 집이죠.

대궐만큼 큰 한옥집을 개조해서 음식점으로 사용하는 그런 집입니다.


파주가 먼 곳이 아니긴 하지만 그렇다고 밥 먹으러 자주 갈 만큼 가까운 곳은 아니기에, 그리고 장어구이라는 건 예나 지금이나 꽤 고가의 외식 메뉴이기에 그 집에 자주 갔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적어도 한 반년에 한 번 정도씩은 그 집에 꼭 가곤 했지요.


갈 때마다 이 집은 언제나 언제나 변함없는 이 집만의 다양한 것들로 저를 설레게 하곤 했습니다.


장어구이집 근방 100미터 즈음부터 벌써 풍겨오는 장어 굽는 냄새, 그 냄새를 따라가다 보면 나타나는 운동장처럼 큰 주차장과 이미 가득 들어차있는 차들, 얼른 주차하고 들어가면 마주하게 되는 '대기표 나눠주는 일종의 매표소(?)', 그 대기표를 들고 대기 장소에 들어가면 이미 버글버글하게 대기 중인 나보다 한발 빠른 손님들 등등.


'우리 집은 겁나게 맛집입니다!' 


를 세련되게 보여주는 이 수많은 비언어적 요소들의 향연.


도무지 설레지 않을 도리가 없는 그런 집이었지요.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다 보면 어느덧 내 차례가 오곤 했습니다. 

그럼 자리를 안내받아 가곤 했지요. 그리고 그렇게 안내받은 자리에 가면 이제 그곳에 이 집만의 진짜배기 매력포인트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의자도 식탁도 없이 그냥 덩그렇게 '텅 빈자리'


개인적으로 이 집의 최고 시그니처는 바로 이 '텅 빈자리'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처음 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황하게 되는 그 텅 빈자리에 방석 깔고 대충 철푸덕 앉아 기다리면 이윽고 '누가 봐도, 어디서나 실장님' 처럼 보이는 단정한 매니저님이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주문을 받아 적어 가셨고 그럼 이내 건장한 남학생들이 밑반찬 가득 올라있는 그야말로 문짝만한 상을 통째로 들고 오곤 했지요.


반찬이 가득 올려져 있는 얼핏 봐도 무거워 보이는 그 큰 상을 2단, 3단, 심지어 4단까지 쌓은 채 들고 다니는 모습은 마치 생활의 달인 파주 편을 보는 것만 같았습니다. 가게가 워낙 크고 또 장사도 잘 되다 보니 이렇게 상 나르는 남학생만 못해도 최소 수십 명 규모였지요.


그리고 비록 상을 번쩍번쩍 나르진 않았지만 분주하게 뛰어다니며 서빙을 하는 여학생도 역시 또 최소 수십 명,  거기에 한쪽에서 일렬로 주욱 늘어서서 숯불에 장어를 구우시던 이모님들까지.


그 규모가 참으로 대단한 그런 엄청난 집이었습니다.


그래서 전 이 집에 방문할 때마다

'여기서 일하는 알바생들만 해도 이게 대체 몇 명이냐..이 집 하나가 못해도 이 지역..최소 읍단위 경제는 먹여 살리고 있겠구만' 이런 생각을 하곤 했지요.


물론 이내 나오는 끝내주는 장어구이 맛에 홀려 지역 경제 생각은 금방 흩어지곤 했지만 말입니다.


어쨌든 저는 이 엄청난 집을 20년도 넘게 다녔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한 두어 달 전에도 이 집에 다녀왔죠.

모처럼 쉬는 날을 맞아 와이프와 제 모친, 이렇게 제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두 여인을 모시고 말입니다.


그런데 오랜만에 방문한 이 집의 느낌이 입구에서부터 이전과는 좀 미묘하게 다르더군요.


으흠..? 하며 들어선 가게가 전과는 전혀 다른 집이 되어버렸다는 걸 알아차리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깔끔하게 현대식으로 리모델링된 내부, 짧게 올려친 머리와 샤프한 안경을 통해 '나는 프로다'의 느낌을 물씬 풍기며 깔끔하게 주문을 정리해 가시던 실장님을 대신하는 네모난 태블릿 PC, 자리마다 붙어있는 그 태블릿과는 참 잘 어울리지만 아직 내겐 많이 낯선 '서빙 로봇들'.


그리고 못해도 한 90%는 넘게 사라진 듯한 그 많던 알바생들의 빈자리까지..


저의 20년 단골집은 그렇게 전혀 다른 낯선 집이 되어있었습니다.


일단 조금 당황스럽고, 잔뜩 변한 그 모습이 영 마뜩잖긴 했지만 어쨌든 주문을 했습니다.

텅 빈자리 없이 들어차있는 식탁을 앞에 두고 깔끔한 의자에 앉아서 말이죠.


그리고 식사를 시작했지요.


밥을 먹다 중간에 앞접시 하나가 필요해 한 알바생에게 앞접시 하나를 부탁했더니 자리에 있는 태블릿을 통해 눌러주시면 된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으흠..?! 싶었지만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기에 낯선 태블릿으로 어설프게 앞접시 요청을 누르니 방금 전의 그 알바생이 앞접시 하나를 갖다 주었습니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건가...싶었지만 여기까지도 그냥 그러려니 했지요.


제가 그 20년 단골집에서 본격적으로 슬퍼지기 시작한 건, 

단지 기분 탓이 아니라 정말로 예전만 못해진 장어구이 맛을 본 순간, 바로 그때부터였습니다..


이곳저곳에 편리하고 좋은 첨단 기술을 넣었지만, 그 대신 또 그마만큼 아니 어쩌면 그거 이상으로 사람 손을 뺐을 테니 음식맛도 전만 못한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겠지요.


비록 사람이 아니라 음식점이긴 하지만 어쨌든 20년 지기와의 이별이란 건 역시나 꽤 무게감이 있었습니다.

그날의 식사는 그렇게 영 슬프게 끝이 났고 그렇게 전 단골집 하나를 잃어버렸습니다.



물론, 시대의 흐름이란 게 그러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씁쓸하고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 또한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일 겁니다.


세상이 참 빠르게 바뀝니다.

어디든 이제 키오스크나 태블릿이 주문을 받고 이모님은 사라지십니다.


꼭 식당이나 카페에서만 그런 건 아닙니다.


자꾸 곳곳에서 사람이 사라집니다.



인터넷을 조금만 할 줄 알면 이젠 누구나 멋진 그림을 화가처럼 그려낼 수 있습니다.

꽤 괜찮은 글을 인공지능이 슥슥 대신 써주기도 합니다.

 

AI기술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게 더 발전하면 앞으로 이런 직업도 사라지고 저런 직업도 없어지고 대충 이것저것 다 사라지고 세상이 천지개벽으로 바뀔 거라고 합니다. 지금처럼 사람이 힘들게 일할 필요가 없어질 거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그 말이 제게는 조금 다르게 들립니다.


세상이 바뀌어서 힘들게 일할 필요가 없어진다는 말이 제게는 세상이 바뀌면 바뀔수록 자꾸 사람이 사라질 거라는 말로 들립니다.


조금 무섭습니다.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아야겠다 결심하니 누군가 제게 이야기합니다.


이제 글도 다 AI로 쉽게 쓰고 누구나 쓰고 할 텐데 그게 되겠냐 괜찮겠냐 이야기합니다.

서점에 가보니 생성형 어쩌고로 쉽게 글쓰기! 인공지능으로 5분 만에 글쓰기! 등등의 책이 넘쳐납니다.

착잡한 마음으로 뉴스를 훑어보니 이젠 인공지능이 사람처럼 추론도 할 거랍니다. 그래서 사람과 진짜 별 차이가 없어질 거라고 합니다.


무서운 마음과 걱정이 조금 더 자라납니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 보니 괜찮을 것 같습니다.


암만 인공지능이 발전하고 또 글을 기깔나게 잘 쓰게 된다 할지라도, 그들의 글이 진짜 사람의 글과 별 차이가 없게 된다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그건 '사람이 쓴 글'이 아닐 테니까.


물론 누군가는 깔끔하고 실수 없는 주문용 태블릿과 서빙 로봇이 더 좋다 하겠지만,

세상 사람 모두가 그럴 리는 아마 없을 테니까.


세상 누군가는 여전히 저처럼 사람 목소리로 부르는 이모 혹은 고모 혹은 삼촌 등등을 더 좋아할 테니까.

그러니까 괜찮을 것 같습니다.


사람으로 계속 쓰겠습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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