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편집자의 시시콜콜
개를 무척 좋아합니다.
개를 좋아하는 이유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아무래도 가장 큰 이유는 개들 특유의 그 '솔직함'입니다.
개를 키워보신 분이라면 아실 겁니다.
개들은 정말 솔직하죠. 숨김이 없습니다.
기분이 좋으면 '나 지금 기분 좋아!'가 얼굴에 그대로 드러납니다.
기분이 시무룩할 때, 화나거나 짜증이 날 때도 역시 그렇습니다.
본인들의 감정을 드러내는 일에 있어서 조금의 숨김도 없지요.
개들은 가면을 쓰지 않습니다.
반면, 우리 사람은 보통 그렇지 않죠. 거의 정반대입니다.
속으론 쌍욕을 해도 겉으론 미소를 짓고
속으론 흑심을 품어도 겉으론 스윗한 척하고
속으론 돈 생각만 하면서 겉으론 돈에 초연한 척하고..
굳이 예시를 더 들지 않아도 누구나 충분히 공감할 만큼 우리 사람이란 동물은 겉과 속이 참 다르죠.
물론, 사회생활 하려면 어느 정도 그런 게 필요하다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가끔씩 운 나쁘게 만나는 겉과 속이 달라도 진짜 너무 다른 그런 사람들은 하...대체 사회생활을 뭐 얼마나 끝내주게 잘하려고 그러시는 건지...그런 이들은 우리를 참 많이 지치고 허탈하고 힘들고 화나게 하지요.
반려견 관련 시장이 급속도로 커지고 사람 만나는 것보다 개와 함께하는 걸 좋아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는 건, 인스타 피드를 넘기다 보면 거의 반드시 남의 집 개를 보게 되는 건, 그리고 그 모르는 개의 사진에 나도 모르게 좋아요를 누르게 되는 건.
너무 많은 사람들의 가면에 지친 우리가 개들의 솔직함에 위로를 받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오늘은 그런 개들을 생각하며 저 스스로에게 한번 다짐을 해봅니다.
글 쓰는 사람으로서 부디 개 같은 글을 쓰자.
내 마음을 숨기지 않는 개처럼 솔직한 글, 부디 그런 글을 쓰자.
멋있어 보이기 위해, 나이스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똑똑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착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글, 솔직하지 못한 글, 마치 그런 '사람 같은 글'을 쓰지 말자.
비록 투박하고 조금 덜 나이스해보일 지라도(혹은 쪼끔 구려 보일 지라도), 조금 덜 착해 보이고 덜 똑똑해 보일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디 진짜 내 마음을 꺼내어 진짜 글, 그런 개 같은 글을 쓰자.
더 멋있어 보이고, 더 나이스해 보이고, 더 똑똑해 보이고, 더 착해 보이는 그런 글을 정 쓰고 싶다면...
글로만 그런 척을 할 게 아니라 먼저 진짜로 그런 사람이 되자. 그리고 난 후에 그런 글을 쓰자.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간혹 못 지키고 먼저 폼 잡고 척할 때도 분명 있겠지만 되도록 그러지 않도록, 되도록 부디 개 같을 수 있도록 늘 조심하고 노력해 보자. 하고 말입니다.
글을 쓰는 일은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꺼내어 다듬어내는 일.
그렇기에 마음에도 없는 말을 글로 쓰는 건 결국 아무런 의미도 가질 수 없을 겁니다.
그리고 세상에 내가 꼭 써야만 하는 글이라는 건 없는 법이니 굳이 급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천천히, 늘 조심하며 잘 꺼내고 잘 다듬어보겠습니다.
오늘은 처갓집에 갑니다.
그곳엔 아주 귀여운 개가 있지요.
당근을 무척 좋아하는 친구인데 당근을 많이 줄 생각입니다.
그럼 아주 좋아하겠지요.
개니까 말입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