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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슬 Apr 14. 2023

영국에서의 자취 A to Z (1)

장보고 요리하기

들어가기 전에 미리 밝혀두자면, 나는 한국에서 매일 부모님이 해 주시는 집밥을 먹으며 호강하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본가에서는 실내에서 휠체어를 타지 않았기 때문에 혼자 요리하는 것은 꿈조차 꿀 수 없는 일이었다. 한국 여성의 평균 키에 비해 한참 작은 신장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조리 기구를 가스레인지에 올리는 것조차 쉽지 않았고, 무언가를 붙들어야만 서 있을 수 있어서 요리하다가 발생할 수 있는 온갖 안전사고에 취약했다. 이를테면 프라이팬에서 기름이 튀길 때 재빠르게 뒷걸음질치지 못해 그대로 화상을 입는다든지.


그러하던 내 삶이 영국 생활과 함께 180도 달라졌다. 


우리 기숙사는 각자 독방을 쓰되, 같은 복도에 사는 사람들끼리 하나의 주방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구조다. 식사는 일체 제공되지 않으며, 대신 각종 조리기구는 기본으로 배치되어 있다. 우리 주방은 나까지 총 3명이서 함께 공유하고 있고, 봄방학 중인 지금은 필자를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본국으로 돌아가서 일시적으로 혼자 쓰고 있는 상태다.

필자가 혼자 쓰는 공간이 아니기에 냉장고나 수납장 내부를 공개할 수는 없지만, 휠체어로 다니기에 적합하다. 영상에 나온 것처럼 버튼을 누르면 싱크대와 하이라이트 상판의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어 혼자 요리하기에도 용이하다. 혼자서 요리를 해 먹을 수 있다는 점이 너무 좋아서 한국에서도 이렇게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는 상판이 있는지 찾는 중이다.


참고로 칼이나 도마는 따로 제공되지 않는데, 영국의 부엌이 이렇게 휠체어 접근성이 좋을 줄 모르고 한국에서 가져오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영국에서의 외식 물가는 엄청나게 비쌀지언정, 식재료 값 자체는 오히려 한국보다 싼 편이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애초에 식사를 제공해 주는 기숙사에 들어갔으면 이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겠지만... 이 기숙사가 캠퍼스와 제일 가까운 데다 (한국 대학들은 캠퍼스 안에 기숙사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영국 대학들은 그렇지 않다. 우리 학교 기숙사들만 해도 런던 곳곳에 뿔뿔이 흩어져 있다) 휠체어 사용자 전용 방을 마련해 주었기 때문에 자취를 택하게 됐다.


자취생들이라면 공감할 만한 고충인데, 매 끼니 요리를 해 먹는 게 생각보다 시간도 들어가고 귀찮은 데다 웬만한 식재료를 큰 묶음으로 판매하기 때문에 장볼 때마다 고민되는 것들이 많다. 그렇다면 (한국에 비해) 싼 영국의 식재료들은 무엇이 있을까.

먼저, 우유. 일반, 저지방, 무지방 우유로 나누어져 있으며 모두 1리터 기준 1.25파운드 (2000원)이다. 2.27리터짜리는 2500원에 구매할 수 있다. 빵을 주식으로 하는 국가인 만큼 우유가 필수적인 국민 음료인 데다, 우리나라에 비해 낙농업이 활성화되어 있어 우유를 수입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제품은 거의 다 싸다고 보면 된다.

비슷한 맥락에서 빵과 파스타 면도 정말 싸다.

한 묶음에 18조각이 들어간 식빵이 한화 기준 2200원, 베이글 5개입이 3000원 정도 한다. 파스타 면의 경우 브랜드에 따라 다르지만 500g에 1500원에서 3000원 사이, 1kg는 2600원에서 4000원 사이다.

과일도 싼 편인데, 콜롬비아에서 수입한 바나나가 낱개로 440원이다. 5개짜리 한 송이를 2200원에 먹을 수 있는 셈. 야채들도 마찬가지로 싸다. 영국에서는 무언가 인공적으로 제조되는 순간 확 비싸지고, 손질되지 않은 식재료들은 엄청나게 싸다. 과일은 개인적으로 시장에서 사는 게 더 싼 것 같다. 필자는 학교 바로 앞에 과일만 파는 시장이 있어서 거기서 1600원에 청포도 한 바구니를 사 오는 편이다 (마트에서 사 왔으면 3500원 정도다)

그 대신 문화 충격이라고 할 만한 게 있다면 쌀의 질감이 한국의 것과 많이 다르다. 한국에서의 밥은 쌀이 쫀득하고 찰기가 있어 숟가락으로 비비고 떠 먹기 좋다면, 영국에서의 쌀은 우리가 안남미/알랑미라고도 부르는, 쌀알이 하나하나 따로 노는 쌀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밥을 먹으려면 그냥 한인마트 가서 즉석밥을 쟁이던가, 한국 쌀을 배달시키던가 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한국에서 직수입해서 들여 와야 하는 이런 물품들은 참 비싸다. (그래서 한식당들이 정말 비싸다)

그래서 원래 빵을 잘 먹지 않는 필자도 여기 와서 반강제로 입맛을 바꾸었는데, 우리나라에서 김밥이 다양한 종류로 발전한 것처럼 이곳에서는 샌드위치가 보편적으로 끼니를 떼우는 음식이다. 실제로 Sainsbury's와 같은 영국의 편의점/마트에서는 샌드위치에 음료 하나, 간식 하나를 한 세트로 해서 원가보다 싸게 구입할 수 있는 meal deal을 제시하기도 한다. (필자 동네 기준 좀 괜찮은 거 먹으면 5파운드/8000원 정도 하는데, 필자는 귀찮아서 그냥 2.5파운드짜리 샌드위치만 사 먹는다.) 맨 첫 편에 연재했던 것처럼 영국은 명실상부 디저트 맛집이기 때문에, 기분 전환하고 싶을 때 쿠키나 조각 케이크 같은 걸 사 먹기도 좋다. 쿠키는 5개 들어있는 팩에 4000원 정도 했던 거 같다.


그럼 이곳에서는 어떻게 장을 봐야 할까? 최근 한국에도 (드디어) 도입이 되었다고 들었는데, 이곳은 삼성페이/구글페이/애플페이와 같은 비대면 인식 결제 수단으로 모든 걸 해결하는 국가다. (소매치기 사고가 너무 자주 일어나서 다들 카드를 안 들고 다니는 거 같기도...) 그리고 한국에서의 이마트나 홈플러스에서는 장바구니를 들고 계산대에 가서 점원이 계산을 도와주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은 거의 대부분 셀프 계산대를 이용한다. 방법은 별거 없고 계산할 물품들을 들고 가서 계산대 앞에서 하나씩 직접 바코드를 찍으면 된다. 만약 장바구니 가방이 있다면 적극 활용하자. 까먹고 안 들고 가면 30p (500원)를 추가로 내고 봉투를 받아와서 담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이마트와 홈플러스, 그리고 코스트코와 트레이더스로 크기별 대형마트가 나뉘어 있는 것처럼, 영국도 마트의 종류가 다양하다. Tesco라고 하는 곳이 제일 싸고 그 다음이 Sainsbury's (Sainsbury's도 그냥 세인즈버리가 있고 Sainsbury's local이 있는데, local의 규모가 조금 더 작다), 가장 비싸지만 더 다양한 종류의 식재료들을 파는 곳이 Little Waitrose다. 필자는 사실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학교와 기숙사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서 장보는 걸 선호해서 Sainsbury's local에 가장 자주 간다.


그렇게 장을 봐와서 요리를 하면 이렇게 된다.

제일 만만한 요리 1순위가 토스트, 2순위가 파스타다.

사실 파스타는 학식으로 나왔을 때 너무 문화 충격을 받아서 직접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면을 볶을 생각을 하지 않고, 삶은 면 위에 소스만 한 국자 부은 게 전부라니...ㅎㅎㅎ 그래서 영국 음식이 맛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 건가 싶었다.


어느 나라든 외식은 다 비싸지만, 영국에서의 외식은 유독 더 비싸다 (그렇다고 맛을 장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한국에서는 배달 음식도 꽤 시켜 먹었었는데, 여기서는 배달을 한 번 시키면 기본 물가에 배달비까지 더해져 한 끼에 25파운드 넘게 (4만원...) 나간다. 여기서는 작년 9월부터 지금까지, 휠체어 바퀴 수리할 때 움직일 수가 없어서 딱 한 번 배달을 시켜 먹어 본 것 빼고는 거의 배달 음식을 먹지 않는다.


대신, 정말정말 외식을 하고 싶을 때는 Too Good To Go라는 모바일 어플을 이용하기도 한다. 폰 계정의 국가가 영국으로 설정되어 있어야만 사용 가능하다는 단점이 있지만, 영국 식당들에서 그날 팔리지 않은 남은 음식들을 떨이로 싸게 판매하는 곳이다. 식당에서 해 준 그 맛을 느낄 수 있으면서 양이 많아 (한 번 투굿투고를 이용하면 최소 두 끼는 그걸로 먹을 수 있다) 가끔 밥하기 귀찮을 때 애용한다. 가격도 3파운드에서 5파운드 사이로 저렴한 편. 실제로 그 식당에서 메뉴 하나만 정가로 시켜도 최소 6파운드 이상은 하는데, 이 어플을 이용하면 최소 메뉴 3~4개를 하나의 정가보다 싸게 먹을 수 있어 좋다.

투굿투고 어플. 앱스토어와 구글 스토어에서 모두 다운로드 가능하다



자취를 하게 되면서 매달 가계부를 스스로 작성하니 돈이 어디서 가장 많이 빠져나가는지 알게 됐다. 새삼 이런 것조차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았던 한국에서의 내가 호강했었구나 싶다. 자취 생활은 어렵지만, 그만큼 불필요한 소비를 하지 않게 경제 습관을 들이기 때문에 좋은 점도 있는 것 같다.



다음 편에는 유학생들이라면 모두 공감할, 방학 동안 짐 보관하는 법과 자취방 구하는 과정을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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