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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슬 Feb 05. 2024

영국의 응급실

정말 위급한 상황에서 우린

놀랍게도 2024년의 첫 글이다. 마지막 글을 올린 것이 무려 작년 8월이니, 2학년이 된 이후로 브런치에 올리는 첫 포스트다. 그동안 필자에게는 참 많은 일이 있었는데, 간단하게 간추려 보자면 외교관이라는 직업에 진심이 되었고, 새벽마다 불어를 공부 중이며, 1학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학업량을 꾸역꾸역 견뎌내고 있었다. 


다만 바빠서 브런치에 글을 올리지 못했다고 이야기하는 건, 아주 큰 핑계다. 시간을 내어 글을 쓰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을 테니까. 엄밀히 이야기하면 이 공간에 어느 정도까지 나의 솔직한 모습을 내어보일 수 있을지, 또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글을 써나가야 할지 고민하느라 글이 늦춰졌다. <장애가 내게 가르친 것들> 시리즈로 시작해 지금 <나의 유학 일지>를 써내려가면서, 내가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들만을 선택적으로 골라내고 있는 걸까 문득 의문이 들었다. 보잘것없는 이곳의 기록들을 좋게 생각해 주시는 분들도 계셨지만, 반대로 그렇지 않은 이들을 직접 맞닥뜨리기도 했다. 순간 글을 쓰는 행위에 처음으로 공포감이 들었고, 2년차 유학생이 되고도 아직까지 처음 겪는 일들이 많으면서 내가 뭘 안다고 글을 써도 되는 걸까 무서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이곳에 기록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어쩌면 나의 글을 통해 조금이라도 영국 생활에 있어 도움을 받으시는 분들도 있지 않을까 하는 실낱 같은 희망 때문이었다.


원래는 영국과 프랑스를 휠체어로 다니면서 느낀 점을 가지고 오려고 했지만, 최근 영국에서 처음으로 응급실에 다녀왔기 때문에 이를 먼저 서술하기로 했다.


 


전에 이 시리즈에 영국의 의료 시스템에 대한 글을 발행한 적이 있다. 그때는 GP (주치의 시스템), 그러니까 영국에서 모든 진료를 받기 위한 1차 의원에 대해 주로 다루었었다. 그러나 최근 급성 맹장염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영국의 응급실 (A&E; Accident & Emergency Centre)을 방문하게 됐고, 영국 의료에 대한 생각이 조금은 바뀌었다.


시작은 단순했다. 여느 때처럼 불어 독학을 위해 새벽에 깼는데, 오른쪽 하복부가 유독 아팠다. 평소 으레 겪는 복통과는 다른 결이었다. 하지만 못 참을 정도로 고통이 심하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그 날 학교 강의를 비롯해 교수님과의 미팅도 잡혀 있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겼다. 오른쪽 하복부가 아프면 급성 맹장염일 수도 있다는 검색 결과를 확인했지만, 설마 맹장염이겠어 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다 점심시간이 되었다. 그날따라 교수님 미팅 시간이 예정보다 늦춰져 밥때를 놓치고 점심을 굶은 채로 미팅에 들어갔는데, 미친듯이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예감이 들었고, 미팅이 끝나자마자 바로 GP에 전화를 걸었다. 아침에 진료를 예약한 것도 아니었기에 당일 진료를 볼 수 있을 거란 보장이 없었지만, GP 소견서 없이는 병원도 가기 힘든 게 영국의 현실이었으니까. 운이 좋게도 환자가 없어 당일 진료를 볼 수 있다는 말을 들었고, 강의를 고작 20분 남짓 남겨놓고 GP 진료를 보러 갔다. (강의는 출결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게 천운이었다)


GP에서는 내 증상을 듣고 몇 번 복부를 눌러 보더니, 갑자기 내게 소견서를 써 줄 테니 오늘 당장 근처에 있는 A&E로 가라고 했다. 급성 맹장염이 의심되는데, 맹장염이 맞다면 최대한 빨리 수술을 받아야 하기에 우선 응급실에서 피검사부터 받아 보라는 이야기였다. 이 무슨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이야기인가. 애초에 그동안 GP 진료를 보면서 한 번도 2차/전문 병원에 가라는 소견을 받아 본 적이 없었기에... 여기서부터 병원이 나를 속이고 있다고 믿고 싶을 정도로 정신이 살짝 멍해졌다. 나와 그 날 같은 강의를 들을 예정이던 베프는 내가 응급실에 간다는 소식을 접하고 고맙게도 함께 강의를 건너뛰고 응급실로 동행해 주었다. 응급실은 버스로 20분 거리였는데, 크게 멀진 않았지만 버스가 흔들릴 때마다 배가 아파 죽을 지경이었다. 


어찌저찌 도착한 대학병원 응급실은 그야말로 포화 상태. 참고로 영국인 친구들의 조언에 따르면, 응급실은 늘 사람이 많기 때문에 기본 서너 시간은 대기해야 의사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겨우 도착 직후 진통제를 복용하고, 체념한 채로 순서를 기다렸다. 참고로 응급실 쪽에서 환자 장본인을 제외한 보호자들을 모두 내쫓았기에, 베프는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이때부터 혼자 응급실에서 대기했는데, 이때까진 내가 얼마나 오래 있을지 몰랐기에 별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한 시간 반쯤 지났을까, 드디어 내 이름이 호명되고 피검사를 받았다. 채취할 샘플이 많다며 굵은 바늘에 통을 여러 차례 바꿔가며 피를 뽑았는데, 피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또 무한 대기하란다. 그 와중에도 내가 급성 맹장염 소견으로 온 거라 빨리 진료를 보는 편이라는 말은 덤이었다. 하지만 빨리 진료를 보는 거라는 말이 무색하게, 나는 피검사 이후로 3시간 가량을 수액을 맞으며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피검사 결과를 듣기도 전에 갑자기 CT까지 찍었다. 솔직히 이때부터 조금 무섭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늘 부모님과 함께 응급실을 왔었고, 아픈 것도 서러운데 혼자서 혼잡한 외국 응급실에서 기약 없이 대기한다는 그 상황 자체가 공포로 다가왔다. 여기에 만약 급성 맹장염이 맞아서 수술해야 한다고 하면? 학교는 어떻게 가고 언제 회복해? 모든 게 불확실했다. 내가 응급실에 있는 것을 알고 있는 소수의 친구들은 최대한 꾸준히 문자를 보내어 나를 안심시켰지만,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다. 애초에 '수술'이라는 단어는 근육 수술을 받던 초등학교 1학년 이후로 내 사전에 존재하지 않는 단어였고, 타국에서 보호자 없이 수술을 받는 건 더더욱 상상해 본 적 없었다.


그 와중에도 부모님께 이걸 알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엄청 고민했었다. 한국과 영국은 9시간 시차가 나기에, 차라리 이 모든 게 다 빨리 끝나 버려서 부모님께서 한국에서 일어나실 때쯤이면 아무것도 없던 것처럼 말씀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수술 가능성이 대두되던 순간, 나는 죄송한 마음으로 폭탄선언을 해야만 했다. 어차피 당일 수술을 한다고 해도 한국에서 런던을 오려면 최소 14시간 동안 비행해야 하니, 수술실에 혼자 들어가야 할 터이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술한 직후에 혼자 회복할 자신은 없었다 (참고로 영국의 응급실에는 수술 이후에 계속해서 입원해 있을 만한 병동이 한국만큼 많지 않다.) 참고로 나중에 들은 바로는, 부모님께서도 내가 수술할 것을 대비해 급히 런던행 비행기 표를 알아보고 계셨다고 한다.


오후 4시 즈음 응급실에 도착했는데, 그 다음 날 오전 12시 반이 넘어서야 피검사와 CT 결과를 알 수 있었다. 너무나 다행히 피검사와 CT 모두 정상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놀랍게도 A&E는 나에게 돈을 단 한 푼도 청구하지 않았다. 아무리 수술을 안했다지만 이것저것 검사했기에 검사비는 낼 줄 알았는데! (한국에서는 큰 수술을 받는 게 아니어도 응급실에서 진료를 받으면 당연히 진료비를 청구하니까) 학생 비자 받을 때 의료보험 들어놔서 그런가? 


손등에 꽂혀 있던 바늘까지 다 빼고 나니 한 시가 훨씬 넘었고, 버스는 이미 끊긴지 한참이었다. 간신히 기숙사 근처까지 심야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새벽 두 시가 되어서야 기숙사에 도착했다. 그리고... 영국은 한국만큼 치안이 좋은 국가가 아니니 어지간해서는 심야 버스는 타지 말자. 제아무리 아는 길이라 할지라도 무섭다. 마약에 취한 사람들이 비틀거리면서 걸어다니는 걸 눈앞에서 볼 수 있다.



여기서 내가 얻은 건 세 가지이다.

1) 정말 심하게 아플 때는 무조건 GP부터 가자. GP가 보기에도 증상이 심각하다면 바로 응급실이나 전문 병원으로 인계해 줄 수 있고, 유학생들은 학생 건강 보험을 들고 영국에 입국한 것이기 때문에 수술하거나 비급여 진료를 받는 게 아니라면 무료로 검진해 준다. 물론 여느 응급실이 그렇듯, 포화 상태 + 온갖 고성에 시달리는 건 당연지사이니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2) 정신 건강 잘 챙기자. 나는 다행히 급성 맹장염이 아니었지만, 이렇게 심하게 복통이 온 데에 있어 스트레스의 영향이 컸다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2학기 개강 이후로 매 주 에세이를 제출하고 있었고, 외교관후보자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불어 공부 + 2차 시험 과목을 위한 단권화 작업을 학업과 병행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그 다음 주 수업 준비만 과목별로 다 끝내놔도 생산적인 일주일이었다고 자부할 수 있었는데, 외교관이라는 일에 가치를 느끼기 시작한 뒤로 학업은 기본이고 시험 준비까지 해야 해서 늘 시간이 부족했다. 그러나 내가 죽을 듯이 준비해 보자는 각오로 시작한 일이었기에 책임져야 했고, 그로 인한 부담은 오롯이 혼자 견뎌야 했다. 번아웃이 오기 직전에 몸이 먼저 아팠던 것 같다.


3) 몸의 신호를 잘 알아차리자. 만약 내가 새벽에 처음 복통을 느꼈을 때부터 바로 진료를 보았다면 어땠을까? 정말 증세가 심해지고 나서야 급하게 GP를 방문하다 보니, 오후부터 새벽까지 나의 생체 리듬이 망가졌고 나는 놓친 강의 내용을 따라잡느라 추가적으로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아무리 별 거 아니어 보이는 증상이어도 가볍게 여기지 말자. 나중에 더 큰 병으로 돌아와 고생하는 것보다, 건강염려증을 가지고 있는 게 훨씬 낫다.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기에, 유학 생활을 하는 동안 크게 아플 수도 있다. 이때를 대비해 미리 해당 국가에서 구급차를 부를 수 있는 emergency number 등을 잘 알아놓고, 어렵겠지만 최대한 침착해야 한다. 특히 응급실에 가면 의료진에게 경우에 따라 여러 차례 증상을 설명해야 하기 때문에, 무조건 고통만 호소하는 것보다 정확하게 상황을 이야기하는 게 결과적으로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지름길이다. 그런 의미에서 혹시라도 본인이 의심되는 질병이 있다면, 영어로 그 단어를 검색해 익히자. 그냥 복통이 있다고 하는 것보다, 맹장염이 의심된다고 이야기하는 편이 의사들 쪽에서도 더 신속하고 정확하게 대처해 줄 수 있다. 물론 아프지 않는 게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타지에서 아플 때 너무 당황하지 않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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