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 자취, 복학, 그리고 깨달음.
타지에 있는 내 가족의 역할을 대신 자처하여 불안정하고 결함투성이인 나를 조건 없이 아껴준 나의 친인척들을 직접 찾아가 버스킹 공연을 보여드리기도 했고, 테마를 정하고 내 몸뚱이만 한 배낭을 멘 채 뒤뚱대며 잡지에 소개된 장소를 직접 찾아가는 여행도 해 보았다.
정말 많은 것들을 했다. 그리고 이 한국에서 다닌 여행의 파편들은 여전히 내 가슴속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추억으로 구석구석 흩어진 채 시간을 한 겹씩 쌓아가고 있다.
2023년 7월 30일 일요일
제대를 마치고 시작한 1월의 한국 자취 여정이 7월의 끝자락에 다다라서야 끝이 났다. 군인의 본분과 자취생의 (혹은 나그네의) 본분을 다했으니 이제 복학생으로서 학생의 본분을 다할 차례였다. 잠시 접어두었던 미국 생활을 다시 펼치려니 어딘가 모르게 막막한 기분이 살짝 들었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할 수 있는 것들, 하고 싶었던 것들은 다 하고 미련 없이 떠나는 것인지라 새롭게 다시 시작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아직까지도 여행의 흥분에서 가라앉지 못했던 이유였을지, 아니면 담담한척하는 나의 모습에 묻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불안함이었을지, 아리송한 기분에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하며 한국의 마지막 열대야를 뒤집어쓴 채 시간이 흘렀다.
다음날 아침. 전날과 다름없이 담담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어젯밤 미리 싸 두었던 짐들을 온몸에 칭칭 감은채 인천공항에 도착한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무리 미련 없이 한국생활을 하고 떠나는 거라지만, 조금의 아쉬움이 남아야 정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쉬움이 남지 않아 스스로에게 아쉬울 정도였다. 순조롭게 출국수속을 밟고 게이트를 찾아가 마지막 신원확인을 마치고 미리 골라둔 좌석을 찾아 털썩 앉는다. 창 밖으로 날카로운 비행기 날개가 햇빛을 받으며 굳건히 엔진이 가동되기를 기다리고 있는다. 공허한 열한 시간 남짓의 비행을 채워줄 영화가 있는지 신중하게 골라놓는다. 좌석 위 천장에서 안전띠 착용 신호 불빛이 켜지고, 비행은 시작된다. 육지에서 멀어지면서 한국의 실루엣이 점차 한눈에 들어온다. 정신없이 움직이는 자동차들이 점점 멀어지고, 여행을 다니며 남긴 나의 흔적이 담겨있을 지역들은 점차 하나가 되어 멀어지고, 까마득히 높은 상공에서 나는 내 인생의 다음 여정을 시작하기 위해 멀리 떠나게 되었다.
2023년 8월 26일 토요일
가을 학기 시작 이틀 전. 우리 가족은 서부에 살고 내가 다니는 학교는 동부에 있다. 체감상 다른 나라로 가는 기분이다. 그렇게 또다시 한번 출국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리고 역시나 감정의 동요 따윈 없었다. 한국에서 미국에 올 때처럼 무덤덤한 기분으로 출국장에 들어선다. 가족들의 배웅을 뒤로하고 수속을 밟던 그 당시 나는 한국에서 산전수전을 겪으며 내가 더 강해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일상의 변화에 덜 민감하게 접근하고 차가운 현실의 냉기를 견뎌낼 줄 아는 성인이 되는 길목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날이 결국 올 줄 알고 있었고 그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국에서 군 복무로 휴학을 하고 다시 복학을 하는 경우는 한국 유학생들을 제외하면 거의 없었기에 스스로가 많이 어색할 것이라는 것과 나와 함께 열정을 키우던 전의 대학 동기들은 다 졸업하고 각자의 삶을 추구하러 떠나 없기에 홀로 외로울 것이라는 것, 그리고 그래도 괜찮다는 것은 복학하기 오래전부터 명심하던 부분이었다. 적절한 심리적 준비태세를 갖추고 학교에 도착한다.
그렇게 학기가 시작되고,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예상과는 달리 나는 생각보다 적응하는 데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나의 다짐들과 준비는 미국 대학의 현실이라는 높디높은 파도를 막기에는 너무나도 초라한 방파제에 불과했다. 나의 하루는 조금씩 넘쳐흐르는 현실에 침수되었고, 더 이상 감내할 수 없을 만큼 수위가 높아지면 감정에 모든 걸 맡긴 채 힘없이 무너져 내리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무엇이 나를 그토록 힘들게 했는가 묻는다면 그건 바로 고독이었다.
고독과 외로움의 정의는 내게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그 차이점은 나의 일상에 얼마나 많은 익숙함이 존재하는지에 따라 갈리게 된다.
서울에서 자취를 하며 겪은 외로움은 표면적이었다. 한국 주변 정서에 길들여진 나의 내면이 그 외로움의 일정 부분을 상쇄시켜 주었기 때문이었으리라. 한국은 내가 나고 자란 장소이자 나라는 존재를 정의 내릴 때 빠질 수 없는 필수불가결한 장소이다. 거리에 나오면 코끝을 강하게 자극하는 매연냄새가 건강에는 나쁠지언정 내가 본토에 발을 디디고 있다는 것을 각인시켜 주는 가장 첫 번째 요소이다. 정신없이 즐비한 간판들, 연기를 풀풀 풍기며 온 동네방네 요리되고 있는 음식을 냄새로 광고하는 구석구석에 위치한 좌식 음식점들,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며 곁에서 재잘대는 남학생들의 유치한 농담,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서너 시간만 투자하면 만날 수 있는 내게 소중한 사람들의 얼굴들이 이 외로움이 내 안 깊숙이 번지지 않도록 일종의 면역 체제를 구성하여 주고 있었다. 수많은 공간적 요소들이 내게 심리적 안정감을 부여해 주었고, 그러한 외부 요소들의 도움으로 나의 결함을 여실히 드러내지 않고도 무사히 삶을 살아낼 수 있었다.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며 겪는 고독은 지독하게도 깊숙한 나의 내면 속에 자리한다. 복학한 내게 익숙한 것이라고는 판데믹으로 고작 한 학기 반동안 지냈던 교정이 전부였다. 나의 학교생활을 규정하는 크고 작은 모든 부분들이 하나같이 다 내게 익숙하지 않은 것들 뿐이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대학에 입학하기 전부터 익숙함에 둘러싸인 채였었다.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동창들과 입학 첫날부터 밤늦게 놀러 다니며 새로운 교정을 익숙한 일상으로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익숙해진 교정을 익숙한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익숙한 대학생활을 보내는 것에 익숙해졌었다. 원격 수업 1년, 군복무 1년 반, 한국에서의 자취 반년까지.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찾은 교정 내 공간은 익숙했으나 공간의 구성원들과 그 사이 나의 위치는 무엇 하나 익숙한 부분이 없었다. 언어라는 수단은 같았으나 그 언어가 담는 내용과 의미는 너무나도 달랐다.
나 스스로와 외부 구성 요소들 간의 괴리감이 해소되지 않자 좁힐 수 없는 간극은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삶의 거리를 늘려나가기 시작했다. 감당하기에는 벅찬 속도로 멀어져 가는 익숙함을 향한 삶의 여정은 나를 곧잘 멈춰 서게 만들었고,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기를 멈출 때마다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에 휩싸여 먹구름 속에서 방향을 잃은 채 하루를 무의미하게 흘려보내기도 했다. 나는 준비되었고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안정적인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믿음이 컸던 만큼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 또한 컸다. 나는 여러 가지 방면으로 나 스스로의 잠재성에 못 미치는 사람이 되어갔고 그 압박감에 증폭되어 가는 불안함이 나를 앞만 보고 달리게 만들었다.
2023년 11월 5일 일요일
글을 쓰지 않은지 시간이 꽤 흘렀다는 걸 새삼 다시 느꼈던 건 가을학기가 어느덧 막바지를 향해 가까워져 가는 11월, 오늘 저녁이었다. 저번주, 그리고 그 저번주와 다를 것 없이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시간을 허비하고 잃어버린 시간을 다시 되찾고자 보다 생산적인 일을 하기로 마음먹고 책을 집어 들고 읽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외부적 요인에서 익숙함을 찾을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 익숙해지는 것이 해답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를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아닌 내 주변 환경이 내게 맞춰진 익숙한 환경이 되고 나서야 나 역시도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매우 수동적인 전제를 지니고 있었기에 뒤따르는 나의 생각들과 결정들 또한 외부 의존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나는 왜 자꾸만 고독함을 이겨내지 못하고 하릴없이 시간만 낭비하는지 묻는 것은 문제의 본질에 다가가지 못하는 표면적인 질문이었다. 내가 정말 물었어야 하는 질문은 "나는 왜 주변의 익숙함을 필요로 하는가"였다. 생각의 방향을 달리하여 "나는 주변의 익숙함을 필요로 한다"를 "나는 스스로의 익숙함을 필요로 한다"로 바꾸어도 말이 된다. 삶을 살면서 외부 환경은 변화할 수밖에 없다. 적어도 내가 선택한 인생의 특징은 그러하다. 따라서 변화하는 외부 환경을 내 성향에 맞추어 익숙하게 변화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나의 고독함을 해소하기 위해 다른 문화와 언어를 구사하는 공간에서 구수한 사투리와 뜨끈한 국밥을 말아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법이다. 따라서 익숙함을 추구하는 대상을 외부 환경에서 나 자신으로 바꾸기만 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언제든 어디라도 나의 마음에 드는 스스로가 존재하고 있다면 변화로 인해 골치를 앓는 경우는 사라지게 된다.
쉽게 말해 나에게 익숙해지는 순간, 익숙함의 부재로 인해 고통받을 일은 사라지게 된다.
그런 이유에서 적응이란 혼자여도 괜찮을 때 발생할 수 있게 된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느 부분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떻게 행동하기를 원하는지 귀 기울이는 것이 첫 번째 단계일 것이다. 말이 쉽지 행동으로 옮기는 건 꽤나 어려울 테다. 하지만 깨닫게 된 것만으로도 나는 감사하다. 미국에 산지 6년 반이 되어 간다. 누군가의 기준에서 보면 나는 실패한 미국 생활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직도 적응하느라 쩔쩔매고 있는 모습이 부끄럽다면 부끄러울 수 있다. 하지만 내게 실패는 6년 반 살아놓고서도 적응하는데 힘겨워하는 나의 모습이 아니라, 타인이 결정짓는 실패의 기준에 스스로를 부합시키는 것이 실패다. 따라서 지금 내 삶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소모하는 시간과 노력은 낭비가 아니다.
글을 쓴다는 행위는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삶의 특정 부분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잘 보여주는 유용한 도구 같다. 그래서 앞으로는 꾸준히 다시 글을 써볼 계획이다. 그게 영어가 되었든 한글이 되었든, 내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니는 온갖 생각구름들을 고체화시키는 과정을 통해 나에게 익숙해지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