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가족.
나에게 집은 무슨 의미일까?
태어나서부터 한 장소에서 긴 시간을 머물러 본 적이 없는 나는 완벽하게 혼자가 되고 나서야 이런 근본적인 질문을 슬금슬금 하게 된다. 모두가 당연하게 여기기에 충분한 시간을 들여 생각해 볼 가치조차 남아있지 않는 것들. 집도 그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나 또한 살아오면서 ‘집은 나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날 잡고 앉아서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럴 여유도 없었고, 집은 그냥 집이라는 식으로 상식선에서 생각의 새싹을 잘라내 버리고는 했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마음먹고 2017년 산 맥북 앞에서 격렬하게 타이핑을 하게 된 이유는 군생활의 영향이 컸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한 사람에서 나라를 지킨다는 명목 하에 정신개조를 강요하는 집단의 구성원으로 변화되어 가는 과정을 스스로 느끼며 예전 그 평범한 삶(이지만 자유롭던 시간)을 살아가던 나 자신을 제 3자의 시선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나의 삶이 그다지 평범하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그리고 군생활을 하던 그 순간조차도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열네 살이 되던 해의 끝자락, 11월 21일에 처음 미국으로 이주했던 것을 시작으로 삼 년 이상을 한 곳에 머물렀던 적이 없었다. 보통 두 해가 지나면 자의든 타의든 새로운 환경에 놓여 있었다.
그때마다 내겐 항상 집이 있었다. 그 집엔 나와 피를 나눈 가족들이 항상 존재했다.
난 그들을 그 누구보다 더 잘 안다. 나의 인간관계 망에서 가장 두텁고 믿을만한 매듭이다.
가장 잘 알기에 가장 익숙한 타인이다. 그러한 익숙함은 내가 그들을 직접 보든, 보지 못하든, 같은 공간 속에서 가장 믿을만한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익숙함은 사람을 넘어 공간에 깃든다. 가장 믿을만한 사람들이 사는 공간이 가장 믿을만한 공간이다.
가장 믿을만한 공간에 있을 때 나는 편안하다. 몸도 마음도 편안할 때 나는 집에 있다고 느낀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가족이 있는 곳이 곧 나의 집이 되는 것이다.
‘집 = 가족이 있는 공간’이란 삶의 공식은 군 입대를 한 뒤에도 적용되었다. 그곳엔 나와 똑같은 헤어 스타일을 하고 똑같은 목적을 추구하며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일을 하는 동년배 남성들이 전부다. 그들은 나와 함께 삶을 공유한다.
밥 먹는 시간, 일하는 시간, 씻는 시간, 자는 시간 모두 나의 생활 패턴과 겹쳐있다. 이러니 동질감을 느끼지 않으래야 않을 수가 없다. 겉모습부터 하는 행동까지 나와 비슷한 사람과 온갖 추위와 더위를 함께 헤쳐나가다 보면 어느샌가 그들에게 익숙해져 있다. 그들을 점점 더 믿게 된다.
꼬박 18개월을 함께 하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 그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 익숙해지면서 동질감을 느끼고, 점차 그들을 가족과 혼동하기 시작한다. 그들을 가족만큼 알 수는 없지만 그만큼 안다는 듯한 착각을 할 수는 있다. 전체적인 생활 패턴부터 먹는 음식의 종류와 입는 옷의 색깔까지, 타인의 크고 작은 모든 삶의 부분들이 내 삶과 평행하게 정렬되는 경험을 하는 순간, 그들을 가족만큼이나 믿게 된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혀 모르고 살던 사람들이 갑자기 나의 것과 거의 똑같이 닮아있는 삶을 산다고 생각해 보아라. 그리고 내가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은 전부 나와 비슷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가족과 공유하는 시간보다 생판 모르던 사람과 공유하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 상태로 일 년 육 개월을 제한된 공간에서 보낸다. 충분히 착각할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나는 착각하기 시작했다.
함께 생활하는 전우들을 가장 믿었고, 그들과 삶을 공유하는 것이 익숙했다. 따라서 그들과 함께 생활하는 생활관은 내 집처럼 느껴졌다. 휴가를 나가는 것이 여행을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미국으로 휴가를 나간 첫날, 약 서른 시간이 걸려 집에 도착한 뒤에 반가운 가족들과의 재회를 기억한다. 그들이 조금 낯설게 느껴졌지만, 예전의 익숙한 상호작용을 몇 번 반복하자 그들을 향한 믿음 또한 쉽게 되살아 났다. 하지만 집에 왔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집 안 구조도 다 알고, 모든 게 예전 그대로임에도 굉장히 익숙한 여인숙을 찾은 듯한 기분이었다. 나 역시도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시차 적응과 첫 휴가임을 핑계로 가슴 한편에 싸늘하게 남아있는 낯선 감정을 외면했다. 하지만 두 번째도, 세 번째도 가족들과의 만남은 반가웠으나 그 낯섦은 지워지지 않고 내 가슴에 남아 나를 살살 괴롭혔다. 그렇게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세 번째도 휴가 복귀를 할 때면 내가 있어야 할 곳에 되돌아온 것 같은 안도감에 젖어들었다. 그땐 별 생각이 없었다. 집에 왔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지금 되돌아보면 그 당시 내 머리는 드디어 집에 왔다는 생각으로 가득했었다.
군대를 향한 나의 이런 특이한 애증은 아마 쉴 틈 없이 바뀌던 환경의 영향이 매우 컸을 것이다. 외국에서의 내 삶은 이주의 연속이었고, 그때마다 집은 바뀌었다. 하지만 사람은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군대에서는 사람과 공간, 내게 있어 집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요소가 모두 바뀌었다. 전혀 다른 사람과 매우 생소한 공간에 익숙해지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다 보니 그곳을 내 집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공존하며 익숙해지는 과정이 내가 태어나서 가족들과 익숙해지는 과정과 닮아있다. 이렇게 보면 그곳에서 나는 새롭게 태어났다고 봐도 되겠다. 결국 나에게 있어 집은 ‘가장 익숙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가장 편안한 공간’이 되는 것 같다. 확신할 수는 없다. 내가 군대를 집처럼 여기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처럼.
내게 집이란 이렇게나 복잡한 의미를 가진다. 이 글을 읽은 그대에게 집은 어떤 공간인가? 스스로를 담아내는 가장 가까운 장소인만큼 그에 관해 조금만 깊게 생각을 해보면 몰랐던 자신에 대해서 알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당연하고 흔한 요소인 만큼 수수께끼처럼 얽힌 인생을 조금 느슨하게 해 줄 실마리를 제공할 만큼의 관계성을 지닌다. 그렇기 나와 그대들은 더더욱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당연한 것들이 우리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당연함 뒤에는 문제투성이인 우리 삶을 대하는 자세가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