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를 볼 때마다 슬퍼지는 이유
대한민국은 아파트가 정말 많다.
고속도로를 타고 국토를 세로질러 달리면 차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산 아니면 아파트다. 그러고 보면 아파트는 인간이 산을 흉내 내어 만든 인공산이라고 할 수 있겠다. 체력이 좋은 산짐승들은 높은 산 정상까지 도달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동물들은 산 중턱이나 밑자락에서 머물게 되는 것처럼, 아파트 입주민들은 개개인의 능력에 따라 산 중턱에 위치할 수도, 정상에 위치할 수도 있으니까. 인간은 여러모로 자연과 많이 닮아있다.
여튼간에, 눈부신 기술 발전의 부산물인 이 인공 산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요즘 들어 부쩍 감성적으로 변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아파트를 보면서 어떤 감정을 느낀 적이 없었다. 가끔씩 높은 곳에서 경치를 즐길 때 나의 시선을 거슬리게 하는 장애물 정도로밖에 취급했던 기억뿐이다.
때는 서울에서 자취를 시작한 지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았을 시점이다.
서울에는 여느 나라의 대도시들과 비슷하게 공공 자전거 대여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따릉이’라 불리는 이 앙증맞은 자전거들은 서울의 행정구역 구석구석 위치해 있어 쉽고 빠르게 서울 지역을 돌아다닐 수 있다. 싸고 편리한 이 교통수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야심 차게 6개월 이용권을 끊어 사용 중이던 나는 여느 때처럼 쾌활하게 페달을 밟던 중이었다.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는데, 해는 진즉에 수평선 너머로 넘어가고 난 뒤였다. 아마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을 거다. 서울 생활을 시작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주변 풍경이 아직 익숙지 않았을 때였다.
최대한 빨리 익숙해지려 여기저기 분주하게 주변 풍경을 눈에 담아두고 있던 중, 10층정도 되어 보이는 아담한 크기의 아파트 단지가 눈에 들어왔다. 다른 아파트들과 별반 다를 것 없던, 측면에 칠해진 페인트가 시간의 흐름을 말해주려는 듯 군데군데 벗겨져 있던, 흔한 구식 아파트였다. 입면에는 수많은 창문들이 보였고, 듬성듬성 땅거미가 깔린 집 안을 밝히려 켠 불빛을 받아 달처럼 몽롱하게 빛나는 창문들이 보였다. 평소 같았으면 쓱 훑고 금방 시선을 다른 사물로 옮겼어야 할 내가 전방을 주시하는 것도 잊고 거실불이 밝히는 거실 창문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렇게 약 3초가량을 (자전거 타는 사람이 3초간 다른 곳을 바라본다는 건 꽤 위험한 짓이다) 그 창문들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거둔 채 내 속에서 일렁이는 무언가를 가만히 느끼고만 있었다.
외로움이었다.
머릿속의 상상 영사기가 틀어지고 있었다. 스크린에는 어릴 적의 내가 있었다.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광장에서 날이 어두워 공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아 경기 진행이 어려울 때까지 남아 끝까지 축구를 하던 내가 친구들을 보내고 집으로 향하는 장면이 상영되고 있었다.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집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른다. 비밀번호를 맞게 입력하자 도어록에서 익숙한 벨소리가 들려오며 잠금이 해제된다. 문을 열자마자 아무렇게 널브러져 있는 수켤레의 신발들이 보이고, 분주한 주방에서 풍겨오는 낯익은 냄새, 저녁식사다. 백색소음과도 같던 16개의 어린 손과 발들이 만들어내는 정겨운 불협화음. 다른 신발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내 신발도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채 내겐 너무나도 익숙한 가족들이 있는 공간으로 당연하다는 듯 터벅터벅 걸어가면서 영사기는 돌아가기를 멈춘다.
찰나였다. 하지만 생생했다. 강렬한 꿈을 꾸다 잠에서 깬 듯, 나는 그 짧은 순간동안 그곳에 존재했다.
영사기가 비추던, 돌아갈 수 없는 나만의 옛 공간. 시공간을 관제하는 신이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고 엄지와 검지로 나만 골라 집어서 과거의 기억에 살짝 담갔다가 원위치해놓은 기분이었다. 뒤따르는 감정은 이 비유보다 훨씬 더 복잡 미묘했다. 맨 먼저 몽글몽글한 그리움이 잔잔하게 밀려오다가, 질펀한 답답함이 가슴 한쪽을 콱 막히게 하다가, 뾰족한 아쉬움이 마음 이곳저곳을 쿡쿡 찔러대다가, 결국 외로움이 모든 걸 휩쓸고 잠식시켜 버리는 연쇄적인 감정이 들었던 것 같다.
그날 이후로 아파트가 계속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화창한 낮이던, 어두컴컴한 저녁이던, 시선은 잠시지만 그곳에 여전히 머물렀다. 그러면서 아파트 속, 내가 그리워하는 분위기를 일상처럼 여기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리곤 상상했다. 내 안의 상상 영사기에 비슷한 장르의 영화 필름들을 계속 갈아 끼우듯, 다른 아파트를 볼 때마다 내 기억의 전개와 비슷한 장면을 연출하고서는 그 존재하지도 않는 상상 속에 존재하기를 갈구했다.
왜?
하루 일과가 끝나고 돌아와 보면 착 가라앉은 공기가 가득한 내 자취방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현실에서는 얻을 수 없는 건 상상 속에서 찾으면 되었으니까.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홀로 살아가는 생활이 점차 익숙해지면서 상상 영사기 또한 상영이 뜸해졌다. 아파트들도 더 이상 내 눈길을 잡아끌지 못했다. 과격한 외로움이 요란하게 쓸고 간 마음 군데군데에 떨어진 감정의 잔해들을 줍고 정리하기 시작했다. 혼자 살기로 결심한 건 내 결정이었고, 나는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질 필요가 있었다. 감정에 휘둘리게 날 놔두는 행동은 곧 나 자신에게 무책임한 행동이었다. 나는 “잠깐” 자취 생활에 실패했을 뿐, 다시 그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면 되었다. 실패를 겪는 과정은 어려웠지만, 해결책을 적용하는 건 쉬웠다. 단순하게 책임을 진다고 마음먹는 것과 나를 향한 아주 조금의 동정심. 그 정도면 혼자 삶을 살아가기에 충분했다.
글을 쓰게 되면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뿐만이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내가 무엇을 얻어내었는지 쓰지 않았을 때 보다 정리가 훨씬 잘 된다. 그래서 난 지금 매우 만족스럽다. 더욱이 내가 독립하는 이들의 감정을 어느 정도 대변했다면, 그리고 나도 그랬듯이 이렇게 느끼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며 그들을 변호해 줬다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아주 만족스러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