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on Nov 18. 2022

생각하는 능력을 상실한 호모사피엔스

어쩌면 우리는 다른 종으로 변해가는 것일지 모른다.

호모사피엔스, 생각하는 사람


호모 사피엔스의 사전적 의미는 ‘생각하는 사람’으로 인간의 본질이 이성적인 사고에 있고, 이로 인해 다른 종들과 구분된다는 인간관에서 유래된 단어이다. 그러나, 우리는 생각하는 능력을 상실한 시대에 살고 있는 듯하다. 호모 사피엔스에게 사고능력의 상실이란, 곧 존재 의미의 상실을 의미한다.


여기서의 사고능력이란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삶이 누구에게나 제각각 다른 길이로 단 한 번만 주어진다는 점에서, 어쩌면 존재의 이유와 방향성에 대한 사유는 생각보다 가치 있을 법도 한데, 이러한 고민이 이제는 시간낭비가 되어버린 시대가 온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얼마 전 모교 교수님의 요청으로 후배들에게 진로 상담 특강을 한 적이 있다.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부분의 학생이 가고 싶은 회사나 기관, 혹은 직종을 말했다. “꿈은 명사가 아닌 동사여야 한다”라는 모 역사학자의 말이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우리에게 있어 꿈은 특정한 ‘상태’에 고정되어서는 안 된다. 그 순간 우리는 방향성을 상실하게 된다.


그보다는 우리의 삶이 방향성을 가진 힘, 벡터와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언제부터 이 시대의 청년들은 누가 정해놓은 듯 6334의 교육과정을 거쳐야만 하게 되었고, 또 누가 정해놓은 듯 모두가 비슷해 보이는 취업 공부를 하게 되었고, 또 모두가 삶의 주체가 되지 못한 채 그저 살아가기 위해 평생을 일하게 되었을까?


원론적인 질문으로 돌아가면, 우리 사회가 창의적인 사람이 아닌 순응하는 인간을 원하기 때문이다. 사회가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이 존재하고, 그러한 사람들로 우리자신을 길러내기 위해 어릴 적부터 우리는 무비판적으로 교육을 받는다. 교육의 종착점은 대입 수학능력시험이다. 다양한 과목을 공부하지만 그 이유를 알고 공부하는 사람은 없다. 대입 시험 성적에 맞추어 학교를 들어가게 된다. 대학을 졸업할 때쯤이면 취업을 위해 또다시 정형화된 시험을 준비한다. 그리고 직업을 갖게 된다. 초중고등 교육과 대학의 전공은 이어지지 않을뿐더러, 대학의 전공과 자신의 직업도 연속성을 갖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생각할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무비판적으로 습득하는 과정에서 존재의 이유에 대한 사고는 시간 낭비가 되어버린 셈이다.


사고의 틀이 결정되는 기간에 우리가 다니던 학교는 대입을 위한 중계소로, 지성의 요람이라 불리는 대학은 취업 중계소로 변해왔다. 타인과 사회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해야 할 직장 안에서 자신의 의미를 찾고자 노력했을 때는 이미 많이 늦은 듯 한 느낌이다.


생각을 잃어버린, 생각하는 힘을 상실한 호모 사피엔스.

어쩌면 우리는 전혀 다른 종으로 변해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헤어질 결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