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의 종착점은 여행의 출발점
기원전 4세기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유클리드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에게 기하학을 가르쳤다.
왕은 기하학이 너무 어려워 쉽게 배울 수 있는 방법을 물었고, 유클리드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세상에는 왕이 다니는 길(왕도)이 있지만, 기하학에는 왕도가 없습니다."
기나 긴 여정을 지나, 처음으로 돌아간듯한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나는 최근에 우리 가족 스포츠인 탁구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다.
중학교 시절부터 중고등부 선수들 틈바구니에서 탁구 훈련을 받았고,
지금까지도 매주에 한 번씩 탁구를 치고 있으니 올 해로 벌써 구력이 15년에 달한다.
비싼 돈 주고받기 어렵다는 선수 1:1 코칭을 받았음에도,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나보다 늦게 탁구를 시작했음에도 나보다 잘 치는 동생을 보며 나는 이 운동에 재능이 없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별다른 계기 없이 풀리지 않던 실타래들이 풀렸다.
누가 옆에서 자세를 교정해주지 않아도 스스로 자세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특별한 내용을 학습받은 것도 아닌데, 그동안 머리로만 알고 있었던 지식을 내 몸이 알아듣기 시작했다.
즉, 내가 탁구를 처음 시작했을 때 귀가 닳도록 들었던 그 말들이 모두 몸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분명히 (머리로는) 내가 알고 있던 내용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내용을 '온전히' 알기까지 무려 15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처럼 단순한 것을 알기까지 어쩜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싶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세상에 모든 것이 이와 비슷한 것 같다.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을 자신의 것이라 착각한다.
하지만, 지식은 휘발성이 강해 우리의 것으로 만들기까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즉, 지식은 머리로 아는 것을 넘어 몸이 아는 과정을 거쳤을 때 비로소 지혜가 된다.
그리고 머나먼 지식의 여정은 지혜가 되었을 때 비로소 처음 그 자리를 찾는다.
15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지만,
여정의 종착점은 여정의 출발점이었다.
학업과 본업을 이어가면서, 조급한 마음을 지식을 채우는 것으로 달래 왔다.
무언가 알아간다는 사실을 통해 마음의 위안을 얻었지만,
빠르게 휘발되는 지식으로 나 자신에 대한 자괴감도 커져갔다.
하지만, 이렇게 쌓아 올리는 인고의 시간들이 결국 지혜를 가져다 주리라 믿는다.
그리고, 내가 처음 심었던 그 자리에서 나를 조우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