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던피터슨 「12가지 인생의 법칙」- 제1장
최근 6박 8일의 일정으로 유럽 3개국(독일, 벨기에, 프랑스) 국외출장에 다녀왔다.
해외 출장은 고사하고, 해외여행 한번 주도적으로 다녀온 적이 없었기 때문에 준비단계부터 모든 것이 걱정 투성이었다.
항공편 예약, 숙소 예약, 방문 기관 컨텍, 면담일정 조율, 통역사 섭외, 사전 행정 절차, 경비 정산, 심지어 렌터카 예약과 운전까지 모든 것들이 내게는 그저 처음 경험하는 일들, 그러니까 불확실함 투성이었다. 앞서 언급한 단어 몇 자로 그간의 수고와 긴장을 설명하기에는 과정 하나하나에 들인 노력과 감정과 시간들이 엄청났다. 주말, 휴일 관계없이 하루종일 그 생각들로 머릿속이 가득했고 스트레스에 머리가 자주 아파 두통약을 들고 다녔다.
생각해 보면 비행기로 13시간 거리에 있는 먼 나라에서 이름도, 얼굴도 모를 한국인이 보낸 이메일에 무슨 관심이 있을까 싶어 낙담했던 순간들이 많았다. 이메일에만 의존하여 3개국 일정을 완벽하게 계획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게 느껴졌지만, 절박한 마음에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시도했다. 독일 땅을 밟기 직전까지 6박 8일간의 시뮬레이션을 머릿속으로 그려가며 혹여나 실수한 것은 없는지 계속 생각했고, 예상과 다른 이벤트가 생길까 봐 계속 맘 졸였다.
더욱이 함께 동행하던 정부기관 관계자가 매우 꼼꼼한 성격이라, 늘 업무의 디테일을 단점으로 생각하던 나는 그분과의 대화를 되도록 피하고 싶었고, 왠지 모르게 주눅 들어있었다.
정말 감사하게도 출장 일정은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함께 동행했던 사람들로부터도 업무 수행에 대해 호평을 받았다. 다시 한국 땅을 밟기 전까지 혼자 이 일정을 해냈다는 생각에 정말 나 스스로가 한 단계 성장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허나 휴식은커녕 그간 비워두었던 업무 공백들이 나를 맞이하였고, 귀국 당일부터 야근을 시작했다.
모든 프로젝트가 그렇듯 출장 뒤에는 늘 보고서가 따른다. 2주라는 짧은 기간 내에, 3개국의 7 기관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해야 했고, 고국에 귀국한 뒤에도 내 정신은 여전히 유럽에 머물러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출장보고서 말미에는 방문기관에서 찍은 사진들을 증빙하도록 되어 있다. 마지막 사진까지 삽입하고 나니 정말 출장의 큰 부분을 마무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쁜 마음에 가족 카톡방에 출장보고서를 올렸다. 관심과 칭찬을 바랐던 것은 아니지만, 큰아들 사회생활에 대한 생존신고를 하고 싶은 마음에서 보냈던 것 같다.
그날 저녁 어머니에게서 카톡이 왔다.
출장보고서를 정말 잘 썼다는 말과 함께, '내가 찍은 사진들을 보니 대체로 손을 모으고 어깨를 움츠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는 나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 것 같았다.
사회생활에서 나는 늘 겸손하고 어리숙해 보이기를 원했다. 누군가의 평가에 예민해서였는지 의견이 있어도 당당히 말하지 못했고,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와 같이 보이기를 원했다. 그래야만 사람들이 나에 대해 호감을 가질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겸손의 방법이라 생각했고, 윗사람들에게 이쁨 받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어머니께 이 얘기를 들은 날 나는 조던 피터슨의 책 「12가지 인생의 법칙」 중 제1장 '어깨를 펴고 똑바로 서라'를 읽고 있었다. 마치, 운명의 장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1장에서 저자는 바닷가재의 예시를 들며, 바닷가재뿐 아니라 모든 생물체에서 '서열 구조'는 사실상 절대적인 섭리임을 강조한다. 즉, 패자는 자신감을 완전히 잃어 그의 뇌 구조는 완전히 약자에 적합한 구조로 길들여지고, 승자는 더 많은 것들을 쟁취한다는 것이다(이를 두고 승자 효과, 프라이스의 법칙, 파레토 분포, 마태의 원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용어로 지칭하고 있다).
이에, 저자는 우리 보고 '몸을 똑바로 서라'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패배자의 자세를 하고 있으면 상대도 나를 패배자로 취급하고, 허리를 쭉 펴고 당당한 자세를 취하고 있으면 사람들 역시 나를 다르게 보고 그것에 맞게 대우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겉모습만 흉내 내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 존재 자체에 부여되는 부담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감내하라는 정신적인 자세를 함께 취하라는 것이다.
"어깨를 펴고 똑바로 선다는 것은 방주를 지어 홍수로부터 세상 사람들을 지키고, 폭정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이끌고 사막을 건너겠다는 의미다. 안락하고 편안한 집을 떠나겠다는 뜻이고, 옳은 것과 편한 것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십자가를 짊어지겠다는 의미다."
"좀 건방지고 위험한 인물로 보여도 괜찮다. 자세부터 반듯하게 바로 잡아야 한다. 당신이 찾은 삶의 의미는 죽음이라는 절망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출장 사진을 다시 봤다.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주눅 들어있는 내 모습은 그간의 복잡한 내 심경들을 잘 대변해주고 있었다. 이제는 조금 더 당당해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물론, 허영심이나 교만에서 나오는 당당함이 아니라, 자부심에서 나오는 당당함 말이다. 이를 위해서는 내 일에 정말 더 신중하고, 섬세하고, 관심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