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진짜 하루는 더딘데 1달은, 1년은 너무 훌쩍이지?
[엄마의 유산]에 에필로그로 '벌써 2024년이지?'라고 쓰고 또 훌쩍! 1년이 지났어.ㅠ.ㅠ
벌써 2025년이야!!!!!!!!!
2024든 2025든 숫자가 주는 의미보다
지난 1년이 역사속으로 사라졌다는,
그리고 그 기억들이 인식속에 똬리를 틀지 않기를 바라는 맘이 크단다.
새로운 가능성의 시간들 앞에서 이 무한의 가능성을 어떻게 다 가져다 쓰지? 설레기도 하고.
1년전, 2024를 시작하면서 엄마는 너희에게 '다짐'을 했었지...
* 아래의 다짐은 [엄마의 유산] 에필로그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첫째, 엄마는 엄마의 의지보다 더 강한 의지를 믿고 가려 해. 점점 나이가 들면서 발의 굳은 근육이 가던 길을 멈추게 하고 낡은 혀가 엄마를 부끄럽게 하기도 해. (중략) 너희들을 ‘어른’의 대열까지 키운 지금, 심리적으로 독립해야 할 대상은 너희뿐만 아니라 엄마도 그래.
그래서 엄마의 앞으로의 삶도 새로운 삶이어야 한단다. 새로운 길 위에서는 새로운 감각이 열려야 새로운 말과 새로운 걸음을 걸을 수 있겠지. (중략) 결코 지금 엄마의 머리 속, 경험 속에 없는, 엄마가 걷고자 하는 이 길은 길 자체가 지닌 본능으로 자신의 발현지인 우주의 중심을 향하겠지.(후략)
둘째, 호의가 칼이 될 수 있기에 착한 사람이길 포기하려 해. 너도 알다시피 엄마는 이것저것 퍼주기 좋아하고 관심과 배려라는 이름으로 간섭도 많고 그렇게 오지랖을 부리는 아줌마잖아. 그런데 공부를 하다 보니 배려가 오히려 상대의 성장을 방해하는 요인이더라구. 스스로 키워낼 수 있는 시점엔 엄마가 멈춰야 하는데 말이야.
그래서 이제 베푸는 손에서 오히려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단다. (중략) give and take 보다 give and give를 ‘사랑’이라 여겼던 엄마였는데 이같은 배려가 오히려 ‘지각있는 사랑’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면서 ‘피는 물보다 진해서 탈낸다! 엄마를 떠나렴!’을 너희에게 쓰게 되었지. 바람직한 어른이라면 부끄러움 안에서 희열을 느낄 줄 아는 어른이어야 하잖아. 뒤에 걷는 자가 항상 엄마보다 못하다면 그건 죄가 되지. 엄마를 계속 부끄럽게 만드는 이가 많을수록 엄마의 행복도 더 커져 갈거야. (후략)
셋째, 지금 엄마가 서있는 50이라는 나이를 ‘위대한 정오(주1)’로 만들어볼까 해. 엄마의 하루가 새벽 4시부터 시작된지는 오래야. 4시~오전, 8시간을 집중하면 남들이 보내는 하루를 오전만으로도 거의 다 보낸 셈이지. 그렇게 맞이하는 정오는 엄마에게 덤으로 주어진 또 다른 하루를 시작시키며 엄마를 긴장시킨단다.
또한, 50이라는 나이 역시 인생의 정오를 지나는 느낌이야. ‘덤’. 덤을 받는다는 것은 어떤 의무를 치른 자에게 선물같은 것이지? 제대로 물건값을 치른 사람에게, 풀코스를 주문하는 이에게 서비스가 나오는 것처럼. 엄마는 매일 정오에 제대로 새벽과 오전을 치른 것에 대한 덤으로 새로운 하루를 선물받아. 그렇게 매일 ‘위대한 정오’ 앞에 당당하고 싶고 앞으로도 그럴거야.
엄마에게 ‘위대한 정오’란 ‘자유’로 진입하는 문이야.
마음껏 사고하고 마음껏 쓰고 읽고 마음껏 일상을 누려도
전혀 게으르다거나 소모되는 느낌이 없는 정신의 자유를 누리는 시간.
새벽부터 오전이 의무의 시간이었다면
위대한 정오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시간부터는 권리를 누리는 시간이지.
(중략)
엄마의 일상에 위대한 정오를 더 단단하게 지키려 해. 그러기 위해 새벽~오전까지, 구속과 의무에는 타협하지 않아야겠지. 오후가 하늘 높이 연을 날리는 자유의 시간이라면 새벽~오전은 높이 날 수 있는 연을 만들기 위해 해야 할, 쌓아야 할, 알아야 할 것들에 집중하는 시간인 것이야. 그렇게 하루를 보내듯 지금의 50대를 ‘위대한 정오’로 보내면 100세 인생의 나머지 시간들은 자유롭게, 그래서 더 위대하게 만들어갈 수 있겠지.
넷째, 더 이상 시간을 부정하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 해. 시간이 없다고, 시간이 부족하다고, 시간때문에 못했다고, 내 나이가 그렇다고, 이제 그런 걸 할 나이가 아니라고... 시간핑계대면서 엄마의 한계 안에서 먹던 사탕만 먹으려는 충동이 아직 남아 있거든. 먹던 사탕에 싫증나는데도 자꾸만 편한 것만 찾고 핑계뒤에 숨곤 해. 그래서, 엄마는 새로운 사탕을 맛보라고 엄마를 이끄는 힘에 의지해 보려구. 그 힘은 엄마가 아는 엄마자신보다 엄마를 더 잘 알고 더 크게 쓰려고 엄마라는 사람을 통해 뭐든 시도하는 것 같아. 이러한 시도에 엄마는 시간과 관련된 모든 한계에서 벗어나 보려구.
참 다행인 것은 지금 엄마가 가는 길은 더 빨리 뛰어야 하는 길이 아니라 제대로만 걸으면 되는 길이란 사실이야. (중략) 속도나 사람경쟁없이 그저 묵묵히 걸으면 모두가 승리하는 그런 길. (중략)
그러니 시간타령하는 건 아주 꼴불견이지.
엄마가 꼴불견인 건 너도 싫지?
그래서는 안되겠지?
사실 시간이 데려가는 엄마의 길에서 신체는 제동에 걸릴 수밖에 없어. 유연하기보다 굳어지겠지. 하지만 마음과 정신은 나이와 함께 오히려 더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단다. 지금부터 걷는 길은 어쩌면 신체가 아닌, 정신과 마음의 유연함으로 걷는 길일거야.
노년은 갖가지 재악(災惡)이 정박하는 항구여서 모든 재악이 그곳으로 도망쳐 들어온대(주2). 엄마도 나이가 들수록 엄마의 항구로 쳐들어오는 것들이 많아지겠지? 인색, 비굴, 외면, 질병, 궁색, 관념, 아집, 단절... 정신과 마음의 유연함이 이들의 손을 뿌리치는 법을 알려주지 않을까? (후략)
다섯째, 이제 하나의 목표만을 남기려구. (중략) 네가 알다시피 매일 아침에 목표를 적는 것은 엄마에게 벌써 10여년을 넘긴 습관이 되어 있지. 그 노트만도 벌써... 몇권인지도 모르겠다. 그 속의 목표들은 하나같이 그 당시 엄마가 어떤 길을 걸었는지를 여실히 증명해 주고 있어. 이룬 것도, 이루지 못한 것도 많더구나. 말 그대로 백만개의 목표가 엄마를 지나쳤고 그 목표 앞에서 늘 도전하고 결과에 승복하며 젊은 인생을 걸어왔지.
그런데 이제 단 하나의 목표만을 남기려 해.
지금까지 수많은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고 열매 를 맺어왔어. 어떤 것은 시들기도, 어떤 것은 바람타고 꽃씨를 뿌리기도... 또 어떤 것은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하기도 어떤 것은 화려하지만 맛이 없기도... 그렇게 시도들이 가득했지.(중략)
그런데... 이제 아냐.
단 하나의 깊고 굵은, 단단한 뿌리를 내릴 때인 것 같아. (중략) 지난 열매들에 대한 아쉬움 떨치고 단 하나의 뿌리가 엄마인생이 펼칠 숲의 정기가 되어 모두를 품어준 토양에게 감사하고 양분 되어준 모든 열매의 가치를 상승시키도록 해야 할 것 같아.
그렇게 인생의 솟구치는 어떤 시점이, 지점이 엄마에게 주어진다면
그간 토양의 양분이 되어준 모든 것들이 비로소 가치를 갖겠지.
그렇게 모든 지나간 시간이 의미라는 제복을 제대로 갖춰 입겠지.
그렇게 모든 행위가 존재해야만 했던 이유를 찾겠지.
어디까지 솟구칠지는 엄마의 몫이 아니야.
엄마의 생은 그 ‘생’ 자체가 가진 목표대로 오를거야.
‘생은 스스로 기둥과 계단을 사용하여 자신을 높이 세우고자 한다. 생은 먼 곳을, 행복한 아름다움을 내다보고 싶어한다. 그러기 위해 생은 높이 오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중략) 생은 오르기를 원하며 오르면서 자신을 극복하기를 원한다.(주3)’
생은 생이 가는 길로 높이 솟으려 스스로를 극복해낼 것이고 엄마는 이런 생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그저 계속 뿌리를 내리는 것뿐. 나머지는 엄마를 이끄는 힘이 어딘가 마련해 놓은 엄마의 자리에 엄마를 데려다 놓을거야.
지금까지 넓게 펼쳤으니 높이 오를 수 있도록 이제 깊게 내려볼께.
엄마의 자리를 든든히 남겨 너의 대지에 필요한 존재가 되어볼께.
그렇게 엄마가 너의 대지에 닿는 날 더 가치있게 쓰일 양분이 되어볼께.
그렇게 가는 길목에서 덕(德)을 보태어 너의 인생에 소중한 디딤돌로 쓰여볼께.
그렇게 ‘사람이란 가치를 증명하는 존재’임을 보여줄께.
엄마가 2024를 시작하며 너희에게 다짐했던 글들을 찬찬히 다시 읽어봤는데..
엄마는 너희에게 다짐한대로... 하루하루를 그렇게 보내온 것 같아. 위대한 정오를 위해 새벽부터 오전까지 즙을 짜낸 시간들, 그리고 단 하나의 목표를 남기고 한방향으로 걷고 있는 길, '계승'이라는 거대한 가치를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모든 것을 내어놓고 모든 것을 함께 하려는 움직임까지...
그런데 아니? 이제는 태양마중에서 위대한 정오를 거쳐 태양배웅까지 이어지고 있단다!!! 하루를 그렇게 3조각으로 나눠서 사니까 분절이 연계되는 신기한 경험도 하고 뭔가 3배로 쌓이는 느낌도 들어!!!^^ 그러니 시간핑계를 대지 않고 사는, 너희에게 다짐한 것을 잘 지켜온 것 같아.
올해 2025년도 엄마는 이어갈거야.
너희들 덕분에 나약하고 부실한 엄마가 절뚝거리거나 기웃거리지 않고 하나의 방향으로 잘 걷고 있는 것 같거든. 아직 도착하지 못했어. 어디가 도착점인지도 잘 몰라. 그러나 어딘가로 향.하.는. 느낌이 있거든. 그래서 불파만지파참(주4)의 마음으로 뚜벅뚜벅 걸을거야. 너희들도 각자의 꿈을 향해 이렇게 멋지게 한해를 시작했는데 엄마도 엄마의 꿈을 향해... 계속 걸을거야. 올해도... 엄마를... 믿어주리라 믿는단다!!! 사랑해!!!
주1,3>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 2000, 책세상
*니체는 '위대한 정오'를 '사람이 짐승에서 위버멘쉬에 이르는 길 한가운데 와 있고,
저녁을 향한 그의 길을 최고의 희망을 찬미하는 때'라고 표현했다.
주2> 그리스철학자열전(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전양범역, 2008, 동서문화사) 비온편.
주4> 불파만지파참 : 느린 것을 두려워말고 멈추는 것을 두려워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