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깎다가 멈췄다.

by 지담

글을 쓰다가

또 멈췄다.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글을 깎아야 할 단계 앞에서

난 또 멈춘 것이다.


프리미엄 썸네일(작은) (86).png


부엌으로 뛰어가서 고구마 껍질을 깎는다.

깎는다. 는 느낌을

손끝으로 느껴본다.


수학을 아는 것과 삶을 거래하는 것.

이 문장에서 명사를 빼고 장면을 담아야 한다.


더하고 빼는 것은 알지만

어제보다 나은 오늘은 어렵다. 로 바꿨다.


더한 것은 끝내 덜어야 함은 알지만

어제 쥔 손은 펴지 못한다.로 또 바꿨다.


그리고 다시,

어제 쥔 손을 등 뒤로 감춘다.고 깎았다.


하지만,

아직 아니다.


고구마 껍질을 깎는 손은 섬세하다.

딱딱해서 잘 깎이지 않으니 손에 힘이 들어간다.

힘때문에 자꾸 속살이 따라 나온다.


다시 책상에 앉았다.

여전히 손에 힘이 남았는지

문장의 속살이 자꾸 패인다.

의미를 상실한 문장은

버려진다.


글만 살짝 깎아내야 하는데

의미까지 패이니...

문장을 잃을까 겁이 난

나는

또 멈췄다.


2026.03.19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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