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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Apr 07. 2023

당신의 신탁(神託)에
나감히 청탁드리오니

그들이 무덤으로 가는 길은 얼마나 아름다운 길인가!

그들은 얼마나 부드럽게 땅에 떨어져 바람에 구르다가 흙으로 돌아가는가!

수천의 색조로 치장하고 우리의 흙바닥을 살아 있는 것으로 만들기에 이보다 더 적합한 것은 없다.


가볍고 쾌활하게 낙엽들은 자신들의 무덤으로 떼를 지어 몰려간다. 

땅 위를 이리저리 즐겁게 뛰어다니며 숲 전체에 자신들의 이야기를 속삭이다가 적당한  무덤을 고른다. 

이제 얼마나 만족스럽게 자신의 몸을 낯추고 흙으로 돌아가는가! 


하늘에서 퍼덕거리던 때만큼이나 얼마나 기꺼이 나무 밑둥에 몸을 눕히고 썩어 새로운 세대를 위한 자양분을 제공하는가! 막 땅에 자신들의 너비만한 두께를 보태려 하고 있다. 

우리는 그것들의 부패로 더 부유해진다. 


자연이 낙엽들때문에 소란을 겪는 일은 없다. 

자연은 완전 무결한 농사꾼이다. 

자연은 그 모든 것들을 간수한다.

- 소로우의일기, p.214


소로우의 글은 소화가 벅차서, 감동이 넘쳐서, 이성이 마비되서 한장을 무겁게 넘기고는 다시 가벼워질 때 한장을 넘긴다. 속도가 무지 느리다. 몇년전 읽은 월든은 허투루 읽은 듯하다. 다시 읽어야 할 책이 산더미다. 


땅위에서 팔랑팔랑 신나게 한바탕 놀다가 자신의 적당한 무덤을 찾아 자신의 자양분을 땅으로 보내어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부'에 자신의 두께만큼을 보태며 생을 마감하는 낙엽. 이런 표현을 할 수 있는 소로우의 섬세한 감각과 자연에 대한 경외와 바닥에 닿아있는 겸손한 순종에 나는 더 바닥으로 나를 낮춘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아직 살아있는 파릇파릇한 나뭇잎을, 

그리고 이제 갓 고개내민 새싹들을 본다.

한참 본다. 

자세히 본다. 

그리고 사랑담아 말한다. 

너희들이 나보다 낫구나. 

어찌 이리 조용히, 가만히, 오랫동안 무지한 나를 위해 한결같이 여기에 있었느냐고 묻는다. 

고맙다는 말로는 모자라니 이를 어찌해야 좋겠냐고도 묻는다.


나는 죽을 날을 받아놓은 사람(생물학적 나이로만 50년 정도 전후에 죽겠지)이라 오래 전 유언장을 적어놓은 상태다. '유언'이라는 단어만으로도 딸아이는 순간 허겁댄다. 그럴 일이 아닌데 우리는 매사 단어의 노예가 되어 관념으로 대화에 벽을 만들지만 이내 벽을 문으로 바꿔주면 허겁은 이해로, 수용으로 변화하고 '유언'은 소통의 기능을 상실한 엄마를 대신해줄 당부와 의지가 담긴 다른 형식의 소통일뿐이라는 사실로 그 무게가 가벼워진다. 그저 편지일 뿐이다.


나의 유언의 핵심가운데 하나(이건 당부가 아니라 명령수준)는 장례나 제사나 무덤(납골당포함)을 남기지 않는 것이다. 답답한 것도 싫고 어떤 날 의무적으로 나를 찾는 것도 싫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나무 한그루면 된다. 이미 계획되어 있는 마당있는 양평집으로 이사하면 대문 오른쪽으로 나는 부모님나무부터 내 나무까지 차례로 심을 것이다. 그 나무가 나의 무덤이다. 수목장처럼 여럿 있는 곳도 싫고 그저 내가 살던 곳에 내가 계속 살면서 나의 아이들이 자신의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모습을 늘 지켜주고 싶은 욕심도 담은 것이다.


나의 육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때, 혹여나 '나'라는 사람이 그리운 누군가가 있다면 그 나무의 뿌리에서 나의 정신을, 나무의 줄기에서 나의 육신을, 수많은 이파리들에서 나의 말과 웃음을, 그 나무의 흔들림에서 나의 영혼을 느끼며 나랑 놀다 가주면 참 좋겠다. 살찌는 음식말고 좋아하는 청하나 한잔 건네주면 내 영혼이 바람으로 응답할 것이니 그렇게 나는 자연 속에, 곁을 내주었던 모든 이들의 곁에 존재하고 싶은 마음을 받아주길 나는 바란다. 


나에게서 죽음이 두렵지 않은 이유는, 그리고 나 죽는 날을 위해 뚜벅뚜벅 남길 것들, 남기고 싶은 것들을 정리하는 이유는, 죽고 싶었던 지나간 긴 시간의 보상이겠지. 생과 사를 구분짓지 않는 정신때문이겠지. 소크라테스가 '너희는 산자들의 세상으로 가거라, 나는 신들의 잔치로 갈테니' 하며 유유히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넘었듯 나 역시 나를 지켜주던 내 자리로 돌아갈 그 날이 언젠가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겠지. 


앞으로 50여년, 날 살게 하소서. 

내 정신의 질서가 남아있는 이들에게 보다 안전한 인생길을 안내하길, 매일 글쓰는 진통으로 태동을 느끼고 순산까지 이르기에 수십년이 걸리겠지만 몽테뉴처럼 남아있는 이들에게 인생의 디딤돌이 되어줄 양서 한권 남기는 것이 나의 유산의 전부가 될 것이니 

나는 아파서도, 혼탁해져서도, 머뭇거려서도 안된다. 

어찌 이리 질서가 엉망이었던지 다시 체계잡는 데에 수년이 소요되고 있는 나라서

50년이란 시간동안 나의 안전을 날 창조해내신 당신께 청탁하오니 

내 정신과 눈과 손에 있어서만큼은 건강하게 날 지켜내시고 

순산한 그 때 머뭇거림없이 빠르게 데려가소서. 


이 남은 50년의 환희 속에서 소풍을 끝내는 그 순간을 위해 

팔랑대는 낙엽처럼 땅 위에서 신나게 한바탕 놀아볼테니

당신의 신탁(神託)이 나의 50년을 담보하신 것에 대해

내 당신 맘에 들도록 잘 이루었거든

당신께서도 내 청탁 하나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낙엽처럼 땅 위에 자리잡은 그 때,

스웨덴보그에게 '길안내를 부탁드려' 그의 손을 잡고서

날 사랑으로 키워주었던 에머슨과 소로우를 만나 '나도 같이 놀아줘' 친구하고 싶고 

세네카와 몽테뉴를 만나 '이제서야 뵙습니다.' 절한번 올리고 싶고 

아우렐리우스를 만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못해내었던 정신을 혼내'주십사 간청하고 싶고 

디오니소스를 만나 '당신을 흉내내서라도 닮고 싶었다'고백하고 싶고

릴케를 만나 '애써 외면했던 나의 가슴을 보듬어달라' 안기고 싶고

루크레티우스와 에피쿠로스를 졸졸 따라다니며 그 용기와 확신을 '나에게도 가르쳐달라' 징징대고 싶고

톨스토이를 만나 '당신의 고백에 잠시 딴생각 품은 것'에 사죄하고 싶고 

올더스헉슬리를 만나 '도대체 어떻게 얼마나 공부하면 당신처럼 되냐'고 '나 당신때문에 힘들었다'고 따지고 싶고 

블레이크를 만나 '어떤 정신이면 그리 위대한 시가 나오는지' 시가 아닌, 말로 당신의 정신을 만나게 해달라 간청하고 싶고 

나폴레온힐을 만나 '나의 연구에 대해 평가'해달라 당당하고 싶다.


나는 더 바빠지겠다. 

내 나이 50. 앞으로 50년간 다른 세상에서 만날 스승들앞에서 저리 바쁘게 보내려면 여기서 해내야할 숙제가 너무 많다. 1년동안 조금씩 만들어 나가기를 50번하면 스승들에게 저리 묻고 따지고 조르고 떼쓰고 사죄하고 안아달라 하고 절하겠다 하는 나를 그들이 바라봐주겠지? 모자라다고 밉다고 자격미달이라고 네차례가 오려면 아직 멀었다고 나를 밀치지는 않겠지?


낙엽은 낙엽의 두께만큼 다음 세대를 위해 보태듯이 나도 나의 무게만큼만 다음을 위해 남기고 가면 되는 것이니 그저 오늘, 지금 내가 해야할 일은 선명하다. 더 많이 남기기 위해 더 나의 무게를 키우고 딱 그 무게만큼 하루하루 50년의 프로젝트를 해나가면 되는 것이다. 더 잘하려고 애쓸 필요없이 그저 나에게 주어진 오늘의 것들을 해내는 것으로 나는 스승들이 '이리와도 된다'라 손짓하는 상상을 현실로 그려봐도 되겠지. 


인생 참 간단하다. 참 선명하다. 참 단순하다.

큰 가슴으로 작은 걸음 하나 내디디면 되는 것을.

먼 시선으로 내 앞의 미세한 하나 보면 되는 것을.

깊은 의식으로 나에게 온 문제 하나 풀면 되는 것을.

넓은 대지에서 작은 두 발 땅에 짚고 서면 되는 것을.

그렇게 보이고 들리고 만져지고 느껴지는, 내게 오는 것들을 

하루하루하루하루 만나며 읽고 쓰면 되는 것을.


이리 간단하고 단순하고 쉽고 평안해도 될까마는 

뭐, 그리 어려운 것도 난처한 것도 복잡한 것도 괴로운 것도 없는 지금의 나를 

나는 더 사랑하기만 하면 되겠지. 

이 충만함을 감사히 받아버리면 되겠지. 

팔랑거리는 낙엽처럼 그리 노닐면 되겠지. 

좀 멀리 날아가버리더라도 거기 어딘가에서 자기 무덤찾아가면 되겠지.

 

모든 것을, 모든 이에게서, 모두를 관장하는 어떤 뜻에 나를 맡기고 

나는 그저 하루를 바람에 의지해 팔랑거리는 내 역할을 하면 되는 거겠지. 


인생 참 간단하다.....

 


* 헨리데이빗소로우, 소로우의 일기, 1996, 도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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