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 물질화
-내가 되는 학교, 건율원(建律院)-

by 지담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어디서 왔는지

누가 보냈는지

강렬하지도 무디지도 않은 채

그저 내 안에서 조용히 긴 시간 함께 해온,

점점 깊어져 소중함이 더해진 나의 꿈....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마틴루터킹 목사의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로 시작되는 강렬했던 연설의 첫마디처럼...


나에게도 꿈이 있습니다...


10년도 더 전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희미한, 그저 바램이었기에 기록조차 없는)

또 어떤 기운에 의해, 아니, 강렬한 기운에 의해 저는 '건.율.원'이라는 세 글자를 제 노트에 적게 되었지요.


建. 세울 건

律. 법 율

原. 근원 원


한자의 뜻만으로는 내 안에 '세상의 원리를 세우는' 이라는 의미인데 한창 '삶의 원리', '인생의 원리'. 즉, 이불변응만변을 깨닫고 알고자 하고 나누고자 하는, 그 지독한 공부를

제대로 배우고 싶다.

제대로 가르쳐줄 이가 왜 없을까.


이러저러한 저의 간절함때문에 찾은 3글자이고

한자문법상으로 맞고 틀리고보다 건율원이라고 소리나는대로 읽으니 학교이름같이 꽤 그럴 듯하여 그리 불러온 저의 학교입니다(지금은 표기상의 이유로 원(院).의 한자를 바꿨지만). 만들어놓고 보니 우리 두 아이의 이름(리건, 리율)과 제 이름(주원)의 끝글자를 모아놓은 것이 마치 우연처럼 일치하기도 해서 그 때부터 저는

'꿈이 있나요?'라는 질문에 늘 한결같이

'건율원을 만드는 거요.'라고 대답하곤 했었지요.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어떤 종류의 선천적인 구체적 원칙이 존재한다.

이런 종류의 원칙은 인간의 모든 사고, 감정, 의욕의 총결산이기 때문에 그 사람의 피와 체액 속에 잠겨 있다.

이 원칙을 추상적인 형태로 알 수는 없다.

일생을 되돌아보고서야 비로소 자신이 시종일관 이 원칙을 지켜왔다는 사실,

눈에 보이지 않는 실에 이끌리듯이 이 원칙에 이끌려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 쇼펜하우어 인생론.


시종일관 이 꿈 안에서 산 듯한.

이제 돌아보니 10년도 더 오래 모든 일, 모든 관계, 모든 흐름이 이 길을 향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건율원이라는 세 글자를 품었을 때부터

그렇게 살고자, 그런 모습을 갖고자, 그러한 정신을 쓰고자 매일매일 그 길로 걸었지요.

미숙하고 무지하고 엉망이었던 정신이 더 이상 이래선 안되겠다고 선언해서인지

그 어지러운 정신 덕에 어쩌면 더 이상 과거로 가고 싶지 않았기에 이리 계속 걷게 되었는지도 모르죠.


이 세글자 안에는 나의 사상, 나의 가치, 나의 정신의 길이 있습니다.

가치있는 삶을 위한 현실을 만들기 위해 내 뜻을 세우고 원리를 바로 아는 나의 사상.

온우주를 움직이는 대법을 이해하고 세상의 규율에 어긋나지 않게 살고자 하는 나의 바람.

기준과 기본을 지켜야만 가치와 의미와 바람과 꿈이 실현될 것이고 그래야만 한다는 나의 자세.

공부(工夫)란.

'공(工)'은 천(天)과 지(地)의 연결이며

'부(夫)'는 천과 지를 연결하는 주체가 사람(人)이라는 의미.

이러한 교육(education)이 진짜 교육이 아닐까요?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끄집어내는(educe),

국영수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 교육, 공부, 학습의 의미에 대해선 아래 브런치글 참조바랍니다.)


여하튼 내가 뭐라고....

그런데 내가 뭔지, 내 능력이 어떤지... 뭐, 그런 저의 모습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난 '진짜 공부'라는 걸 하고 싶었고 찾고 있었고 배우고 말았고 나누고 싶었고 뿌려야 했고

그렇게 10여년이 넘도록 매달린.... 나의 공부... 세상에 나누고픈 공부...

이제는 문화로 계승되길 감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의 바람이 간절하고 그렇지 않고의 범주가 아니었습니다.

세상은 대법(大法)에 의해 필요한 것을 알아서 창조해내더군요.

나는 그것을 위해 지금 잘 쓰이면 되는 것이더군요.

건율원은 나의 꿈이 아니라 세상이 필요하다 판단한 것이었더군요.

능력없고 미진한, 하지만 말 잘 듣는 저를 선택해 창조의 씨앗이 심긴 것이었더군요.


내가 선택되었구나..

그렇게 10년이 넘게 혼자 매달렸고 쌓아 왔습니다. 논문을 썼고 이론을 만들었고 그 이론으로 논문우수상까지 3번 받았고 혼자 조용히 책으로 그 내용들을 정리하여 출간도 했고 그러한 흔적은 수년째 나의 카페(지담북살롱)에 홀로 고요히 아무런 인정도 없었지만 그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실천적으로는 매일 새벽독서가 그렇다고도 할 수 있겠지요...


돈이 된 것도,

돈을 쫒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살려고 그랬지요.

내 삶을 살려고,

우울하고 불안한 정체모를 공허함에서 벗어나 신나고 즐겁게 인생을 살아보려고 그랬지요.

그러기 위해 이 공부가 필요했지요.

목말랐고 간절했습니다.

아주아주 간절했습니다.


행복하고 싶었으니까.

불안에서 벗어나고 당당해지고 싶었으니까.

내 인생을 나답게 사는 게 뭔지 알고 싶었으니까.

자유롭게 말하고 자유롭게 사고하고 싶었으니까.

맘껏 사랑하고 맘껏 사랑받고 싶었으니까.

내 인생이 소모되는 것이 아니라 잘 쓰이는 방향으로 가게 하고 싶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이 절절한 간절함은 세상이 정해놓은 대법을 따라

'정신의 물질화', '관념의 형상화'로 되어감을 느낍니다.


어제 녹음(이 녹음도 왜 하는지 몰라요. 그냥 읽기 어렵거나 간과하고 있는 책들을 그래도 나는 남겨야지 싶어 구독자도 없는데 혼자 매일 낭송합니다. '유투브 지담북살롱'참조바랍니다.)쇼펜하우어도 이런 말을 했습니다.

'참으로 위대한 사람은 독수리처럼 높은 곳에서 오직 홀로 생식하고 있다.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마치 자력에 이끌리듯이 서로 모여든다는 사실이다. 비슷한 마음과 마음은 멀리서부터 인사를 교환하는 법이다.라고.


내가 아닌, 나와 같은 뜻을 품은 이들이 한분두분... 이제 많은 분들이 함께 합니다.

미약한 한마리 새에 불과한 내게 독수리같은 분들이 오신 것이지요.

나는 내 것만 다 내놓으면 됩니다.

give and give. 하면 됩니다.

그러니 그들도

give and give. 하더군요.

독수리들이 모이니 이건 ...

말로 표현하지 못할 소용돌이가 일어납니다.


급기야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내 의지나 계획과는 무관하게

나의 꿈, 나의 삶, 나의 가치인 '건율원'은 탄생되었습니다.

결코 내가 계획하고 내가 하고자 한 게 아닙니다.

그저 나는 씨를 뿌렸을 뿐 머리는 텅텅 비어 있었으니

이것은 독수리들의 강렬한 힘으로 세상밖으로 튕겨져 나왔다고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세상이 필요로 하니 그 10여년 전

세상이 이상해, 내 인생도 이상해. 했던 바보인 나에게 그 씨앗이 심긴 것이고

바보라 이도저도 현실감각이 없던 나는

그저 씨앗을 품고 매일 물을 주고 있었을 뿐

독수리 몇 마리가 어느 날 등장하여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우리는 마치 '독수리 5형제'가 세상을 구한 만화속 주인공처럼

매일 자기 자신과 싸워가며 세상에 도움되는 이가 되려

뭔가를 매일 창조해내고 있습니다.


창조는 거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없는데 있게 되면 창조인 것입니다.

홀로 하던 새벽독서는 둘이, 셋이, 열이 되어가고

이들 각자가 오늘보다 더 새로운 삶을 창조해내고

책을 읽다가 소로우의, 스웨덴보그의 책을 더 읽고 싶은데 없으니 번역하자 하고

책을 읽으니 글이 쓰고 싶어져 글이 창조되고

글쓰며 정리된 것은 컨텐츠가 되어가고

이 과정의 대화가 새로운 코칭프로그램을 창조해내고

이리 창조가 이어지니 시스템이라는 것이 서서히 갖춰져가고

그 과정에서 근거가 필요해 추적조사를 하고 논문을 만들어내고

그러니 새로운 이론이 또 창조되고

이론에 걸맞는 컨텐츠로 다시 재창조되고

이를 알게 된 이들이 다시 내게로 연결되니 또 다른 무언가로 이어지고

그렇게 또 새로운 인물이 내 인생에 진입하여 더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끝이 없는 순환이 이어집니다.


그래서 책에 길이 있다는 말은 진리가 맞습니다.

내가 계획하고 만들어내는 것은 단 하나도 없어요.

이미 설계도가 끝나 있는 건율원.이라는 창조앞에

나는 어영부영, 좌충우돌, 갈팡질팡, 설레벌레 하면서 여기까지 벅찬 걸음으로 걷고 있고

이에 걸맞는 이들이 하나둘 자리를 꿰차면서 대법앞에 고개숙이고

우리는 손잡고

잡은 손은 물결을 일으키고

물결은 파동을 만들고

파동은 세상의 기운을 불러오고

기운은 설계도에 맞추기 위한 소용돌이를 다시 일으키고...


함께 하는 모든 이들은 다 압니다.

나보다 더 잘 압니다.

당장에 돈이 안되는 것도 알고

이 과정이 녹록지 않다는 것도 알고

시간과 정성이 길고 깊게 쌓여야 함도 알고


그리고 이보다 더 잘 아는 것이 있습니다.

반드시 필요한 교육이라는 것을 알고

함께 한다면 문화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고

옳은 문화는 계승될 것이라는 것도 알고

무엇보다 자신의 변화의 숭고한 기쁨을 알고

자신의 변화를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도 전해주는 것이 진짜 이타란 것도 알고

정신의 물질화.에 의해 돈을 쫒지 않아도 이 모든 것이 보상으로 돌아온다는 원리도 압니다.


그래서인지

내가 시키지도 않는데, 권유하지도 않는데, 제안하지도 않는데, 부탁하지도 않는데

이들은

나보다 더 새벽에 일찍 눈을 뜨고

나보다 더 꼼꼼하게 기록을 남기고

나보다 더 많은 공부를 하고

나보다 더 큰 목표를 세우고

나보다 더 긴 미래를 보고

나보다 더 지독한 자세로

나보다 더 가치있는 일의 소중함을 전하고

나보다 더 자발적이고 주체적으로 스터디모임을 하고

나보다 더 나를 알아주고 이해하고 믿어줍니다.


그 어떤 누구도 내가 찾지 않았고 이력도 모르고 환경도 모르는데

그저 뜻이 같아서 한몸이 된 우리입니다.


지금의 현상은,

내 머리 속에 없었습니다.

머리 속에 없으니 당연히 예측하지 못했고 계획도 없었고 그 어떤 전략도 없었습니다.

그저 이미 짜여진 설계도에 의해 각자의 자리에 착석한 것이라고밖에 해석이 안됩니다.

그리고 거기서 주어진 자신의 역할에, 존재가치에, 책임에 집요한 것이라고 말할 뿐입니다.


이 모임에서 나는 바보1, 모지랭이1을 담당하고 있지요.

그 뒤로 2,3,4,5... 이어지는데

계획하지 않고 묵묵히 이끄는 대로 가보자.

머리를 비우고 손발을 움직이자

이성을 외면하고 감각에 따르자

세상에 귀를 닫고 내면의 소리를 듣자.

보려 하지 말고 드러남을 믿자.


초월된 초감각대로 움직이는 이 형이상학적인 자조모임이 뭔가 일을 저지를 것 같습니다.

아니, 우리가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저질러진 일에 잘 맞춰나갈 것 같습니다.

분명, 퍼즐은 맞추라고 있는 것일테고

이 모든 계획은 나나 우리가 아닌, 창조주의 계획하에 있는 것이니

나는 판단을 내려놓고 그냥 오늘도 묵묵히 한걸음....


건율원. 그 탄생을 여기 작은 지면에

진솔하게 털어놓았습니다.


앞으로 건율원은 모든 이들이 '나로써 사는', 그렇게 '너로써 살게 하는' 힘으로 전해질 것입니다.

내가 나로써 살면서

이를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그런 학교.


생산자가 소비자가 되는 프로슈머시대답게

건율원에서 배우면 건율원에서 가르치게 됩니다.

이 선순환은

이기가 이타임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며

정신의 물질화, 관념의 형상화를 이루는, 일상이 투자로 전환되어

아는 것이 사는 것으로 연결되는 그 지점에서

사는 능력의 교육으로 불안의 시대에 당당한 자신이 되는,

그렇게 자신의 가치를 현실화시키는 터전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삶과 사유와 사색과 사람이 있는 곳.

독서와 글과 코칭이 어우러져

아는 것이 사는 능력으로 이어지는 곳,

내가 나를 키워

내가 나를 정복하고

내가 나를 새롭게 만들어

내가 나로서 누리고 또 나누는,

'내가 되는 학교'

건율원의 탄생을 알리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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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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