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속 이쾌대
이쾌대의 자화상만 살펴봐도 당시의 작가의 상황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자화상은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감정이나 생각, 나타내고 싶은 상황이 반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930년대 첫 번째 자화상은 이쾌대가 17-25세 즈음에 그린 것이다. 아마도 유갑봉과 사귀고 있었거나 결혼한 지 얼마안 된 새신랑이었을 것이다. 제국학교에 진학해 새로운 환경에서 날개를 펼치려 하던 때인지도 모른다. 고개를 살짝 치켜들고 입을 꼭 다물고 있다. 자신감에 가득 찬 젊은 예술가의 모습이다. 이마에서 콧잔등으로, 왼쪽 눈아래에서 인중으로 빛이 뿌려져 일본식 인상주의인 외광파의 특색이 드러난다. 제작 연도가 명확하지 않지만 어쩌면 1938년 제25회 니카텐에서 <운명>으로 입선한 이후에 자신감에 차 그린 자화상 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시절 탓일까 평온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1937년 중일 전쟁, 1938년 국가 총동원법 시행 등을 생각하면 작가의 표정이 이해된다
〈푸른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이 아마도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일 것이다. 2024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전시되기도 한 작품이다.
이쾌대의 모습이 화면 가득하다. 초가와 꼬부랑 논밭, 붉은 치마의 아낙들은 물동이를 이거나 점심을 이거나 했을 것이다. 맑은 구름이 떠있는 한국 전통풍경을 배경으로 화면 가득 푸른 두루마기차림의 화가가 붓을 들고 있다. 향토적인 색감과 윤곽선으로 표현한 선묘에 색을 채워 넣었다. 원근 없는 평면적인 화면에서 한국전통회화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엿볼 수 있다. 서구식 교육을 받고 서양화과를 나왔으나 이쾌대가 지향하는 바는 동양이며 향토임을 암시한다.
이와 함께 인물의 배경을 가득 채운 점도 중요한 특징이다. 인물의 배경으로서의 풍경이 아니라 작가가 꿈꾸던 이상적이고 평화로운 한국의 산천을 표현하고 있다. 작가는 역사와 사회를 자화상 속으로 끌어들였다.
굳게 다문 입술과 정면을 직시하는 눈은 뭔가 결연해 보인다. 또한 한쪽눈을 살짝 찡그리는 바람에 관자놀이에 살짝 패인 주름, 까만 눈동자는 무표정한 얼굴에 고뇌와 갈등의 흔적을 남겨놓았다.
전통 푸른색 두루마기를 입고 서양식 중절모를 썼다. 오른손에는 동양화를 그리는 모필이 들려 있고 왼손에는 유화 팔레트를 들고 있다. 붓을 들고 있는 오른손은 해부학적으로 나무랄 데가 없다. 그러나 팔레트를 들고 있는 왼 손거울에 비추었을 때의 방향이 아닌 이쾌대의 시선에서 본 반대방향으로 그렸다.
이쾌대는 해부학책을 직접 쓸 수 있을 만큼 해부학 지식이 풍부했다. 오른손 손등과 연결되는 손가락 관절 표현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작가는 일부러 그림을 틀리게 그린 것일까?
대립적인 요소를 한 화면에 동시에 표현함으로써 자신의 심경을 의도적으로 드러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해방공간에서 좌우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정치적 혼란스러움과 작가의 현실참여 의식을 화면 속 모순으로 전달하고자 한 것이다. 정상과 비정상이 한 몸을 이루고 있는 모순의 상황이야말로 작가의 얼굴에 드리운 불안의 정체이자 그가 직시하는 자기 정체성이었을 것이다.
화가임을 강조하고자 한 것일까? 팔레트는 위에서 본 시점으로 그렸다. 세잔이 정물화에서 탁자를 위에서 본 시점으로 그려 정물이 잘 보이도록 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