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울작가
제주에 살기 전까지 나는 제주도에 미술관이 이렇게 많은지 몰랐다. 제주에만 무려 21개의 미술관이 있고, 박물관까지 합하면 78개라고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유명한 작가들의 제주는 자연환경이 우수해 작가들이 영감을 얻으며, 김창열, 이중섭, 이왈종, 변시지 같은 예술계의 거장들이 활동한 대한민국의 프로방스 같은 곳이었다. 실제로 프랑스에서 작품활동을 했던 김창열은 "제주도는 풍경이 프랑스와 비슷한 점이 많다. 또 도민이 미술과 문화를 애정한다"라고 말했다.
제주에 애착을 느끼는 예술인들이 많아 자신의 작품을 기부하기도 한다. 한국전쟁 당시 1년 6개월 정도(1952~1953) 제주시 칠성로와 애월. 함덕 등에서 피난생활을 한 그는 제주에서 활동한 기억으로 제주를 제2의 고향으로 생각하고 그의 작품 220점을 제주에 기부했다. 그는 활동 중 미국과 프랑스에 머물렀는데 "유배생활과 다름없다는 생각이 점점 들면서 종착지가 있었으면 좋겠다 했는데 제주도에서 받아줬다"라고 고마움을 전하며 "작품들이 안착할 곳을 찾아서 설레는 마음"이라고 밝혔다.
또한 이건희 컬렉션 같은 유명한 작품들이 전국을 순회하며 제주에서도 전시하기 때문에 제주에는 제주에서 활동했던 작가들의 작품뿐 아니라, 세계적인 거장들의 작품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더욱이 제주는 관광지라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아 미술관이 발달되어 있다. 아버지가 김창열 미술관을 추천해 주신 이후 제주에서 '아트캉스'의 맛을 알게 된 나도 꽤 많은 미술관을 가며, 예술여행을 즐겼다.
'김창열 미술관'이 있는 곳은 제주시 한경면으로, 제주 저지문화예술인마을 문화지구 내에 있다. 예술이 발달된 제주인만큼 미술관 거리가 있는 셈이다. 이곳에는 '김창열 미술관'외에도 '제주현대미술관', '유동룡 미술관', ' 문화예술공공수장고'이 위치해 있다. 나는 여기서 '김창열 미술관', '제주현대미술관', '유동룡 미술관'을 방문했고, 제주 전체 미술관을 통틀어 이곳 '김창열 미술관'과 '유동룡 미술관'을 특별히 좋아했다.
김창열 미술관은 외관도, 내부도, 작품도 볼거리가 많았다. 또한 여러 사람이 아닌, 한 화가의 작품을 깊게 보고 그의 생애에 다가갈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었던 것 같다. 현대미술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나도 김창열의 작품만큼은 '아름답다'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좋아했다. 스토리가 있는, 그런 점에서 제주와 어울리는 김창열 미술관은 예술 그 자체였다.
김창열의 그림은 하나같이 물방울이 있어 그는 물방울 작가로도 불린다. 그는 한국예술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다. 평안남도 맹산 출신이며 서울대 미대에서 공부한 뒤 뉴욕에서 판화를 전공하고, 파리로 건너가 정착한 뒤 제주도. 1996년 프랑스 최고의 문화훈장을 받았으며 2004년 프랑스 국립 죄드폼 미술관에서 초대전을 열어 현대 미술가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했으며 그의 물방울 작품은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프랑스, 중국, 일본 등 해외 미술계에서도 인정받았다.
입구에서는 그림으로 향하는 길에는 물방울 모형도 볼 수 있었다. 이 모형 뒤로 보이는 창으로는 바깥과 연결된다. 김창열 미술관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작품의 훌륭함도 있지만 그 건축 또한 예술적이기 때문이다. 건축이 상당히 모던하다. 오른쪽 사진에서 볼 수 있는 통로에는 빛이 새어 나오는데 이 또한 계획된 것이라고 한다. 대지 4천990㎡에 지상 1층, 전체면적 1천587㎡ 규모로 한 사람의 작품을 담고 있는데 규모가 크다. 시대에 따라 그의 작품을 감상하면 재미가 있을 것이다. 큐레이터 분의 설명을 들으며 관람했는데 오디오 도슨트도 제공한다. 이곳은 항상 같은 작품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바뀌는데 내가 방문했을 때에는 '공명하는 물방울' 전시를 하고 있었다.
시대별로 알아보는 그의 작품세계
50년을 물방울에 대해 탐구한 김창열 화백이 처음부터 물방울을 모형으로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니다.
김창열은 1929년생인데 전쟁을 겪은 그는 전쟁의 상흔을 그림에 표현했고 ‘60년대 중반 이후 뉴욕에 정착해 뉴욕에서 유행하던 팝아트로부터는 구상적인 특징을, 미니멀리즘으로부터는 넓은 삭면에 감화받는다. 이 시기에 그는 엥포르멜(두꺼운 물감을 덕지덕지 발라 만든 얼룩과 같은 작품) 운동에 참여해 전쟁의 상흔을 추상적으로 표현해 낸다.
이후 프랑스로 유학시절, 재료비용을 아끼려 캔버스 뒷면을 물에 적셔 물감을 떼어내 또 그리는 식으로 재활용하던 중, 캔버스에 맺힌 물방울을 보고 영감을 얻어 물방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1970년대인 이때부터 그의 물방울 그림이 나타난다. '재료비를 아끼기 위해서'라는 그의 말이 왠지 짠하게 느껴지기도 하면서 그런 상황에서도 영감을 얻고 작품세계를 구축해 나갔다는 점이 천재적으로 느껴졌다.
극사실주의로 그린 물방울그림은 비슷한 듯 다르다. 하나의 물방울이 캔버스를 메운 작품, 금방이라도 밑으로 흘러내리거나 표면으로 스며들 물방울 작품까지 물방울의 크기와 색깔이 다양하다.
이렇게 다양한 물방울 작품을 제작하는 동안 그의 화면 지지대도 캔버스에서 신문지, 마포, 모래, 나무판 등으로 변화되었으며, 물방울의 조형적 측면을 드러내기 위해 물방울과 함께 스며든 물방울의 흔적, 거칠게 발라놓은 유화물감, 천자문 등을 그리기도 하였다. 사실 천자문이나 글자의 의미는 없다고 하는데 이 글자들이 물방울이 스며들거나 흘러내리는 모습을 돋보이게 한다.
위의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물방울의 배경이 한자가 빼곡한 그림도 있다. 70년대 중반 “휘가로”지를 이용한 작업을 통해 화면에 문자를 등장시키기 시작한 김창열은 점차 문자를 화면에 써 나가는 작업으로 작품을 변화시켰다. 이후 2000년대 이후에 이르기까지 배경의 채도 등을 변화시키며 김창열은 새로운 시도를 하며 물방울 작품을 구축해 나간다.
미술관 전체를 관람하며 한 사람에 대해 탐구할 수 있기 때문에 그의 작품뿐 아니라 삶 전반에 들어가 볼 수 있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가 미국과 프랑스에서 활동한 만큼 그의 작품은 많은 문화를 흡수한 그이기에 더 작품에 관심이 갔던 것 같다. 깔끔하고 단순한 배경 뒤 사실적인 그림, 거기에서 나오는 세련미, 그리고 아름다움. 이렇듯 훌륭한 그의 그림을 제주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되어 기뻤다. 제주에 애정을 가지고, 그의 작품을 나누려 했던 그의 마음이 이곳에 방문한 나에게까지 전달되었다. 한국의 프로방스에서, 그의 작품과 예술혼은 후손들에게까지도 계속 전달될 것이라 믿으며 글을 마무리한다.